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985년도 연말, 육군본부 장군들은 여러 팀으로 나뉘어 수도권 지역의 통신 중계소, 대공포 진지 등 격지와 오지를 방문하여 장병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하는 위문을 다녔다.

나는 김포 근방에 있는 대공포 진지와 관악산 통신 중계소 등 몇 군데를 헬기를 타고 들렀다. 초소에 도착하면 우선 “수고가 많아요!”한 다음에 초소 안을 한바퀴 돌아본 후 참모총장 이름이 써 있는 흰 봉투에 담긴 금일봉을 초소장에게 전달해 주도록 되어 있었다.

인사근무처에서는 촌지를 줄 때 반드시 “참모총장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말을 전해야 한다고 단단히 당부했다. 나는 이 말을 하려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냥 “이것 위문금입니다”라고만 말하며 건네주었다.

그 돈이 어째서 참모총장이 준 것이란 말인가? 총장이 자기 고향에 있는 논밭이라도 팔아서 마련했단 말인가? 그것이 복지기금이라고 말하는 PX의 이익금에서 나왔건, 다른 어디에서 조치했건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나온 돈이다. 국민에게 감사할 일이다. 하기야 총장이 나누어주지 않고 그냥 착복하든지 다른 곳에 사용해도 될 돈인데 이렇게 위문금으로 주고 있으니 감사함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시만 해도 일본 군국주의 시대의 군대문화가 우리 군 속에 그대로 자리잡고 있었다. 부하들이란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라하기만 하면 되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그 원인이나 이유를 캐물어 알 필요도 없었고 알 수도 없었다. 윗사람이 돈을 주면 감사하다고만 하면 되었다. ‘군대는 본래 그런 것이다’로 그냥 받아드렸다.

그러나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다.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병사들은 그때의 병사들과 다르다. ‘척! 하면 삼천리’다. 부대 내의 돌아가는 분위기를 상관들의 눈빛만 보아도 안다. 진심인지? 건성으로 하는 것인지? 다 판단한다. 간부들의 행위를 보면서 저것은 윗사람에게 잘 보이게 하려는 수작인지? 진정으로 군을 위하는 일인지를 금세 판단하고 알아차린다.

우리 병사들은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업무에 너무나 식상해 있었다. “총장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병사는 아마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윗사람들은 옛날 그대로였다.

상급부대 지휘관이 부대를 순시 중에 '격려! 촌지!' 등의 이름으로 돈 봉투를 주는 행위는 군국주의 일본 군대에서 배운 아주 나쁜 폐습이다. 도대체 병사들을 무엇으로 보기에 감히 그런 자존심 상할 행위를 한단 말인가! 하인이나 아래것들에게 은전을 베푸는 것 같은 그런 방자하기 짝이 없는 깡패집단 같은 짓거리가 최고위 독재자들에 의해서도 자행되고 있었다.

우리 병사들은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군에 들어와 복무하고 있는 ‘국민’ 바로 그 자체다. 군대란 계급의 권위를 통해서 조직이 움직이는 특수한 집단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장군이나 병사는 같은 목적을 향해 동료적 유대로서 뭉쳐진 관계라 할 수 있다. 국민인 병사들은 상관(上官) 개인이 베푼 물질적 동정을 받을 입장이 아니다. 모든 필요는 정부에서 지원하면 된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모든 부대가 함께 가야 한다.

부대장과의 개인적인 친분 관계에 따른 선심성 부대방문이나 현금 희사 등은 금지되어야 한다. 당시는 주로 하나회를 중심으로 이런 행위가 비일비재했다. 잘 나간다는 지휘관의 부대에는 자주 민간 친구들이 방문하여 돼지 몇 마리와 함께 부대 운영에 보태 쓰라며 금일봉을 두툼하게 주곤 했다.

그것을 물 쓰듯 뿌리며 부대원의 사기를 높인다고 득의양양했다. 물론 그럴만한 입장이 되지 않은 인접 비 하나회 지휘관들과 그 부하들은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었다. 공적 목적 이외에 학연 지연의 관계로 부대를 위문한다는 명목의 개별적 방문은 엄격히 통제되고 금지되어야 한다. 부조리 연결고리의 소지도 될 수 있다.

군에서는 외부의 이름 있는 강사들을 초청하여 특강을 실시할 기회가 많았다. 안병욱 교수께서는 강사료에 대해서 매우 엄격했다. 어떤 부대에서는 강사료를 받은 그 자리에서 봉투 속의 돈을 꺼내어 얼마인지 세어보더라고 여러 구설들이 있었지만, 나는 아주 멋있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수고한 일에 대해서 정당한 보상을 당당히 받는 모습이 얼마나 떳떳한가!

예편 후 군부대에서 강의할 때도 나는 꼭 강사료를 받는다. 장군 출신이면서 기부하고 갈 일이지 돈을 받아 가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강사료를 거절한다는 것이야말로 자기과시의 오만한 행위일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정중하게 받아주는 것이 진정으로 군의 권위를 존중하며 군을 사랑하는 겸손한 자세라고 나는 생각한다.

소위 국민의정부 시절 안기부장을 만나러 그의 사무실에 방문한 적이 있다. 말을 마치고 나오려 하는데 부장이 금일봉을 건네주었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았으면” 하는 충격적인 모멸감 때문에 그 자리에서 봉투를 뿌려버리고 싶었지만 곁에 비서직원들도 있고 해서 꾹 참고 나왔다. 나라의 요직에 앉아 있는 자들의 생각이 이렇게 바뀌지 않고 있으니 말로만 떠들 뿐 “개혁은 참으로 요원하구나!” 하는 걱정과 분함 때문에 그 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업체에서 회사 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여 착복하고 비정상적인 목적에 사용하는 것만 책할 일이 아니다. 정부 고위직에 있을수록 긴축하고 절약해야 하는데 그런 정신이 부족한 것 아닌지 염려된다.

적자에 허덕이는 지방자치단체에서조차 살림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이 뻐근하게 행사하고, 여행 몰려다니고, 웅장하게 건물 짓고, 사적으로 촌지봉투를 돌려 선심 쓰면서 너도나도 흥청망청하는 이런 풍조가 언제나 사라질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군을 부하인권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왔음. 만84세에 귀촌하여 자연인으로 살면서 인생을 마무리 해 가고 있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