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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에 열린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저지 1차 범국민궐기대회에 이어 2차 대회가 29일 서울 명동에서 열렸다.

대회 참석자들은 'Free Trade Agreement(자유무역협정)'의 약자인 FTA를 'For The America(미국을 위하여)'라고 부르며 거리로 나왔다. "FTA를 왜 반대하는지 들어라"며 절규한 노동자·농민·대학생 등 3000여명은 소통이 막힌 사회가 보여준 성난 민중의 물결이었다.

[15시 50분] "정부의 '평화'와 노동자의 '평화'가 같냐"

▲ 오후 3시 명동역. 대학생과 시민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 변태섭
▲ '미친 소'를 몰아내는 청소년들. "소머리 구멍 슝슝~ 미친소 너나 먹어!"
ⓒ 변태섭
전국학생행진·전국노점상총연합·서총련·사회진보연대 등 150~200여명 남짓의 대학생·시민들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미친 소 못먹겠다", "이게 다 부시 때문이야 ㅅㅂㄹㅁ" 등 문구가 적힌 카드를 든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 시민은 "FTA 때문에 4천만 민중의 삶이 파탄나려 하고 있다"고 분노하고 "FTA를 밀어붙이는 노무현 정부의 비도덕성을 규탄한다"고 연설했다. 고려대 전국학생행진의 한 학생은 "정부가 말하는 평화와 평택주민이 말하는 평화,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말하는 평화가 일치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며 정부의 일방적 정책에 일침을 놓았다.

고려대 통계학과 강민수(05학번)씨는 "한미FTA가 거시적 차원의 문제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일상의 문제"라고 규정하고 "작게는 비정규직이나 의료공공성 파괴를 막기 위해, 크게는 한미FTA를 반대하기 위해 집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16시 30분] "불법은 우리가 아닌 정권이 하고 있다"

▲ 행진하는 시위대.
ⓒ 변태섭
다함께, 전국금속노동조합·발전노조·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에 속한 참가자들과 합류한 시위대는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 "한미FTA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도로를 점거했다.

한 연설자는 "정부는 헌법 21조의 1항(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 보장)과 2항(언론과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 및 집회와 결사에 대한 허가 금지)에 명시되어 있는 집회 결사의 자유를 위반했다"고 비판하고 "지금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은 여기에 있는 우리들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라 연설했다.

이어 "예정된 집회 장소를 허락지 않고 검문소를 140여개나 설치했다는 것은 피와 땀으로 쟁취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한 시민은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노무현 정권이 군사정권을 닮아가고 있다"고 혹평했다.

"오늘의 집회는 사전에 금지된 불법집회입니다, 경고방송 후에도 계속될 경우 부득이하게 공권력을 투입해 전원 연행할 것입니다"라고 경찰은 방송차량을 이용해 계속 경고 방송을 내보냈다.

▲ 을지로입구역 앞 도로를 점거한 3000여명의 성난 물결.
ⓒ 변태섭
[16시 50분] "오늘의 집회는 불법"... 경찰 병력 투입

경찰병력이 투입되었다. 공권력 투입으로 위협을 느껴서인지 시위대의 목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경찰은 경고방송을 계속했지만 시위대는 해산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경찰 병력과 맞선 시위대 앞쪽에서는 일부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남대문경찰서장은 오후 4시 50분께 "신고하지 않은 불법집회를 강행하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이 불법시위로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하고 "해산하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연행해 사법처리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해산 명령을 내렸다. 오후 4시 56분에는 "시민 편의와 법 질서 확립을 위해 법을 엄정하게 집행할 것"이라며 2차 해산 명령을 내렸다.

"때리지 마요(시위대)", "밀지 말고 그대로 있어!(경찰)" 하는 소리도 들렸다. 일부에서 충돌이 일어나자 통제 경관은 서로 1보씩 떨어질 것을 요구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 일부에서는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 변태섭
[17시] "마지막 해산명령입니다, 강제적 조치를"

남대문경찰서장은 3차 해산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시위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경찰의 방송 차량에서는 오후 5시 9분께 "마지막 3차 해산 명령을 마쳤습니다, 해산 명령 후에도 해산하지 않을 경우에는 강제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라는 경고 방송이 나왔다.

