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았지만 12월 3일 실시된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는 현직 대통령인 우고 차베스의 압승이 예상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면 차베스는 연속 세 번의 대선에서 계속 베네수엘라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 국내 언론은 차베스를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포퓰리즘, 즉 대중영합주의는 권력의 필요성에 의해 대중에 영합하고 대중을 이용하는 정치를 말한다. 포퓰리즘은 일시적으로 득세를 할 수는 있으나 지속적일 수 없다. 아무리 국민의 눈을 가려도 정치경제적 성과는 머지않아 판명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적 선거가 충분히 보장된 나라에서 세 번의 대선을 거치며 국민들이 연속적으로 지지를 보낸 정치인을 포퓰리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건 그 나라 국민들이 분별력이 없거나 혹은 우리 언론이 제정신이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다. 자, 이제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지 접근해보기로 하자.
베네수엘라에 미인이 많은 이유
남미대륙에 위치한 베네수엘라는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시차가 11시간. 거의 지구 정반대편에 위치한 나라다. 지정학적 공간 개념만으로는 한국과 인연이 닿을 이유가 별로 없다. 실제로 양국간 교역과 교류는 많지 않다. 때문에 일반적인 한국인이 갖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극히 미미하다.
같은 남미 국가들 가운데 브라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등은 축구를 통해서나마 자주 접하지만 베네수엘라는 피파 랭킹 70위권을 오르내리는 정도로 축구 대륙 남미에서 가장 약체이다. 우리가 두 번의 월드컵에 열광하는 동안에 베네수엘라에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은 이유다.
호사가들에게 베네수엘라는 미인이 많은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년간 미스 유니버스 넷과 미스 월드 다섯 명을 배출했다. 미모에 관한 한 국제적으로 공인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유독 미인이 많이 배출되는 이유가 기가 막힌다.
한국보다 약 10년 앞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베네수엘라는 2600만 인구 가운데 64%가 빈곤층, 다시 그중 절반이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절대빈곤층을 이루고 있다. 차베스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1998년 당시 상황이 그러했던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한반도의 네 배가 넘는 너른 국토를 가졌으며 또한 세계 5위 산유국이다. 그러나 펑펑 터지는 석유 외에 산업의 균형적 발전을 꾀하지 못했으며 석유에서 나오는 막대한 부는 해외 자본과 국내 일부 자본 그리고 관료들이 독차지했다.
오일달러로 생필품과 농산물을 해외에서 수입해 쓰면서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었고 나라 전체로 일찌감치 농업을 포기했다. 농민들이 먹고살 것을 찾아 도시로 몰려들어 인구 90%가 도시에 집중되었다. 이들 대다수는 빈민가를 형성하고 노점상과 비정규적 일로 연명하며 살아갔다.
수도 카라카스는 폭우가 쏟아지면 일쑤 무너져 내리곤 하는 조악한 빈민들의 거주지와 사설 경비업체들이 군대보다 삼엄한 경비를 펼치는 부유층의 호화 주택가가 정확한 경계를 가지고 나뉜다. 빈민들이 그 경계를 넘어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이런 베네수엘라에서 미인대회는 일부 젊은 여성들에게 지독한 가난을 탈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 신데렐라의 무도회장이었다. 물론 그 확률은 젊은 여성 전체로 본다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경우의 수와 별반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혁명 8년이 베네수엘라를 깨우다
이같은 절망적 상황에서 치러진 1998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44세의 젊은 후보 차베스를 새 대통령으로 뽑았다. 차베스의 집권을 기점으로 베네수엘라는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과 그를 뽑은 민중들이 함께 구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혁명을 추진하고 있다.
20세기 역사는 무장투쟁을 통한 혁명의 많은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좌파나 개혁 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하여 합법적으로 정권을 인수한 경우는 그보다 더 흔하다. 그러나 지난 세기는 이 양자가 결합된 경험을 남기지 못했다. 베네수엘라는 혁명 세력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고 국민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혁명을 추진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분명히 지난 세기보다 진일보 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 혁명이 진행된 지난 8년의 변화는 놀라운 것이다. 40년간 권력을 장악해 왔던 보수 정당 집권 체제(푼토피호 체제)가 거의 완벽하게 종말을 고했다. 신자유주의 10년 동안 피폐해진 빈곤층의 삶은 극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학교 문턱을 밟아보지 못했던 140만의 국민이 처음으로 배움의 기회를 가졌고 전체 인구의 70%인 국민 1700만 명이 생애 처음으로 건강 보험 혜택을 받게 되었다.
