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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금요일 오전

어느 날 오후, 절친한 선배로부터 몽골에 갈 수 있냐고 전화가 왔을 때 주저없이 가겠다고 대답한 며칠 후 다시 한남동의 몽골 대사관으로 가서 비자를 발급받으라는 연락이 왔다. 인터넷으로 몽골에 대한 정보들을 검색하여 읽어 본 후에 몽골대사관로 비자 신청비용 을 송금하였다. 먼저 비자를 발급받은 후배가 일러주기를 몽골대사관은 대사관 은행계좌로 송금을 해도 작업을 전산처리하지 않기 때문에 외환은행에 가서 수기 송금확인증을 발급받아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몽골로 가려고 비자를 신청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 번거롭더라도 외환은행에 가서 직접 송금을 하고 확인서를 발급받는다.(실제로 외환은행 한남동 직원 창구직원에 따르면 몽골대사관의 거의 모든 업무처리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입금전표도 인터넷뱅킹 확인서가 아닌 수작업 전표로 재발급 받아 가져가야 한다고, 그래서 외환은행 한남동지점의 오전 업무는 대부분 대사관 업무로 바쁘다고 한다.)

몽골대사관 측이 은행계좌를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입금자 명단을 프린트 해 놓고 몽골을 방문하려는 (한국인 등의) 방문객들을 맞으면 서로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비자발급신청 이용자가 대량이 아니기도 하고, 비자발급 업무를 확실히 하려는 등의 몽골대사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송금확인증을 받아들고서 비자발급신청을 위해 언덕 위에 있는 몽골 대사관을 찾아갔다.

이른바 한남동의 대사관 거리라고 하는 언덕길의 중턱쯤 한켠에 몽골대사관이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서 비자발급문의를 하였는데 앉아있던 몽골인 직원이 한국말로 안내를 하였다.

"큰길을 따라 건물 뒤편으로 돌아내려 가면 대사관 건물의 지하층에 영사부가 따로 있으니 그리로 내려가서 비자발급신청을 하세요."

큰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서 건물의 뒤편 아래쪽을 찾아 갔더니 CCTV가 붙어있는 좁은 철제 출입문이 보였다.

"주한 몽골 대사관 영사부"라고 하는 작은 안내판이 그보다 좀 더 큰 세콤경비구역(SECOM) 안내판과 더불어 허름한 벽에 붙어있었다. 영사부 안에는 몽골의 지도 몇 장이 벽에 붙어있었고, 지나간 행사 안내장이 꼽혀있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작성한 비자신청서와 여권과 외환은행 송금확인증을 제출하자 작은 카드에다가 비자승인이 된 여권을 찾으러 올 예약날짜를 메모해 주었다.

영사부 접수담당 직원은 별 다른 말없이 비자발급신청서와 입금확인증을 받고서 작은 카드에 수령일자를 써서 내주는 같은 작업만 계속해서 반복하였다. 몽골대사관의 업무는 월~금 오전에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오전 12시 이전에 영사부에 와서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만일 급한 상황 때문에 비자발급을 당일에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월~금 오전 일찍 외환은행에 가서 몽골 대사관 계좌로 급행료를 송금하고서 송금확인서를 가지고 지하 영사부에 가서 제출하고 당일 오후 3시쯤에 여권을 찾는 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다.

10월 23일 월요일 오전

이미 지난 주에 비자발급신청을 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오늘은 몽골대사관 영사부에 가서 비자 승인된 여권을 찾기만 하면 된다. 이번에 몽골에 같이 가는 후배는 오늘 오전에 급행으로 비자를 신청하고 오후 3시쯤에 여권을 찾는다고 하였다. 몽골대사관 영사부에서는 안전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내부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금지한다고 하여 출입구에서만 한장 겨우 찍을 수 있었다.

