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개마고원
<인간사색>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인간관계에 관심이 많은 저자는 이 책에서 크게 사랑, 욕망, 청춘, 진실 4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주제마다 연관된 소주제를 두었는데 인용이 참 많다. 저자의 방대한 스크랩 규모를 생각하니 절로 탄성이 날 지경이다.

책을 읽고나면, 좀더 건설적인 인간관계 형성이 가능해질까. 내지는 책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서 더 나은 인간형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책장을 펼쳐들었다.

사랑도 일종의 정치경제학?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걸 가진 사람을 사랑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은 상당 부분 정치경제학이다. 이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사랑에서 정치와 경제의 몫을 인정하는 자세는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그걸 당당하게 인정한 때도 있었고, 가급적 그걸 감추려는 때도 있었다.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연애와 결혼을 당당히 분리해 말하는 최근 세태는 사랑의 정치경제학이 오늘날 가장 솔직한 인간관계론으로 등극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다.'(30쪽)


‘전율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뜨겁고 격렬한 사랑은 반드시 창조되어야만 할 그 무엇’이라는 저자는 의학자의 분석부터 심리학자가 본 사랑에 이르기까지 학문적으로 사랑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불륜 드라마와 불륜 폭로 범죄는 불륜 공화국의 한 단면을 드러내 주는 것이며 인터넷이 불륜을 부추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순결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역사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광수의 자전 소설과 쇼펜하우어의 말이 참 가관이었는데, 나혜석과 같은 선구적 인물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이광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욕망은 인간 세계의 엔진’

욕망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 무엇인가 원하는 게 있어야 노력도 할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것이 남에게 해가 되고, 자신에게도 독이 되어서는 곤란하겠지만 인간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욕망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욕구’ ‘욕망’ ‘욕심’에 따라 세상을 본다. 심리학에선 이를 지각적 강조라고 한다. 예컨대, 가난한 아이는 동전을 크게 보고 부자 아이는 동전을 작게 본다.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보다 더 잘생기고 더 똑똑하게 보는 경향도 있다.'(86쪽)

저자는 과잉 욕망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과잉인지 아닌지 그걸 판결하는 게 쉽지 않더라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보통사람들의 욕망은 ’평등주의‘라고 꾸짖으면서도 자신의 욕망은 무한대를 추구하는 엘리트들의 이중잣대’를 경계해야 하며, 이미 우리는 욕망의 관리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인간의 욕망과 욕망이 불러오는 싸움과 논쟁에 대한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청춘, 계급갈등의 비무장지대인가?

‘청춘 예찬’은 거대한 음모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저자는 김훈처럼 청춘에 대해 의연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고 보니 한 해 한 해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버리는 것 같다. 점점 더 빠르게 느껴지는 시간의 속도를 어쩌면 좋은가.

빨리 올해가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19세 소녀와 올해는 좀 천천히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29세 여성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빨리 어른이 되어서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과 청춘에서 한 걸음씩 멀어져 가는 것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바로 그 차이가 아닐까.

@BRI@그 두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체득한 사회적 현상에 가장 큰 원인이 두고 있을 것이다. ‘동안 열풍’이나 ‘새것을 광신하는 풍조’가 바로 청춘 예찬의 반증이다. 그것은 외모지상주의와도 연결될 수 있겠다. 나이보다 더 젊어지고 싶은 마음, 가진 것을 아끼는 마음보다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마음이 문제다.

우리가 청춘에 목을 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는 기업의 상품 판매 전략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책에 인용된 여성학자 정희진의 이야기에도 나이에 대한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히 전해졌다.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만든다. 그래서 차이는 언제나 특정한 사람의 시각에서 구성된 정치적 해석이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려면, 나이가 아무런 의미를 발생시키지 않아야 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의 시기마다 모든 시간의 가치는 균질해야 한다. 나이에 따라 인간의 권리가 다르지 않다면, 노후라는 말부터 없어져야 한다. 노전 생활이 따로 없듯이 노후 생활도 없는 것이다.’ (155쪽)

또한 정희진은 ‘사십 이후에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식의 언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젊은이’도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바, 자기 성찰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설파했다.

그러고 보니 가는 세월이 그리 아까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시간의 가치는 균질해야 한다’는 말이 귓전을 맴돈다. 청춘의 시간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모든 시간이 다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 장 ‘진실’에서는 기억과 신념, 의리와 배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상처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고집과 도덕적 우월성이 합쳐지면 독선이 된다는 이야기와 성찰 없는 신념은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된다.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저자 특유의 입담으로 술술 잘 읽히는 것이 책의 장점이다. 자칫 지루하고 딱딱하기 쉬운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 책은 흔하지 않을 법하다. 책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저만치 물러나 바라보며 사색하는 귀한 시간을 독자들은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간 사색 - 한국인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강준만 지음, 개마고원(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과 영화, 음악을 좋아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