"곧 검거에 들어갈 예정이니 기자 분들께서는 안전한 곳에서 취재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도 나왔다. 얼마 안 있어 오후 5시 19분께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마찰이 일기 시작했다.

노동해방학생연대 등 집회에 참가한 여러 대학생·시민들은 "폭력 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전경을 뒤에 두고 서로 팔짱을 낀 채 인간장벽을 만들었다. 이들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인권"이라고 외치고 "평화시위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 "평화시위를 보장하라"며 경찰 앞에 선 인간장벽.
ⓒ 변태섭
[18시 25분] "전원 검거할 예정입니다"... 선은 끊어지고

"공권력을 투입하여 전원 검거할 예정입니다, 곧 저희 경찰을 검거 작전에 투입할 예정입니다, 검거 시에 카메라 등 장비가 훼손될 수 있으니 기자 여러분들은 안전한 곳에서 취재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경고 방송이 다시 나왔다.

검거작전을 시행한다는 1시간 전 방송과 같은 맥락이었지만 시위대와 경찰 간의 분위기는 1시간 전과는 사뭇 달랐다. 경찰들은 기합 소리를 내며 대열을 정비했고 이에 맞서 시위대도 더욱 크게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를 앞뒤에서 포위한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었다. 팽팽했던 선이 끊어지자 그 곳에는 이성이 아닌 감정만이 남았다. 욕설이 난무했다. 경찰은 방패를 휘둘러 위협하기도 했고 시위대도 이에 지지 않았다.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은 "대한민국은 경찰국가"라고 규정하고 "대한민국의 법이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지 의심이 간다"고 탄식했다.

[18시 25분] 배추로 그린 "FTA NO!"

▲ 희망과 결의를 담아 시위대가 벌인 촛불문화제.
ⓒ 변태섭
을지로입구역에서 나와 명동거리로 행진한 시위대는 "다소 불편하시겠지만 주변 상인과 시민들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라며 한미FTA 반대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일부 농민들은 "FTA NO!"를 배추로 그려 길거리를 수놓았고 한국대학생문화연대에 속한 율동패는 실버라이닝의 '평화란 무엇이냐'라는 곡에 맞춰 율동을 선보였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과 어울린 율동은 조금 전 다소 과격했던 시위 모습과 달리 평온해 보였다.

민주노총 소속의 사회자는 "누가 우리를 이 차가운 바닥으로 내몰았습니까"라고 물은 뒤 "미국을 위한, 1%의 재벌을 위한 한미FTA를 체결하지 말 것을 우리는 이 아름다운 촛불로 경고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선동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은 "민중의 분노를 계속 무시한다면 87년 6월 항쟁 이후 임기를 마치지 못하는 첫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경고했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전국의 노동자들은 파업에 지쳤습니다, 지겹습니다, 하지만 국민들과 우리들의 아이들을 위해서입니다"라며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한 뒤 "우리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결의했다.

강원도 철원군에서 올라왔다는 농부 김용빈씨는 "비록 시위는 불법일지 모르나 우리의 마음만은 정당하다"고 말하고 "조선시대에도 신문고가 있어 백성의 말을 귀담아 들었는데, 법으로 오히려 입을 막으려드니 이게 어찌 21세기인가"라고 규탄했다. 이어 "법이 못 가진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촛불문화제를 마지막으로 오후 7시 40분께, 한미FTA 저지 2차 범국민궐기대회는 막을 내렸다.

지나가던 김아람(건국대 의상텍스타일학부 06학번)씨는 "FTA문제가 물론 중요하지만 도로를 점거하면서까지 보이는 행동은 시민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시위참가자인 이화여대 박민희(04학번)씨는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절박하고 정당한 행동"이라고 규정하고 "단순히 불편만을 토로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러는지를 관심있게 들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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