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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남쪽 해안 해운대에서 시작한 동해안 여행이 다섯 꼭짓점을 찍고, 이제 여섯 번째 답사를 시작한다. 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아름다운 우리나라 동해안의 풍경을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필름에 담아보려는 생각이었다. 필름에 담을 내용 중 3가지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첫째는 이 여행기를 보고 동해안을 찾을 사람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도록 가능한 지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자는 것과 둘째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 명승지와 비경을 위주로 해서 답사하자는 것, 마지막 한 가지는 가능한 한 해안과 가장 가까운 도로를 택한다는 것이다.

▲ 포항제철소 밤 모습
ⓒ 김영명
그런데 그게 어려운 것이 지리를 자세히 기술하다보니 문장이 삭막해져 읽을 맛이 없어지고, 심미안이 없다보니 유명한 명승지의 아름다움도 못 집어내면서 무슨 새로운 비경을 찾아낼 능력이 나올 수도 없다. 그리고 또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길이 막혀 되돌아 나오기를 수십 번. 이래저래 재미없는 여행기가 되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언제 끝날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동해안의 휴전선까지 답사여행기는 계속할 작정이다.

한반도의 호랑이 꼬리 지역인 호미곶을 돌아 나오면 925번 도로와 31번 국도가 마주치는 곳이 약전3거리다. 이 곳을 지나 오른 쪽으로 도구해수욕장을 바라보면서 포항 방향으로 31번 국도를 타고 간다.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군데군데 울퉁불퉁한 곳이 나타난다. 무거운 트럭바퀴 자국이 낸 흠집이다. 철판을 가득 실은 육중한 화물트럭이 쉴 새 없이 지나간다. 도로명이 ‘제철로‘다. 오른 편으로 건물이 줄지어 이어져 있다. 조강생산기준 세계1위의 ’포항제철소‘다.

국내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포항제철소를 성공적으로 완공시킨 박태준 전 포철회장의 회고록이나 76년 경제기획원에서 발간한 백서에 의하면, 대일청구권자금 5억불 중 절반 이상이 포철 건설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이제 포철도 국민에게 돌아갈 대일청구권자금으로 세운 기업이므로 앞으로 더 많이 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조치가 따라야하지 않을까싶다.

▲ 송도해수욕장의 잘 가꾼 솔밭
ⓒ 김영명
지금 포항제철소가 자리 잡고 있는 일대를 예전에는 ‘어룡사’(魚龍沙), ‘어룡불’, 또는 ‘어링이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장기곶(호미곶)이 영일만을 감싸고 동해로 길게 돌출한 것을 마치 용이 등천하는 형국이라 하여 용미등(龍尾嶝)이라 부르고, 흥해읍 용덕리의 ‘용덕곶’이 동남으로 돌출한 것을 어약승천(魚躍勝天)의 형국으로 보았다.

양곶[兩岬]의 형상을 풍수학적으로는 어룡상투(魚龍相鬪)의 형국이므로, 영일만의 중심지대인 이곳을 어룡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또 ‘어룡사’는 넓게는 동해면 약전동으로부터 형산강을 지나 포항시 두호동에 이르는 넓은 백사장을 일컫고, 좁게는 형산강 하류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 즉 포항제철소가 자리 잡은 지대와 지금의 송도 해수욕장 전역을 말한다.

장장 20여리나 되는 옛날의 어룡사는 모래벌판으로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였다고 한다. 동지섣달의 하늬바람이 불어 닥치면 눈을 뜰 수 없고 발을 붙일 수도 없는 지대여서 수천 년 동안 내버려진 땅이었다.
조선의 유명한 지상학자였던 성지(性智)가 이 지역을 둘러보고는 범상한 곳이 아니라는 말을 하면서, 서편의 운제산이 십 리쯤만 떨어졌더라도 수십만의 사람이 살았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이만한 위치와 지형이라도 좀 늦어지기는 하겠으나 많은 사람이 모여 살 거라고 예언했다.

