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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만화책
400~500명의 사람이 4일에 걸쳐 천천히 살해당했다. 한여름 굴에 몰아넣고 고개를 내밀기만 하면 총을 쏘아대던 군인들. 먹을 것 하나 없는 굴에는 핏물만 흘렀다.

적이라고 생각했다면 수류탄을 던지거나 작전을 전개했다면 됐을 것을 그들은 말라죽이듯이 이들을 학살했다. 전세계에 '노근리사건'이라고 알려진 그 때 이야기다.

꽤 끔찍한 장면이다. 이 장면을 최근 나온 <노근리이야기>(박건웅 그림, 정은용 원작)를 통해 만났다. 하지만 노근리는 소스라칠 정도로 끔찍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꿈에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아주 충격이진 않았던 모양이다.

1980년 5월 광주학살을 처음 접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틀림없이 내가 그런 삶에서 멀어진 것이고, 내 감성이 무뎌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담담한 까닭은 무엇일까. 게다가 이 끔찍한 사건을 다룬 책을 내가 이렇게 흠뻑 빠져서 책장을 넘긴 이유는 무엇인가. 612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평소 한 책을 50페이지 이상 읽으면 좀이 쑤시는 편인데, 두세 번 정도 쉬고 단번에 읽었다.

@BRI@아마 너무나 격정적으로 그 시절을 그렸다면 책을 덮었을 것이다. 그 과도함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저자는 그 끔찍한 사건을 참 담담하게 그렸다. 단순하면서도 굵은 선, 흑과 백만 가득한 화면, 수묵화같은 풍경,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를 하면 딱 어울릴 것 같은 풍경이다. 흡사 판화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담담한 톤으로 수위 조절을 한 듯하다. 아마 흑백화면이 아닌 컬러라면 달랐을 것이다. 목이 잘린 머리에 달린 눈에 핏발이 서있고, 잘린 머리에서 선홍빛 피가 솟구쳤다면 아마 훨씬 기분이 우울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책장을 덮었을 지도 모른다.

단지 흑과 백만으로 화면 처리를 한 게 인쇄비가 부족했기 때문인지 작가의 의도적 연출인지는 모르겠다. 이유야 어떻든, 먹과 백으로 화면 처리를 한 것은 훌륭한 시도였다고 말하고 싶다.(단 미술평론가 성완경이 지적한 것처럼 가끔씩 과도하게 '떡처리'(먹이 과도하게 번진 것)된 부분은 이후 보완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연출만으로 사람을 끌어당길 순 없다.

충격사건을 다룬 <노근리이야기>는 한 편의 수묵화같은 그림으로 그 때를 재현했다.
충격사건을 다룬 <노근리이야기>는 한 편의 수묵화같은 그림으로 그 때를 재현했다. ⓒ 박건웅
사실 <노근리이야기>는 드라마적으로 잘 만들어진 만화는 아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소재로 한 <맨발의 겐>과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

<맨발의 겐>은 너무나 화목했던 가정과 이후의 파괴를 통해 전쟁이 남긴 참상을 극도로 잘 대비시킨다. 게다가 전쟁 반대를 외쳤던 주인공 아버지가 결국 전쟁에 희생당하는 아이러니한 현실과 전쟁이라는 광풍 속에 무너지는 사람을 통해 개인의 무력함을 잘 보여준다.

이런 드라마틱한 서술 방식을 <노근리이야기>에선 보기 힘들다. 박건웅의 움직임 위주로 극이 전개되지만 그가 딱히 주인공이라고 보긴 힘들다.

게다가 그가 전쟁에 대해 특별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보기 힘들고, 그의 가정사가 그다지 부각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한 마음으로 남쪽으로 떠난 수많은 피난민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그 담담함 속에 담긴 무척 세세한 묘사들이었다. 노근리 쌍굴에서 400~500명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갈 때 작가는 한명 한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사람들의 죽음은 생생한 육성을 통해 살아난다. 어떤 설명 뒤에 박화자(당시 9살), 박희숙(당시 16살), 이병회(당시 16살), 김학중(당시 19살), 정구헌(당시 17살)과 같은 이름들이 등장하는 순간 만화는 현실로 다가온다. 게다가 작가는 '왜' 당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빼놓지 않고 설명한다. 노근리에 민간인들을 몰아넣고 총질을 해대던 미군이 한 말이다.

