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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 동안 부지런히 일하고 오랜만에 쉬는 일요일! 날씨는 매우 쌀쌀하고 차갑지만 가까운 북삼 마을에라도 다녀오자 싶어 남편과 둘이 자전거를 타고 나갔어요. 가을걷이를 끝낸 쓸쓸한 들판을 동무삼아 찬바람을 가르며 부지런히 달렸어요. 길을 나선 참에 아예 점심까지 먹고 돌아오자 싶어 몇 주 앞서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 ‘용천수 밥집’에 들렀어요.
경북 칠곡군 금오산 자락 바로 밑에 자리 잡은 용천수 밥집은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하고 시골냄새가 물씬 나지만, 손두부와 보리밥 맛이 매우 좋은 곳이에요. 우리는 나중에 알았지만, 사람들 입소문을 타고 꽤 이름난 곳이더라고요.
또 여기엔 밥집 이름이 말해주듯이 물맛 좋기로 이름난 샘터가 있어요. 바로 ‘용천수’인데요. 밥집 바깥 어르신이 솟는 샘물이라 하여 ‘용천수’라고 이름 지었대요. 이 물은 이곳 사람들뿐 아니라 조금 떨어진 마을에서도 물을 길어 갈 만큼 물맛이 퍽 좋아요.
부지런히 땀 흘리며 올라온 탓인지 몹시 배가 고팠어요. 지난 번 먹었던 보리밥과 손두부가 아주 좋았지만, 이번에는 칼국수도 한 번 먹어보자 싶어 두 그릇을 시켜놓고 앉았는데,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밥집 한쪽에 앉아 있는데, 겉모습만 봐도 뭔가 남달라 보였어요. 우리보다 먼저 온 손님과 얘기를 주고받는 걸 보다가 그 손님 손에 들려 있는 공책을 보았어요. 넌지시 어깨 너머로 무얼까 궁금하여 보는데, 바로 ‘북삼의 찬가’라고 하는 시가 보이는 거예요.
몇 주 앞서 이곳에 왔을 때, 밥맛도 무척 좋았지만 밥집 안에 걸려 있는 ‘북삼의 찬가’ 라는 시가 적힌 액자를 매우 남다르게 봤던 기억이 있어요. 처음에 볼 때는 이 시를 쓴 사람 이름이 없어서 그저 칠곡군에 있는 어떤 시인이 쓴 시를 가지고 만든 액자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바로 이 액자에 있는 시가 그 손님이 보는 공책에 있는 거예요. 또박또박 손 글씨로 정성스럽게 썼는데, 이 시를 쓴 사람이 저 어르신인가! 하는 생각을 했지요. 궁금해 하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공책을 읽고 있던 손님이 나한테 건네주면서, “이 시를 모두 이 할아버지가 쓰신 거래요” 하는 거예요.
‘아하 그렇구나! 저 시를 이 밥집 어르신이 쓰신 거였구나!’
말 나온 김에 이 어르신과 얘기를 좀 해봐야 되겠구나 싶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고 인사를 하며 명함을 드리고, 나도 어설프지만 시 쓰는 글쟁이라고 소개를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왔을 때, 저 시를 보고 누가 쓴 것인지 매우 궁금했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꽤 어색해 하면서도 당신이 쓴 시를 알아주는 손님이 있어 반가운 듯 지금까지 쓴 시가 천 편쯤 된다고 말하셨어요.
공책에 쓴 시를 한참동안 읽었는데, 시 한 편 한 편마다 어르신이 그동안 살아온 삶이 느껴졌어요. 용천수, 북삼의 찬가, 연지곤지 찍고, 할미꽃, 둥지…. 시마다 어르신이 사는 마을 이야기와 지난날을 돌아보는 아련한 세월이 담겨 있어요.
유영훈 할아버지 이야기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어르신들 따듯한 맘처럼 푸짐한 칼국수가 나오고, 국수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어요.
어르신은 유영훈씨이고, 올해 예순 여섯 살이에요. 지난 1987년 3월에 이 용천수 밥집을 시작했는데, 벌써 스무 해가 다 되었어요. 처음엔 이 금오산 밑에 올라오는 길이 샛길밖에 없었대요. 이 할아버지가 용천수가 있는 밥집까지 길을 손수 내고, 지금까지 이르렀는데 그동안 여러 가지 힘겨운 일도 많이 겪었다고 해요.
자기 돈을 들여 길을 내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나중에는 군청에서 밥집 아래까지 아스팔트로 길을 깔아줬다면서 그 덕분에 손님들이 찾아오는 것도 손쉬워졌다고 해요.
할아버지는 육군 대위로 제대하신 분이었는데, 지금은 머리가 다 쇤 노인이지만 아직도 그 기백만큼은 살아 있어요. 시는 예순부터 썼대요. 그저 글 쓰는 걸 좋아해서 하나하나 쓰다 보니, 어느 새 천 편쯤 쓰게 되었다고 하셔요. 시집을 내볼 생각은 없냐고 하니, 아직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다면서 그것보다 지금 당신이 어떤 연구를 하는데, 그건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고 하셔요.
그건 바로 ‘난 유전자 변형 연구’라고 하시며 아직 비밀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이야기 해 줄 수는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할아버지가 건네준 공책 몇 권을 보니, 모두 또박또박 꼿꼿하게 쓴 시로 빽빽하게 있었어요. 오늘 새벽에 쓴 시라고 하면서 광고종이 뒷면에다 쓴 시를 보여주기도 했어요. 또 지금 곧 이룰 꿈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마을마다 있는 노인정 몇 군데를 골라서 그곳에 손수 돈을 들여서라도 당신이 쓴 시를 틀에 넣어 걸어두려고 한대요.
마을 노인들 마음을 위로하고, 편안하게 할 그런 시를 쓰고 있다고 했어요.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더니, 이제 곧 그렇게 할 거라면서 매우 들뜬 목소리로 즐거워했어요.
이 땅에는 그저 이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모두 하나같이 자기 일을 부지런히 하면서, 솔직하고 사람냄새 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유영훈 할아버지도 밥집을 하면서 소박하게 살지만, 그 꿈만은 아주 남다른 분이에요.
당신도 나이든 어르신이지만 마을 노인들을 생각하는 마음도 퍽 남다르고요. 또 오랫동안 꿈을 가지고 그걸 이루려고 애 쓰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