▲ 포항 북부해수욕장의 한적한 백사장
ⓒ 김영명
같이 길을 나섰던 이 지방의 선비들이 풀 한포기 없는 이 모래땅에 어찌 수십만의 사람이 살 수 있는 대도시가 된단 말인가 하고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자, 성지(性智)는 혼잣말처럼 ‘죽생어룡사 가활만인지 서기동천래 회망무사장(竹生魚龍沙 可活萬人地 西器東天來 回望無沙場)’이라는 시를 뇌었다고 한다.

‘어룡사에 대나무가 나면 가히 수만이 살 곳이니라. 서쪽 그릇이 동쪽 하늘에 오면, 돌이켜 보니 모래밭이 없어졌더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이후 이 지방에는 성지(性智)의 예언이 널리 퍼졌지만, 이 예언은 수백 년이 지나도 아무런 징조가 없더니 약 30년 전, 어룡사가 포항제철 부지로 선정되어 대나무 같은 굴뚝이 치솟아 올라가고, 수십만의 사람이 모여 살게 됨으로써 실현된 셈이다. (자료 : 迎日郡史. <현재 영일군이 흥해읍에 흡수됨>)

포항제철을 지나 형산강을 가로지르는 형산교를 건너 바로 우회전하면 강변로다. 형산강변과 나란히 달리는 강변로의 종착지는 송도해수욕장이다. 확장 중인 해안도로, 허물어지고 있는 낡은 건물들,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쓰레기더미, 불결한 모래장 등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송도국민관광단지의 면모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백사장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이 모든 혼란스러움을 모두 순화시켜주고 있다.

▲ 울릉도행 포항여객선 터미널
ⓒ 김영명
공사 중인 해안도로를 피하려면 횟집으로 유명한 죽도시장으로 들어가면 된다. 200여개소의 횟집에서 각종 해물을 팔고 있다. 송도해수욕장에서 해안과 떨어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해안만 보고 달리다가는 포항부두로 빠져버렸다. 길이 막혀 막막하던 참에 마침 택시가 멈춰 서기에 물었다. 되돌아가서 다리를 건너 우회전하란다. 다리 이름이 ’동빈큰다리‘이다. 한자인 다리 교(橋)를 쓰지 않고 우리말을 그대로 붙인 것이 인상적이다.

우회전해서 북진하면 울릉도행 배를 탈 수 있는 여객선터미널을 지난다. 그리고 조금 지나 깨끗한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북부해수욕장이 동해 바다와 함께 두 팔을 벌리고 환하게 웃으며 달려온다. 12월 초겨울의 모래사장은 그렇게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인적이 없는 모래사장이 쓸쓸해 뵈지 않고 오히려 넉넉한 공간의 풍요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문득 ’이수익‘씨의 ’바다‘라는 시가 생각난다.

하늘로 높이
하얀 옷처럼 떠오르려는 물결과
어깨를 부딪치는 쾌감으로 밀려가는 물결이
흐르는 시간 속에 서로 만나는
군청빛 바다는 신의 직물.
올을 짜고 푸는 일에 익숙한 손의
즐거움과 근심이 함께 어리어…


▲ 환호해맞이 공원 입구
ⓒ 김영명
북부해수욕장에서 북부해안로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환호해맞이공원‘(51만6779㎡-남측공원 준공, 86만470㎡-북측공원 미완)에 이른다. 포항시와 포항제철이 각각 200억원을 출자하여 해안과 인접한 이곳 야산을 아담한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일출을 볼 수 있는 전망대 건물을 비롯하여 대폭포, 잔디광장, 팔각정자, 조하놀이대, 열주조형물, 공연장 등 여러 시설들이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북부해안도로는 환호마을을 거쳐 여남 마을 어촌계 건물 앞에서 끝난다. 환호마을로 되돌아와서 환호3거리에서 칠포방향의 20번 도로를 타고 북진한다. 왼편으로 보이는 포항대학의 건물을 뒤로 하고 북으로 올라가면 바닷가의 조그마한 마을인 죽천마을(흥해읍)에 당도한다.