베네수엘라가 내부에서 진행 중인 역동적인 혁명의 자신감은 남미대륙 전체에 대한 활기찬 제안으로도 이어진다. 차베스가 제안한 남미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 구상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적용하여 이 지역을 계속 자신들의 뒷마당으로 묶으려는 부시의 기도를 번번이 좌절시키는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남미 지역 공동체만이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차베스의 당당한 발언은 지지세를 거침없이 확장중이다. 2006년 9월 UN 총회 연단에 선 차베스는 전일 유엔 연설을 한 부시를 가리켜 '어제 여기에 악마가 왔었다'며 미국의 패권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맹비난했다. 그는 유엔 총회 역사상 가장 과격한 발언을 했고 가장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혁명은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
지금도 베네수엘라의 미인산업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미인산업만이 젊은 여성들의 유일한 희망인 것은 아니다. 산업구조가 근본 재편될 것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짧은 기간이지만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경제적 자구책을 만들어 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혁명 이전 762개에 불과했으나 2006년 8월 시점에는 15만3천개로 늘어난 협동조합이다. 새로 만들어진 이들 조합 안에서 줄잡아 150만명의 농민과 노동자가 스스로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경제활동을 벌여나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경제운영의 원리와 목표가 바뀌고 있다. 혁명 이전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다른 여느 신자유주의 국가와 다름없이 이윤의 끊임없는 확대만이 최종 목적이었다. 주주의 이익만이 경제활동을 규정하는 원리였다. 그러나 지금 베네수엘라는 '사회적 경제'라는 관점에서 경제를 재구성하는 중이다.
사회적 경제는 경제 활동의 최종 목적을 국민들의 경제적 사용가치의 향상에 둔다. 좀더 나아가서는 경제가 인간의 능력을 계발하는 데 쓰이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경제의 작동을 규정하는 원리는 '주주의 이익'이 아닌 '사회적 연대성'이다. 자본이 인간 위에 올라선 전도된 자본주의 현상을 경제 시스템 전체적으로 극복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혁명의 진행 상황은 20세기에 선보인 익숙한 방식들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시장과 자본을 철폐하거나 적대시하지 않고 새로운 체제 내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택한다. 혁명에 대하여 적대적인 세력이나 반대정당을 탄압하지도 않는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라든가 일당독재 개념은 찾아볼 수 없다.
민주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공평하게 확산되고 있다. 그 수혜를 한껏 누리는 대표적인 집단이 베네수엘라 언론이다. 수십 년간 지배 체제의 일환이었던 기성 언론은 차베스 정부를 공격하고 혁명을 비아냥대는 일을 제1의 과제로 여기지만 어느 방송이나 언론사도 탄압을 걱정하지 않는다.
2002년 4월 발생한 군부 일각의 쿠데타는 명백히 미국과 자본에 의해 사주되고 베네수엘라의 주요 매스컴들이 부추긴 구 기득권 세력의 총체적 반혁명 기도였다. 반정부 언론은 시위 도중 친 차베스 진영과 반 차베스 진영의 충돌로 유혈사태가 발생한 것을 지속적으로 물고 늘어지며 차베스의 하야를 주장했다.
4월 12일 군 장교 일부가 정국 혼란을 틈타 쿠데타를 벌였다. 쿠데타군이 차베스를 군 기지에 감금하고 사퇴 요구를 하고 있는 그 시각 이미 보수언론은 차베스가 대통령직을 사임했다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쿠데타 발발 사흘 만에 차베스를 대통령궁으로 복귀시킨 것은 베네수엘라 민중들이다. TV는 혁명을 보도하지 않는다. 차베스에게 모든 혐의를 덮어씌운 채 혼돈과 공포만을 전할 뿐이다. 그러나 이미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혁명을 경험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카라카스의 주요 거리와 차베스가 감금되어 있던 군 기지가 거대한 민중의 물결로 넘쳤다. 30만 시민들이 대통령궁을 에워쌌다. 그리고 마침내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자신들이 선출하고 자신들과 함께 혁명을 추진해온 차베스를 대통령직에 복귀시켰다.