"대전에서 피난민을 가장한 인민군에게 우리 미군이 엄청나게 당했다. 따라서 의심스러운 피난민은 모두 죽이라는 상부의 엄명이 떨어졌다."

노근리 학살 장면. 만약 이 장면이 컬러였다면?
노근리 학살 장면. 만약 이 장면이 컬러였다면? ⓒ 박건웅
또한 노근리 학살이 벌어진 뒤 가까스로 탈출한 희숙을 구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미군이었다. 그 뒤엔 다음과 같이 설명이 따라온다. "그들도 자기들이 한 행동에 기가 막힌 듯했다."

멀어져가는 의식속에서 희숙이 떠올리는 생각.

"한쪽에선 죽이고, 한쪽에서는 치료해 주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지? 두 얼굴의 이방인들…."

낯설지 않다. 한국전쟁의 학살을 겪은 한국 군인들은 불과 20여년도 지나지 않아 베트남에서 똑같은 학살을 자행한다. 사실의 조합들을 따라가면서 든 생각은 결국 '반미'보다는 '반전'이었다.

작가가 '한국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모든 이들의 영전에 올린다. 아름다운 땅 평택에 미군 없는 평화를 위하여'라고 서문에 쓴 것을 보면 그가 '반미'를 외치고 있음을 알기란 어렵지 않다. 게다가 그의 다음 작품은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차분하게 사건을 정리한다.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정리를 통해 '노근리'는 보다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아마 노근리 사건의 피해자인 정은용의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가 원작이기 때문인 듯하다. 당시 다섯살 아들과 세살 딸을 잃고 부인은 중상은 입은 정은용씨는 노근리의 피해자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건이 벌어질 당시 멀리 대구에 있었다. 한 발 떨어진 자의 죄책감과 거리감이 아마 독자의 위치와 비슷하게 맞아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원작자와 작가 소개

박건웅, 홍익대 미대를 졸업했다. 20004년 첫 장편극화 <꽃>(전 4권)을 펴냈다. 비전향장기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이었다.

제주도 4·3사건을 주제로 자료를 수집하던 박씨는 2003년 겨울, 노근리대책위 부위원장인 정구도씨로부터 노근리 사건 만화화 작업을 제안받는다.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그는 <노근리이야기> 2부를 끝내면 <돌연변이>라는 이름의 SF만화를 그릴 계획이다. 이 작품은 미국의 패권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정은용. 충청남도 경찰국 공보주임. 감찰주임 역임. 반공연맹 충남도지부 총무과장 역임했다. 현재 노근리사건 희생자 유족회장이다. 1994년 4월 1일, 2000년 9월 20일 두 차례에 걸쳐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펴냈다.
작가는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 아닌 망각이다'라고 강조했다. '노근리사건'은 철저한 망각의 산물이다. 1950년 7월 일어난 이 사건은 34년이 지난 1994년 당시 정은용(노근리 사건 희생자 유족회장)의 실화소설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그해 <한겨레>와 <말>지가 집중 보도했지만 이내 잊혀졌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노근리'에 주목한 매체는 없었다.

다시 6년이 지나 AP통신이 집중 보도한 뒤에야 세상의 주목을 끌 수 있었다. 각 매체는 '충격'이라는 이름으로 새삼스럽다는 듯이 보도했다. AP통신은 노근리 보도로 그 해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그리고 다시 6년이 지났다. 이 책은 그 망각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이 책은 곧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출간되며 이탈리아 볼로냐와 파리 등에서 박 작가의 개인전과 사인회과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이후 나올 2부에선 노근리 사건이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지 다룰 계획이다.

노근리 이야기 세트 - 전2권 - 그 여름날의 기억 + 끝나지 않은 전쟁

박건웅 만화, 정은용.정구도 원작, 보리(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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