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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이야, 굿이야' 공연 포스터.
'흥이야, 굿이야' 공연 포스터. ⓒ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먼저 17일 저녁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는 전북 지역 농경문화의 대표적인 풍장소리(농악)와 들소리(농가소리)를 국악 관현악으로 담아냈다. 사단법인 마당이 주관한 ‘흥이야 굿이야!’의 이 공연은 류장영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장이 지휘하고 관현악단 소리고을이 연주했다. 사이사이에 젊은 소리꾼인 김경호·이상호·이충헌 등이 흥을 돋웠고, 춤과 안무는 김현정이 담당했다.

다섯 가지의 일노래와 축하 공연이 어우러진 무대는 객석을 절반 정도밖에 채우지 않아서인지 다소 조용하고 밋밋하게 시작했다. 그렇지만 옥구(탑동마을의 김매기소리), 정읍(창락마을의 만두레소리), 익산(검지마을의 김매기소리), 익산(우도농악), 부안(위도 뱃노래) 등 민중들의 소리를 국악기로 변주하는 경험은 신선한 것이었다.

특히 전체 공연의 주제이기도 한 ‘호남우도굿에 의한 국악관현악’인 ‘흥이야, 굿이야’(작곡 이승곤)는 청아한 춤사위와 함께 귀와 눈을 흡족하게 했다. 내친 김에 지휘자의 주도로 관객이 함께 후렴구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자 장내는 흥겨움이 만발했다. 뒤늦게 달아오른 공연의 열기는 아쉽게도 약간의 여운을 남긴 채 마무리되고 말았다.

사실 새로운 시도라 하더라도 일노래를 공연장에서 치러지는 걸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자칫 노래의 현장성과 즉흥성이 정형화된 틀 속에 갇혀버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급속도로 사라져가는 전통 토속민요를 조사하고 발굴해내어 재현하려는 시도는 매우 고무적임에 틀림없다. 현재 우리는 이 땅과 호흡하며 꿋꿋하게 살아오신 선조들의 ‘노동 속 예술’을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일회성으로 그칠 게 아니라 앞으로 전북의 14개 시군을 순회하며 공연을 계획해야 필요가 있다. 또한 축제 등의 문화 공간에서 보다 살아 있는 소리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류장영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장.
류장영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장. ⓒ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권력자의 의례를 복원하는 이유는?

한편 18일 오후 전주 경기전과 객사에서는 ‘전주감사행차와 망궐례’ 행사가 치러졌다. 전주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올해 처음 열렸다. 주요 행사로 전라감사의 행차 행렬 퍼레이드와 ‘망궐례’(조선시대 객사에서 전라감사와 관리들이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님이 계시는 대궐을 향해서 절을 올리는 예절)를 재연했다.

감사 행렬이 경기전을 시작으로 전라감영터, 영화의 거리, 루미나리에 거리 등을 거치는 동안 최종 목적지인 전주객사에서는 조선 무사들의 패기를 담은 ‘24반 무예’(조선 후기 무과시험과 군사훈련용으로 사용하였던 국방무예)가 선보여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망궐례 재연과 전라감사 향연을 끝으로 세 시간의 행사는, 25일을 또 한 차례의 연행을 기약하며 끝이 났다.

주최 측은 이 행사가 “조선왕조의 발상지이며 전라도 감영도시로서 조선문화의 뿌리인 전주에서 역사적 사실과 고증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라며, “전주를 대표하는 상징적 문화행사 및 관광 상품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향후 축제화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발언이다.

전라감사 행차 행렬.
전라감사 행차 행렬. ⓒ 권오성

전주 객사에서 '망궐례'를 올리고 있다.
전주 객사에서 '망궐례'를 올리고 있다. ⓒ 권오성
사실 이러한 시도가 전국적으로 처음인 것은 아니다. 이미 원주의 감영문화제서는 수년 전부터 치러온 대표적인 행사이다. 원주는 이미 예산을 들여 옛 감영터를 조금씩 복원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전통 문화의 충실한 복원이나 재연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조선시대 이 지역에서 임금을 대신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온 관찰사의 고압적이고 위풍당당한 행렬을 굳이 군인들까지 동원해가며 연행할 필요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주시의 전통문화 중심도시로서 위상을 권력자의 의례와 의식에서 찾겠다는 이러한 시도가 보다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백성을 생각하는 애민의식과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임금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을 은연중에 비호할 게 아니라 도탄에 빠진 민중들의 고통과 설움을 보듬어줄 수 있는 참된 지도자(정치인)상을 그려내면서 시대적인 흐름에 부합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쨌거나 지난 주말 이틀 동안 경험한 전주의 두 행사는 우리 전통 문화의 복원과 재연에 대해 적지 않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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