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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국악원 발행 국악누리 창간 1월호와 12월호
ⓒ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원장 김철호)이 발행하는 <국악누리>는 아직 사람들 눈에 낯설다. 올해 1월 창간해서 이제 겨우 12권의 책을 낸 일천한 경력을 가진 새내기 잡지인 것도 그렇지만, 워낙 국악이란 장르가 이목을 받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아주 조용히 국악애호가나 초심자들 사이에서 <국악누리>가 필독서로 자리매김해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국악의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지난 9월 원음방송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 중 70%는 국악공연장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 충격적인 사실을 이 조사에 담겨져 있는데, 무료공연이라도 가겠다는 응답은 열 중 셋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세계일보 11월15일자 보도).

@BRI@또 다른 조사결과는 더욱 참담한 현실을 자각시켜 주고 있다. 공연티켓 예매업체인 티켓링크와 동아일보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11월 23일보도)에 따르면 영화에 비해 국악공연 예매는 1만분의 1에 그치고 있다.

이를 백분율로 표시하자면 0.0001 퍼센트로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영화에 비해서 다른 어떤 공연 장르도 맞설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중에서도 국악이 가장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 조사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더 말해주고 있다. 전국 티켓예매자의 54%가 서울이고, 서울에서 강남, 서초구송파구 등 3개 구가 전체의 32%를 차지해 강남지역이 문화소비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하고 있다.

그런 속에서 <국악누리>의 선전은 눈여겨볼 만한 현상임에 분명하다. 책 읽지 않는 분위기, 인문학의 위기 속 한국은 문예지를 낸다는 것, 그것도 전통문화를 다루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직 단정짓기에는 이르나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국악누리>의 성과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 국악누리 표지는 항상 전통화로 장식된다. 계절에 따라 그림의 정취도 달라지는데 6월과 9월의 계절변화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 국립국악원

기관지인 만큼 기관의 홍보도 외면할 수 없을 텐데 <국악누리>는 직접적인 기관홍보를 과감하게 줄인 대신에 전통악기역사, 숨겨진 명인 이야기, 전통그림 해설, 전통가옥 탐방 등 알아두면 좋을 기사들로 채우고 있다. 음악이 비중이 조금 높기는 하지만 국악이 아닌 문예지적인 요소가 많은 <국악누리> 편집방향은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만족시켰다.

또한 국악현실과 관련된 조사를 선행하지 않았지만 처음 <국악누리> 창간안을 만든 국립국악원 기획홍보팀 박옥진 팀장은 사전에 알아서 주요 공략대상을 강남과 여성으로 정했다. <국악누리>는 관공서보다 강남구 은행에 비치되고 있다. 향후 발행부수가 확장되면 미용실 등 여성들의 생활주변에 밀착시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여성은 문화소비의 주역이기에 그들을 대상으로 한 전략은 필수적이다.

다만 창간 첫해에는 편집방향에 있어 명확한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한 까닭에 좋은 내용인 것은 분명하지만 문장이 다소 어렵고 딱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국악원은 2월과 11월 두 차례 걸친 독자설문조사를 통해 내년의 편집방향을 새롭게 설정하였다.

독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악누리> 주된 독자는 20~30대가 60% 이상이고, 여성의 비율70%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향후 편집방향을 젊은이와 여성취향의 컨텐츠를 보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사진 등 이미지를 대폭 늘리고, 쉽고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찾아내어 내년부터는 쉽고 눈이 즐거운 ‘쉬운누리’로 만들겠다고 한다.

<국악누리> 변화의 요인은 독자들의 힘이었다. 국악원 홈페이지 ‘묻고답하기’에는 <국악누리> 구독을 요청하는 글이 단연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한정된 부수로 인해 나중에 신청한 독자들은 3개월 치만 받아볼 수 있어 기획홍보팀도, 더 받지 못하는 독자도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구르는 형국이다. 예산이 문제의 원인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 국악누리 발행 책임을 맡고 있는 국립국악원 기획홍보 박옥진 팀장
ⓒ 김기

<국악누리> 간행을 책임지고 있는 박옥진 팀장은 “내년에는 직접 예산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지면과 발행부수를 늘리는 일이 숙제입니다. 만드는 입장에서 책을 달라는데도 주지 못하는 것은 죄송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일입니다. 최대한 노력해서 두 가지 당면과제를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고 싶다”고 한다.

<국악누리>는 기관에서 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독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한정된 예산에 부수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게다가 내년에는 적은 예산이 오히려 준다고 하니 구독을 원하는 독자들의 아우성은 커져만 갈 듯하다. <국악누리>를 받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홈페이지 온라인 구독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국악누리> 열두 권의 발행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하나의 문화가 성장하려면 주변 또한 성장에 탄력적으로 조응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문화환경 중 큰 요소 하나가 바로 책이 주는 영향이다. 지면이 많아야 국악 및 전통문화에 대해서 글 쓰는 사람이 늘기 마련이고, 그것은 지적 발전과 더불어 독자층 확보를 통한 전체 문화향유 인구를 늘리게 된다.

그러나 국악계는 지면이 없었다. 간헐적으로 평론집이 나오기는 하지만 문화환경에 조력하기에는 그 양이 너무 적기 때문에 영향력도 크지 못했다. 영화계에 영화를 전공한 사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문화장르란 다양한 출신자들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해 발전하게 되는데, 국악계에는 국악전공자들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국악누리>가 평론가들의 집산지가 되라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글을 실을 작은 공간이라도 마련된 의미를 마련하였다.

올해 국악원이 벌인 많은 일 중에 으뜸 항목에 끼일 <국악누리>는 내년 즐거운 콧노래 같은 가벼움으로 독자들을 찾을 것이다. 책 읽지 않는 국민, 자기 전통에 무관심한 국민이라는 두 가지 오명을 벗는데 <국악누리>가 큰 힘을 발휘해주기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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