포퓰리즘인가 자각된 국민의 힘인가
한국 언론에는 늘 그렇고 그런 남미의 정치적 혼돈상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소개되었지만 이 드라마 같은 과정의 이면에는 베네수엘라 민중의 정치적 진출이 자리잡고 있다. 이 점이 1973년 칠레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당시 선거로 집권한 사회당 정부의 합법적 사회주의 실험은 미국이 지원하는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에 의해 좌절되고 아옌데 대통령은 고립된 상태에서 카스트로가 선물한 기관총을 들고 맞서다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나 2002년 베네수엘라에서 반혁명 쿠데타는 국민을 더욱 강하게 단련하는 계기에 불과했다.
군부 쿠데타, 국민 총생산을 -10%로 떨어뜨린 자본의 철시와 총파업, 기득권 세력이 주도한 대통령 소환 시도 등 베네수엘라는 주요한 반혁명을 세 번이나 넘어서며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지역 단위와 공장에서 그리고 각종 단체와 정당에서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정치와 경제에 대한 직접 지배권을 행사하면서 권력의 진정한 주체로 탄생하는 중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지난 8년간 진행되고 현재도 더욱 가속도를 내고 있는 혁명은 왜곡되고 뒤틀린 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동성,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총체적 시도, 핵심 동력을 이루고 있는 국민들의 자주적인 참여, 수차례에 걸친 반혁명 기도에 맞서 혁명을 수호한 간고한 투쟁, 이전 시기에는 찾아지지 않는 새로운 혁명의 특징에 대해 국내 대부분의 언론은 아무 것도 전하지 않는다.
대신 차베스는 감당하기 어려운 돌출 정치인이거나 국제무대의 돈키호테로, 베네수엘라인들은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몽매한 국민으로 묘사되기 일쑤다. 신자유주의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반기를 드는 일에 호의적인 언론이 드물기는 한국이나 베네수엘라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언론이 혁명을 보도하든 그렇지 않든 지금 이 순간에도 현실은 변화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의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과 베네수엘라
한국은 1997년 환란을 계기로 사회 전체가 송두리째 신자유주의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미FTA는 지난 10년간 국민들이 체험한 것보다 더 크고 가혹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베네수엘라는 한국보다 이미 10년 앞서 그 과정을 실컷 겪었고 이제는 의연히 정치, 경제, 사회 제 분야에서 신자유주의를 제압하는 단계를 향하고 있다. 일부 정치적 리더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민 다수가 함께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베네수엘라를 눈여겨보아야 할 까닭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은 현재 진행형이고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기에 지금 그 전망을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2005년 1월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에서 차베스는 '우리는 사회주의를 재창조해야 합니다. 그것은 옛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가 아닙니다'라며 사회주의를 선언했다. 그리고 2006년 5월 노동절 집회에서는 지향해야 할 사회주의를 '21세기 사회주의'라고 정의했다. 베네수엘라가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았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의 최종 귀착지가 어디인지 판명되기까지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베네수엘라의 실험이 무엇을 지향했고 어떤 성과를 남겼는지, 역사가들의 해석이 나오기를 한가로이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 한국의 현실 또한 베네수엘라 못지않게 팍팍하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이 아직 미완이라 해도 거기서 발견되는 시대적 보편성과 과학적 원리를 탐구하는 작업은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는 데 풍부한 상상력과 간접경험을 제공한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다. 19세기의 이론도 20세기의 경험도 중요하다. 그러나 21세기의 혁명은 지금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차베스와 베네수엘라는 결코 먼 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은 21세기 역사의 선두에 서 있다.
덧붙이는 글 | * 정희용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미디어센터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