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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중에
제주도 여행 중에 ⓒ 나관호
잠결에 나오시는 어머니는 언제나 존댓말을 하신다.

"저 때문에 못 주무셔서 어떻게 하지요? 죄송해서."
"어머니! 제가 누구에요?”
"호호호. 왜 자꾸 물으세요. 그것도 모를까봐."
"어머니, 저를 똑바로 보세요. 여기는 우리 집이에요. 전 아들이구요."
"아이, 그럼 내가 아들을 모를까봐. 맞아 우리 아들."

어머니는 내 물음에 생각이 잘 안나면 잠시 머뭇하신다. 그리고 “그것도 모를까봐”라고 답하신다. 노련해지셨다. 순간 기억이 안 나는 상황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태도는 어머니에게 판단능력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자그마한 변화에도 나는 기쁨을 얻는다. 어떤 때는 그런 어머니 모습에서 귀여움을 느낀다. 애기 같다.

어머니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머니! 예뻐요.”
“내가 뭘. 늙었지.”
“아니에요. 아직 젊으시고 피부도 좋으세요.”

언제나 어머니에게 칭찬요법은 어머니 마음을 즐겁게 만든다. 어머니 눈과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부끄러우신지 소녀같이 말한다.

“왜 자꾸 쳐다봐?~~~”
“어머니가 예뻐서요?”

오늘은 왠지 어머니라는 호칭이 정겹다. 자꾸 불러보고 싶은 말이다. 이른 아침, 여동생이 자기 집으로 어머니를 모셔 오라는 연락이 왔다. 며칠 동안 바깥바람을 만나지 못한 어머니에게는 좋은 시간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내 차 옆자리에 앉으신 어머니의 모습이 순수하고 귀엽다.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어머니!”
“왜?”
“그냥 불러봤어요.”

어머니를 생각해보니 안쓰러움이 함께 느껴진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어가시는 어머니를 보고 생긴 연민이다.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의 하루 일과를 생각해보니 너무 단조롭고 반복적이고 매일 거의 같은 패턴의 연속이다. 아침에 기도하시고, 식사 후 강아지 밥 주고, 책 읽고, 퍼즐하고 또 식사하고 가끔 빨래도 하시고. 이런 단조로움 속에서 어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사실까 궁금해졌다.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언제가 제일 기쁘고 좋으세요?”
“음, 우리 아들 잘될 때. 아들 1등할 때.”
“그렇게 아들이 좋으세요?”
“그럼. 우리 아들은 잘되지. 암, 잘 되고 말고.”
“내가 잘 되는 것은 모두 어머니 때문이네요?”

그럴 때면 어머니야 말로 자기개발 전문가 같다는 생각도 가끔 해본다. 어머니는 아침 저녁 아들 위해 기도하신다. 가만히 들어보면 거의 비슷한 말이다. 아들이 고난을 이기고, 문제를 이기고, 세상을 이길 줄 믿는다는 고백이다. 어머니는 논리로 말하기보다 오랜 시간 반복되어 온 것이 기억에 남아 있으신 것이다.

기억이 많이 흐릿해지셨지만 마음에 담아 놓은 아들을 위한 소원들은 항상 살아 있다. 이런 부분들은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우리 아들은 잘 된다니까?”
“왜요?”
“내가 딱 생각하면 아들 잘 되는 게 보여. 사람들이 많이 모인데서 아들이 말한다니까?”
“그래요. 어머니 덕이네요.”
“우리 아들이 최고로 잘돼.”

어머니 말씀에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마침 어느 기업의 자기개발 강의와 위성방송 녹화 스케줄이 있는 날이라서 어머니 예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닌데 아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신념에 가득 찬 말을 하신다. 어머니의 ‘생각과 말’에 대한 영역은 염려나 근심이 없다. 그것은 사랑이 가득 찬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머니의 적극적인 말과 생각은 자식을 바꾸는 힘이 된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도 더 건강하시고, 얼굴도 예쁘시고, 밥 잘 드시고, 잠도 잘 주무시는 모습이 좋아요.”
“내가 예뻐?”

어머니와 나는 어느새 자기개발 강의 ‘실천편’을 서로에게 적용하고 있다. 어머니의 그런 반응이 너무 감사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어머니의 치매 증세가 좋아지고 있다는 위로를 받는다.

치매 어머니와 살면서 나름대로 배우고 깨달아 가는 것은 깊은 사랑마음과 섬김, 긍정적인 고백과 칭찬은 치매바이러스를 대항해 싸우는 ‘삶의 백혈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들어 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서 요즘 어머니를 위한 칭찬과 관심, 사랑과 섬김의 강도를 높여간다.

주무시기 전에 누워 계신 어머니 얼굴을 여러 번 쓰다듬으면서 예쁘시다는 말, 건강하시라는 말을 여러 번 해드린다. 그러면 어머니는 소녀가 된다. 눈망울이 촉촉이 젖어오고, 눈물이 글썽거리신다.
‘어머니는 팔순 소녀이십니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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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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