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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 발목은 완전하지 못하다. 그래도 차 몰고 다니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다만 급브레이크를 잡을 일만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면 된다. 혹 급하게 정지하려 했다간 시원찮은 발목에 다시 무리가 가는 일이 생길까 염려되기에.
그러다보니 내 차는 느림보가 되었다. 전에는 추월하는 걸 즐겼는데, 요즘은 거의 추월당하고 있다. 솔직히 좀 어색했다. 습관이 되지 않은 느림 운전에 대한 어색함이었다. 그런데 느리게 운전하게 되면서 전에 잃어버렸던 걸 얻게 되었다. 차를 천천히 몰면서 주변을 돌아보게 된 여유에서 얻은 것이다.
우선 바다 물빛이다. 바다가 늘 푸른 건 아니다. 아니 오며가며 본 바에 따르면 푸른빛보다 황토빛이거나 뭐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빛깔이 더 많았다. 물빛만 아니라 파도가 거친가 잔잔한가도 알게 되었다.
오늘만 해도 동해가 이럴 때도 있을까 할 정도로 호수처럼 잔잔하다. 뭍으로 왔다 갔다 하는 물결이 끝에 와서야 하얀 포말을 살짝 만들어낼 뿐 그만이다. 그러나 퇴근할 무렵이면 또 어떻게 바뀔지.
다음은 산의 풍경이다. 예전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는 느꼈다. 집 주위가 산이니 특별히 보지 않아도 다 알았다. 그러나 어디에 무슨 나무가 있고, 어떤 꽃이 피는가 하는 건 몰랐다.
꼼꼼하게 살필 여유가 생기면서 봄에는 진달래, 산벚꽃, 산도화가 많이 핀 곳과 여름에는 지나치는 마을마다 자리한 당산나무의 녹음과, 가을날 하서 벌판의 황금물결과 단풍이 유달리 아름다운 곳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바다 안개와 계곡 안개의 차이도.
자연 뿐이 아니라 사람들도 많이 본다. 빨리 달릴 때는 거의 볼 수 없던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띈다. 밭에서, 논에서, 심지어 산에서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딜 바삐 가는지 잽싸게 발을 옮기는 이들로부터 마실 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 덕에 사람들을 태워줄 일이 더 생겼지만 어떠랴. 빈 차로 가는 것보다 한 사람이라도 더 태워가는 게 가스비 아까운 걸 만회할 수 있으니.
이들은 만약 내가 느릿느릿 운전하지 않았으면 못 보았을 것들이다. 성격 상 내년 쯤 발이 완전해지면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그러면 다시 이들을 못 보게 될 런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부터 조급한 성격을 고치려고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여유를 갖는다는 삶이 조급한 삶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걸 잘 알면서도 실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