몽골을 방문하기 전에 여권발급 등을 하면서 몽골대사관과 몽골영사부에서 느끼게 된 몽골의 이미지는 답답한 아날로그, 업무처리 순서대로 기다리기, 정보의 차단, 폐쇄적 마인드 등이었다. 아마 그건 우리나라의 60년대~70년대쯤에 대한 기억과도 비슷한 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몽골도 점진적인 발전을 하다보면 그러한 답답함이 개선될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10월 26일 목요일 오후

▲ 몽골로 간 많은 짐들 중 과일 등 일부
ⓒ 강성구
연희동에서 인천공항으로 많은 짐과 방정환 재단의 사무총장과 함께 가려고 하니 큰 차가 필요했다. 더구나 일정이 5일이라서 공항에 주차를 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해서 공항을 오가는 콜밴을 부르기로 했다. 우선 연희동에서 내가 준비한 짐을 싣고 서교동의 방정환 재단에 가서 오명록 사무총장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같이 가기로 했다. 출국할 때에는 인천공항의 잘 갖추어진 시설이나 커다란 규모가 특별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몇 번 이용했던 터라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국제공항이라고 생각하는 그저 눈에 익은 공항의 풍경이었다.

가지고 가는 짐이 너무 많아서(사과, 감, 배, 고구마 등 각 2박스씩, 국화, 장미 등 생화 대형박스 3개에다 대형가방 4개 등) 초과중량 추가부담금(over charge)이 너무 많이 나왔다. 과일류가 8박스, 소국화 생화가 긴박스로 3박스 등 총 12박스에다가 대형가방이 4개나 되었기 때문에 화물추가운임만 거의 150만원 가량 되었다. 큰 여행가방, 박스 등 화물들을 전부 별도의 화물센터를 통하여 보내고 나서 좌석발권 등의 출국절차를 밟았다.

인천공항을 19시 50분(한국시간)에 이륙해서 3시간 20분 남짓한 비행시간을 갖게 되었다. 정상 항로에 진입해서는 평균고도 9600 feet(대략 2940 m), 시속 770km/H, 항공기 외부 평균 기온 영하 3도 가량의 외부환경에서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운항시간 동안 승객들은 준비된 음료수를 마시고, 저녁 식사를 하고, 기내쇼핑을 하고,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기내식으로는 불고기와 생선 두 가지 메뉴가 와인 한잔과 맥주 등의 음료와 함께 제공되었다. 규격화된 제품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좀 염려가 되기는 했지만 따뜻하게 제공되는 것 때문인지 먹을만한 맛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저녁식사라고 하기에는 식사량이 조금 적은 듯 했다.

▲ 징기즈칸국제공항의 야경(많이 어둡던 기억)
ⓒ 강성구
▲ 밤 시간이라 그런지 한산하던 몽골의 징기즈칸국제공항
ⓒ 강성구
어느덧 시간이 흘러 곧 도착할 것이라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오고 둔탁한 뒷바퀴의 충격과 함께 우리는 몽골의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밤중에 도착하긴 했지만 몽골의 국제공항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별로 없고 썰렁하였다. 한 시간의 시차가 있어서 한국시간으로는 23시 10분이 넘었지만 몽골의 현지 시간으로는 22시 10분이었다. 출국절차는 수하물 인도 시스템의 차이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우선 항공사 직원이 화물처리실 안에서 수하물을 일일이 손으로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는 것 때문에 화물을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또 한 가지 과일, 생화 등의 식물들을 검색하고 반출하는데 까다로운 절차가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몽골에서는 귀한 꽃에 대한 지나친 관심 등으로 인해 그렇게 된 점도 일부 있었다.) 우리는 다섯 명의 일행이었지만 옆에는 수십 명의 일행들이 많은 단체짐들을 찾고 나르고 있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남양주거리행사에 참석하러 한국에서부터 왔다는 것이었다. 몽골의 수도 한켠에 "남양주거리"라는 곳이 있다고 했다. 양국 도시 간 결연을 맺어서 한국의 남양주시가 일부 시설물 등을 건설해 주고 몽골에서는 거리 이름을 남양주거리라고 명명해 주었다. 그리고 해마다 연합사업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연주단, 이벤트 담당 등의 다양한 멤버들이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것 같았다. 남양주행사를 위한 단체 멤버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잦아들 때쯤 칭기즈칸 국제공항에는 거의 우리들 뿐인 것 같았다.

