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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성동. 그가 천자문을 옮겨쓰고 풀이글을 묶어 책으로 출간했던 것은 아이들이 '진서'를 제대로 익히기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소설가 김성동. 그가 천자문을 옮겨쓰고 풀이글을 묶어 책으로 출간했던 것은 아이들이 '진서'를 제대로 익히기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만다라> <길>등의 작품으로 '아릿다운 본딧말'을 어떻게 문장에 녹여쓰는지 보여줬던 소설가 김성동. 그가 '한문', 아니 '진서'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며 지난 2004년 직접 붓을 들어 <천자문>을 옮겨 쓰고 풀이글을 묶어 책을 출간한 것은 모두 이유가 있었다.

몰가치가 넘어 그 어떤 것에서도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무가치'의 시대에 '참된 사람'이란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주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너무나 쉽게 내뱉고 어른들에게 "냅둬요"라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은 바로 삶에 중심에 두어야할 가치들이 모두 메말라버린 탓이라 그는 여겼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서산대로 종아리를 맞아가면서 배운 '하늘의 섭리와 땅의 도리'를 담은 천자문을 다시금 꺼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옛 사람들이 걸음마를 시작하자마자 익히기 시작했던 <천자문>이 요즘에는 왜 '청소년 권장도서'로 읽히는지 그는 답답하다.

중국 남북조 시대 양무제가 왕희지의 글자 가운데 서로 다른 1천자를 내어주며 "운을 붙여 내일까지 한 문장으로 만들라"라는 명을 받은 주흥사. 천자문을 지으며 하룻밤새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주흥사의 '절박함'.

바로 그것이 요즘 아이들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려주고픈 이제 이순(耳順) 할아버지가 된 그의 마음이 아닐까. 그가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 말을 아이들에게 다시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문즉인(文則人)이라…. 문즉인이요 문긔스심(文氣書心)이라…. 글은 곧 사람이라. 글은 곧 긔요 글씨는 마음이니, 다다 그 긔를 똑고르게 모으구 그 마음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넌 사람만이 올바르게 글을 짓고 또 글씨를 쓸 수 있나니…." -김성동 <천자문> 머리말에서

조선 유생 할아버지에게 5살 때부터 익힌 '진서'

1947년 충남 보령 전통적인 유가집안에서 태어난 김성동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할아버지에게 '진서'를 익혔다.

책 더미 속에서 조심스레 꺼내준 모서리가 닳고 닳은 종이끈으로 묶은 <명심보감>은 5살 무렵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또박또박 붓으로 옮겨쓴 것이었다. 도저히 5살 어린아이의 필체라고는 믿기지 않았지만, 서산대로 종아리를 맞아가며 붓쥐는 법을 익혔고, 지금도 붓을 놓지 않고 있다.

컴퓨터를 전혀 다루지 못하는 그는 아직도 펜으로 원고지를 메워 작품을 쓰고 완성된 것은 철끈으로 묶는다. 자투리 종이에 붓글씨에 쓰는 것도 어릴 적 할아버지 앞에 꿇어앉아 익혔던 습관이 그대로 몸에 배어 붓과 먹과 종이를 끊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펜으로 원고지를 메우고, 탈고를 하면 철끈으로 묶는다. 오른쪽은 그가 어렸을 적 먹갈아 붓으로 옮겨 적었던 명심보감이다.
아직도 펜으로 원고지를 메우고, 탈고를 하면 철끈으로 묶는다. 오른쪽은 그가 어렸을 적 먹갈아 붓으로 옮겨 적었던 명심보감이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김성동은 기억한다. 어린 시절 사랑방 윗목에 놓여있던 늙은 자부동 베어 만든 책롱 속 먹향 가득했던 선고(先考)와 서책들을…. 그는 "배고플 때마다 그 책롱을 열고 빛 바래고 좀먹어 조선왕조와 대한제국과 일제 치하의 내음 코를 찌르는 옛 서책들을 펼쳐보고는 하였는데, 슬펐습니다"라고 <천자문> 말미에 털어 놓았다.

혼란스러웠던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그 선고들은 아버지의 구명운동과 옥바라지, 숙부의 약값으로 팔려나가고 일부는 압수되고 불태워져 재가 되었다. 지금까지 생명을 부지해 책장에 남아 있는 것은 일부지만 그의 중시조인 13대조 할아버지부터 시작해 여러 윗대 할아버지의 글씨를 담은 <선세유묵>, 고조부의 구결이 장마다 남아 있는 <대학언해(大學諺解)>등은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독서지유환지시(讀書之有患之始)니 절학무우(絶學無憂)"니라."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예비검속으로 비명에 간 그의 아버지를 두고 할아버지는 '책 잘못 읽은 죄'였다고 이렇게 장탄식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핏덩어리 어린 손자를 끼고 '책을 읽으라' 하셨단다.

성균진사의 아들로 태어난 할아버지의 함자는 '치(致)'자 '현(顯)'셨다. "집안이 애옥하다 할지라도 학문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손자를 다독거리던 마지막 조선 유생(儒生) 할아버지의 말씀은 아직도 그의 뼈 속까지 스며 있다.

서당 열고 훈장님 되어 <천자문> 가르친다

내년 1월 그는 '천자문 서당'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칠 예정이다. 벌써 시간표까지 모두 짜두었을 만큼 꼼꼼하게 준비하고 있다.
내년 1월 그는 '천자문 서당'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칠 예정이다. 벌써 시간표까지 모두 짜두었을 만큼 꼼꼼하게 준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이제 곧 그는 서당 훈장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칠 계획이다. 그저 급수나 따기 위해 부모님의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한자를 익히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진서를 익힐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경기도 양평군 청운 우벚고개에 내년 1월부터 '천자문 서당'을 열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르황' 한자 한자 짚어 줄 것이다.

글만 익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기초적인 붓 쥐는 법에서부터 전통 호흡법, 별 자리 보는 법도 가르칠 생각이다. 천자문이 담고 있는 것을 우리 역사와 문화에 맞춰 벌써 '월요일-우주를 가늠할 수 있는 수(數)'부터 '금요일-물과 호흡은 생명의 기본'까지 일주일 시간표를 모두 짜놓았을 만큼 아이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서북공정 끝내고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발해의 역사까지 중화에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역사까지 집어삼키려 드는 중국 앞에서 우리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우리 뿌리를 제대로 알고, 우리 것을 제대로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고구려도 발해도 모두 중국의 역사가 되고 만다. 결국 서울 이남만 우리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천자문을 익히고 진서를 제대로 배워야 하는 이유가 더욱 절박해졌다고 믿고 있다. 한글전용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진서'를 익히는 것이야 말로 일제 강점기를 통해 식민사관에 물든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고 중국의 동북 공정에 맞설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비사란야(非寺蘭若)', 숲 깊은 곳 절집 아닌 절집에서 비승비속의 삶을 살고 있던 무유거사(無有居士)인 그가 "경행(景行)은 유현(維賢)이라, 큰길 걸어가는 사람은 어진사람이 되니"라고 가르치리라 발심한 것은 그만큼 요즘 아이들에게 사람됨을 가르치는 선현의 말씀이 절실한 때문이 아닐런지.

덧붙이는 글 | 천자문 서당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www.cyworld.com/bisaranya를 찾거나 018-238-2697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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