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시대의 유명한 ‘화가’ 김점선, 둘이면 곤란하고 하나쯤은 있어도 좋다는 김점선이라는 ‘여자'.

11월 7일 화요일 오후 5시쯤, 김점선이 이화여자대학교 이화-포스코관 453호에서 ‘기사작성기초’ 과목을 듣는 학생들 앞에 나타났다. 20명 남짓한 학생들의 공동인터뷰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다.

김점선은 등장부터 남과 달랐다. 온 몸을 검정으로 무장했다. 허리춤엔 검은 허리지갑을 차고 허리 뒤로 검은 큰 뭔가가 달려있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검은 코트다. 검은 코트를 허리지갑 뒤로 젖혀버린 채 들어왔다. 그리고 옷을 훌렁훌렁 벗어댔다. “어우, 더워. 뭘 얘기해?”

이화여대 교육공학과,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을 거쳐 1987, 1988년 예술평론가 협회 선정 미술부문 ‘올해 최고의 예술가’로 선정된 김점선. 30회가 넘는 개인전 등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이지만 김점선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 선생님한테 미리 내 별명은 ‘악마’라고 못 박아놨다고. 효도? 얼마나 시간 뺏기냐. 나는 아주 악질로 살면서 자기분야에서 악마적인 성취를 하는 사람들이 좋아. 남들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를 이룩하는 사람. 사람들이 나를 보고 사이코라 해도 나는 신경 안 써. 나는 앞서나가니까 너희는 이해를 못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버리지.”

김점선의 20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김점선은 영어공부만 했다고 한다.

“히피 문화가 나오기 전에 비트문화라고 있었어. 영국에서 시작된 건데 영혼을 위해 살자는 움직임이었지. 소비생활을 끊어버리고 문화적이고 철학적인 생활을 하자는 운동이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잡지를 뒤적이다가 그 비트문화를 향유하는 젊은이들을 보게 되었고 나는 즉시 그 비트문화를 누리러 가야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영어가 안 되잖아. 그때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했어. 여름방학 내내 방 안에서 벌거벗고 전등불 하나만 켜놓고 책상 펴놓고 영어공부만 했어. 대학 와서도 다른 애들 다방 다닐 때 나는 어학실 들어가서 내 발음교정해보고 그랬다고. 그렇게 비트문화를 향유하러 미국에 가려고 가니까 그 때 히피 문화로 바뀌어 버렸어. 순수한 영혼에 섹스와 마약이 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게 하는 문화가 히피야. 비트문화를 사랑한 나는 그 당시 정말 좌절했지.”

“말은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과 사랑의 표현”

대학 졸업 후 김점선은 홍익대 대학원에 들어가지만 한 학기 만에 제적당하고 다시 들어갔다. 거기서 김점선은 심하게 따돌림을 당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모든 중심을 나 자신에게 두었어.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나는 내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내 인생이 바쁜데 왕따 시키는 애들 상대할 시간이 어디 있어? 다른 애들이 유명작가들에 자기들 이름 끼워서 같이 전시회할 때 나는 개인전을 무조건 열었어.” 그렇게 연 개인전이 벌써 30회가 넘는다.

하지만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사고방식이 가족들을 힘들게 하진 않았을까. 김점선의 가족들은 반찬을 3가지 이상 차려서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좋은 점도 있어. 우리 아들이 결혼을 했는데 자기 마누라가 해주는 거 다 맛있다고 한다고.”

이렇게 말하는 김점선이지만 역설적으로 창작의 근원은 가족이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땐 내가 창조하고 싶게 하는 욕구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어. 그림을 그려 팔아 돈을 벌고 난 다음에 남편과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이 내 창작욕의 근원이었지. 남편이 죽고 아이도 독립한 후 내 창작의 원천은 성취감인 것 같아.”

남편, 아들뿐 아니라 가족, 특히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김점선의 그림에 항상 존재한다. 김점선의 그림에는 자주 말이 등장하는데 이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관련이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굉장히 미워했어.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정말 싫었거든. 그런데 대학교 때 같이 친척집에 가려고 삼청동 길을 지나고 있는데 한 여자가 말을 타고 지나가는 거야. 그때 아버지가 나에게 ‘나도 너를 저렇게 기르고 싶었는데’ 하고 말씀 하시는 거야.

그 순간, 그 장면이 내 머릿속에 아직까지 남아있어. 우리 아버지도 남들보다 여자를 교육시킨다고 애를 많이 쓰셨던 분인데 더 못해줬다고 생각하시는 거야. 그 다음부터 나는 말을, 아버지가 내게 보여주신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그림에 넣었어. 죄송함과 내가 아버지께 드린 상처에 대한 뉘우침, 그리고 사랑을 말에 표현하는 거야.”

‘특이하다, 남과 다르다’는 첫인상과 달리 시종일관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해준 화가 김점선에게 그림은 ‘영혼의 복사판’이다. 김점선의 신체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움직인다면, 김점선의 영혼은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끌어내는 잠재력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그 잠재력은 아직까지 모두 발휘되지 않았다. 김점선은 진정한 예술가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