▲ 몽골 대통령궁 경호실 의전차량
ⓒ 강성구
다행히 몽골대통령궁의 경호실에서 장교 한분이 나와서 "김치행사"에 대한 확인 및 업무협조를 요청해서(국화, 장미 등의 생화는 내일 별도로 반출하기로 하고) 걱정했던 것 보다는 빨리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미 밤이 깊어 까맣게 어두워진 칭기즈칸 공항 밖 주차장의 풍경은 예상보다 많이 낯익은 모습이었다. 미등과 시동을 켜놓고 대기 중인 현지 택시와 승합차들이 대부분 베르나, 엑센트, 그레이스 등 현대자동차였기 때문이었다.

몽골 대통령궁에서 보내준 경호실 의전차량도 현대자동차의 15인승 그레이스 승합차였다. 서울에서부터 힘겹게 가지고 간 십 여 개 분량의 박스 등의 짐을 모두 승합차에 싣고서 대통령궁 영빈관을 향해 출발하였다. 그런데 몽골의 도로 포장상태가 좋질 않아서 그리 먼 거리가 아닌듯한데도 속도를 40~50km 밖에 못 내면서도 울퉁불퉁 심하게 흔들리며 기우뚱거리며 달리고 또 달려서 결국 자정(몽골 현지시각)을 넘겨서야 겨우 산자락에 위치한 영빈관에 도착하였다.(아니 모든 절차가 끝난 줄 알았다.)

대통령궁의 출입정문에서 야간 근무자에게 한국인 탑승자 전원의 여권을 제출하고서, 경비대 소속 군인의 신분 확인 검사를 받은 후에 정문을 통과하였고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가서 정말로 몽골 대통령궁 영빈관의 현관에 도착하였다. 각자에게 배정된 숙소는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길래 타 보려고 했는데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이 너무 투박하고 세명만 타도 좁아보여서 결국 계단으로 2층엘 올라갔다.

▲ 침대 바닥까지 푹 꺼지던 오래된 침대
ⓒ 강성구
방에 들어가서 둘러보니 아늑해 보이는 것이 그런데로 괜찮아 보였다. 옷을 갈아입고 세면장과 샤워실을 살펴봤다. 오래된 건물에서 할 수 있는 시설물 교체는 많이 할 것 같았다.

▲ 방안의 책상과 의자 두개
ⓒ 강성구
방 안 침대 앞의 긴 테이블에는 급탕전기포트와 하얀 찻잔이 두개 다소곳이 얹혀져 있었다. 세면기와 변기, 샤워실 등은 새로 교체하고 설치한 것 같았다. 특히 내가 묵게 된 방의 샤워기는 호스와 샤워꼭지의 이음매가 터져있는 줄을 모르고 호기심에 한 번 물을 틀었다가 물벼락을 왕창 맞고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되기도 했다.

▲ 몽골(대통령궁) 영빈관이라는 표시가 된 가이드북
ⓒ 강성구
우여곡절 끝에 다 씻고 나서 방에 있는 물건들을 바라보니 아주 단출했다. 두꺼운 가죽으로 표지가 되어있는 안내장은 오래전에 기능을 포기한 듯 속의 비닐들이 서로 들러붙어서 떨어지질 않았고, 내용물들도 대부분 없어진 상태였다. 영어로 하면 "The Tenger" , a state and Government service complex 라는 금박 글자들이 박혀있는 안내장의 일부 내용은 프린트가 끼워져 있던 비닐 안쪽의 잉크자국이 비닐에 배어있어서 희미하게나마 글자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짐을 정리해놓고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그런데 침대의 중간부분이 너무 깊이 꺼지면서 엉덩이와 허리가 침대 바닥까지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스프링이 아주 부드러워서(?) 허리부분을 푹신하게 받아들여 주는 듯….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 샌가 잠이 들었다. 짧으면서도 긴 듯한 하루가 소리 없이 그렇게 마무리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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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곳들을 다닌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 비슷한 삶의 느낌을 가지고 여행을 갈만한 곳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사회적 문제점들이나 기분 좋은 풍경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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