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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연예인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을 하여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아직 한국 사회는 동성애라는 것이 표면적으로 이렇다 할 만큼 논의가 된 바도 없고 성에 대해 개방적인 편이 아니어서 지금까지도 여러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세계 모든 나라가 우리나라와 같지는 않다.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공식적으로 인정되어있는 연예인 동성애 커플들이 더러 있고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커밍아웃’한 연예인도 있다. 즉 레즈비언이나 남성 호모섹슈얼은 서구사회에 직접적이고 널리 팽배해 있는 당면한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작년 상반기 영화들 중 <왕의 남자> <브로크백 마운틴> <메종 드 히미코>는 동성애를 주요 소재로 다룬 작품으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를 벗기는데 일조했지만, 가수 백지영의 <사랑 안 해> 뮤직비디오는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로 KBS 심의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아직 우리 사회는 성적 자유에 관대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왜 동성애를 인정하기 힘든 것일까? 사람마다 얼굴 생김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장래 희망이 다른 건 당연한 것이고, 사랑의 대상이 다른 것은 왜 받아들이기 힘들까? 엄밀히 말하면 동성애자는 사랑을 느끼는 대상이 다를 뿐인데. 그리고 그들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일 뿐인데.

이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한 발짝 다가가보자. 이화여자대학교 레즈비언 인권운동 모임인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 동아리의 한 여학생. 본 기자의 제안으로, 그녀와의 동성애에 대한 솔직 담백한 인터뷰가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다.

- 처음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느끼게 된 것은 언제이며, 어떻게 느끼게 되었나요?
"저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좋아하는 친구가 여자였고, 그 이전의 경험들을 모두 돌이켜보았을 때 이성애자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사람마다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기는 다 다르답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깐 유치원 때,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이 여자를 좋아한다 라고 알아왔던 사람도 있고 저처럼 10대에 정체화하는 사람도 있구요. 40대가 되어서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인지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심정이 어땠나요?
"저는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증)가 별로 없었던 케이스인지라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인 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이성애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살아왔는데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겠죠. 그렇지만 크게 고민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질문 역시 개인차가 큰데 저처럼 크게 문제없이 받아들인 경우도 있을 테고, 정말 힘든 과정을 거쳐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죠."

- 자신이 생각하는 '레즈비언'이란 무엇인가요? 자신만의 개념 정의를 내린다면?
"음, 꽤 어려운 질문이네요. 레즈비언에 대한 정의는 합일점을 찾을 수 없으니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즈비언이란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하면서 같은 여성을 좋아하고 또 그러한 감정과 상황을 스스로 인지하고 받아들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 대상이 동성이기 때문에 쉽게 다가가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식으로 다가가고, 어떤 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나요?
"사람마다 다르죠. 이성애자들이 각각 연애경험과 스타일이 다르듯이 동성애자도 마찬가지지요."

- 우리나라의 레즈비언들은 커밍아웃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수를 파악하기 힘든데요. 우리 주변에 동성애자들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확한 숫자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그리고 그 수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요. 답변드릴 수 있는 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대개 동성애자라고 하면 굉장히 이상한 사람, 남들과 전혀 다른 사람, 외국에나 있을 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동성애자들은 누군가의 친구이고 가족이지요."

-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겪었던 힘들었던 일이 있다면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동성애자는 정체화를 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해서 연애문제, 학업문제, 진로문제, 취직문제에서도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어려움을 겪습니다. 레즈비언은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까지 가중되고요. 이성애를 '정상'으로 보고, 사회가 생각하는 보편성과 다른 사람을 모조리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한국사회에서는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점은 그 자체로 커다란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학교에서 포비아가 심한 교수나 선생한테 자신의 존재(동성애자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발언을 듣더라도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고 참고 들어야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굉장히 소소하고 일상적인 부분에서 겪는 어려움도 많습니다. 게다가 결혼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상 소위 결혼 적령기의 동성애자들은 굉장한 어려움을 겪어야 하구요.

-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 대한 가족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대개의 경우 가족들이 모릅니다.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을 한다고 해도 가족을 가장 마지막으로 미뤄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 가족주의가 굉장히 공고하기 때문에 쉽사리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할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 우리나라는 성 소수자의 인권 보호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전혀 아닙니다. 일단 법제화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글쎄요.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많은 것들 중에 하나겠지요. 특히나 우리나라는 성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이 이루 말할 수 없으니깐요. 동성애뿐만 아니라 이성애가 아닌 모든 성, 그리고 남성의 성이 아닌 모든 성은 비정상으로 취급되고 있답니다. 예로 동성애는 물론이거니와, 장애인의 성(섹슈얼리티의 의미로), 여성의 성, 노인의 성 등은 부끄럽고 비정상이고 말해서는 안될 것으로 여겨지니까요."

이성애자들이 동성에게 끌리지 않는 존재이듯이 동성애자들은 이성에게 끌리지 않는 존재이다. ‘존재’는 비난할 수 없는 법이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생겨난 존재’로서, 서로 다른 성징을 갖는 것은 얼굴 모습이 다르고 천성이 다른 것과 똑같이 다양성을 요구하는 대자연과 하늘의 뜻에 따른 것일 뿐이다. 따라서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사회에서 '왕따'시키는 일은 마치 여자나 혼혈아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혹은 혈액형이 AB형이라는 이유로 그 존재에 돌을 던지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왜 동성애자임을 밝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홍석천씨가 말했다. “그게 나니까. 거짓말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잘못한 것 없으니까. 단지 그뿐이고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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