▲ 환호해맞이 공원내 공연장
ⓒ 김영명
작은 어촌인 이 마을 앞 바닷가에 소채밭이 가꾸어져 있어서 신기한 느낌이 든다. 밭의 흙을 자세히 보니 모래가 절반 이상이다. 예전엔 백사장일 것 같은 땅에 채소를 심을 수 있다니, 척박한 모래땅을 작물이 생산되는 밭으로 변모시킨 이곳 주민들의 부지런함이 돋보인다.

▲ 모래땅을 소채밭으로 [죽천 마을]
ⓒ 김영명
죽천 마을에서 해안 길을 걸어가는 아낙네를 만나 길을 물었다.
“이 해안 길이 어디까지 이어졌나요?”
우목마을까지란다. 우목 쪽으로 간다면 태워달란다. 동승하면서 물어보았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과메기 건조덕장에서 일하고 온다고 했다. 꽁치 배따서 과메기 만든다고 했다.
내가 또 물었다.
“하루 얼마 벌어요?”
일당이 아니라 작업량에 따라 정해지는데 열심히 하면 5만 원가량 번다고 한다.

우목리는 평범한 어촌이다. 우목은 누워있는 소의 눈 위치에 마을이 있다 하여 불리어진 지명이고, 또한 우목구미(牛目龜尾)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마을 뒷산의 형세가 거북 모양이고 그 꼬리 부분에 동네가 자리 잡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작은 마을이 5년에 한번 삼월 삼짇날이 되면 별신제로 유명해진다. 별신제는 무당에 의해 굿거리로 행해지는 마을 제사로서 근간에는 풍어제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 우목 마을의 별신제(풍어제)
ⓒ 김영명
어촌 지역에서 행해지는 굿이기에 만선과 풍어의 기원을 제일 큰 목적으로 하지만 마을의 무사와 여행자의 사고 방지 등까지 다목적 성격을 띤 굿이다.

2박 3일 동안 진행될 별신제를 위해 준비할 것도 많다. 가장 먼저 정성을 들이는 것이 바로 지화 만들기다. 지화란 굿에 쓰일 형형색색의 종이꽃으로‘ 무당의 숙련된 솜씨에 의해 진짜 꽃처럼 아름다운 지화가 색깔에 따라 총 12가지가 만들어진다. 별신제(풍어제)를 집행하는 무당은 마을과 혈연적으로나 지연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는 전문적인 직업무들이다.

우목리 풍어제에는 이 근방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송동숙 굿패거리가 주관하여, 6~7명의 무당들이 돌아가며 2박 3일 동안의 다양한 굿판을 벌린다. 별신제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다양한 굿거리다. 동해안 별신굿의 석수(席數)는 원래 12거리였으나, 우목리 별신제에서는 스무 가지 정도의 굿거리가 행해진다.

▲ 영일만신항 부두공사 현장
ⓒ 김영명
우목마을에서 다시 20번 도로를 타고 용한리(龍德 마을과 小汗 마을)로 나온다. 용한리 일대는 지금 한창 ‘영일만 신항 건설’로 덤프트럭이 부산하게 오고간다. 영일만에서 북쪽에 동남으로 돌출한 곳이 용덕곶이다. 이곳에 1조 7천여억 원을 들여 최대 3만 톤급 16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새로운 항구를 건설하고 있다.

1992년에 시작한 공사는 2008년에 4선석이 우선 준공되고, 나머지는 2011년에 마무리 된다고 한다. 돌아 나오는 길가에 수많은 자가용차가 주차되어 있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현대중공업 포항공장이 눈에 들어온다. 영일만 신항이 준공되면 현대중공업 포항공장이 신항 부두를 안마당처럼 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20번 도로를 타고 칠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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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어난 해: 1942년. 2. 최종학력: 교육대학원 교육심리 전공[교육학 석사]. 3. 최종이력: 고등학교 교감 명퇴. 4. 현재 하는 일: '온천세상' blog.naver.com/uje3 (온천사이트) 운영. 5. 저서: 1권[노을 속의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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