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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소재하는 구세군 후생원의 아동보호시설이 서대문구 천연동의 뜨란채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었는데, 그 곳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장윤선 기자님의 기사를 읽고, 뜨란채 주민들께 편지를 올립니다. <기자 주>
후생원 아이들 91명이 아파트 앞 건물로 다 들어온다고 하니 좀 많다 싶으셨지요? 부모들의 직접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불우한 가정의 아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비뚤어지기 쉬워서, 동네의 물을 흐려 놓을까봐 걱정이 되신 거지요?
특수교육을 하는 제 친구도 가봤다고 하지만 후생원 아이들은 정말 맑고 깨끗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호관리가 잘 된 아이들이 아니라도 우리가 품고 함께 돌보아야 할 일이지만, 오늘은 우선 주민분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습니다.
저도 처음에 그랬지만, 당사자가 아니라고 마구 당신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어 속은 또 얼마나 쓰리실지요. 제가 주민분들에 대해 들은 말들이 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집을 구할 때 아이들, 미혼모, 노인, 유기동물 보호 및 복지시설들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우리 사회 어디에나 있습니다. 장애인 보호 시설이 갈 곳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유기동물 보호시설이 이전을 요구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집 하나 조그맣게 장만해놓고 사는데 그나마 집값이 떨어지면 그거 메우는 일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 또한 우리 사회의 문제이지요. 요즘 먹고살기가, 또 자식들 교육시키기가 얼마나 힘든지 전들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저도 아직까지 내 소유의 집 없이 반평생 살면서 깨달은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손해를 보는 걸 큰일 날 것 같이 생각할 일이 아니다’, ‘나눔은 내가 넉넉해진 뒤에만 할 일이 아니다.’
원당에서 조그만 아파트 샀다가 팔고 안산에서 우선 전세를 얻은 뒤 통장에 넣은 나머지 돈을 좋은 마음으로 빌려주었다가 떼인 일도 있고, 열심히 일해 주고 돈을 받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봉고를 빌려 재활용센터에서 값싼 중고가구를 사오다가 사고를 내, 200만원 가까이 수리비를 물어주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기저기 보태주고 후원할 일도 많이 생깁니다.
이러한데 제가 잃는 것, 빠져나가는 것에 다 연연하고 심히 아까와 한다면 어찌 살아가겠습니까? 때로는 물건값이나 용역비를 비싸게 주게 되더라도 예전처럼 악착같이 깎으려하지 않는 것은, 어차피 돈이란 나 아니면 네가 쓸 것이고 너도 어렵게 살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내가 조금 나눠주는 셈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입니다. 그러다보면 손해만 보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인연도 만나고 좋은 기회도 돌아오더군요.
그래요. 요즘 아이들은 비교적 불우하지 않은 환경이라 해도, 형제 없이 공부와 학원, 컴퓨터, 게임에 매몰되어 또래와 충분히 놀아보지 못해 정서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친구관계를 맺지 못하고 왕따를 시키며 폭력을 행사하는 등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곤 하지요. 불우한 아이들이라고 특별히 더 ‘물이 안 좋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오히려 아이들만 집중적으로 돌보는 보호교사와 6~7명씩의 친구들과 형제처럼 생활하며, 각종 예술치유 프로그램(평범한 아이나 어른들에게도 많이 필요하여 행해지는) 등에 조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후생원 아이들이 더 보호관리가 잘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가 감히 뜨란채 주민들께 제안하고 싶습니다.
91명의 아이들이 6~7명씩 그룹 지어지면 14~15개 그룹쯤 되겠네요. 1008세대를 14그룹으로 나누면 1그룹당 70세대가 돌봐줄 수 있습니다. 11가구당 1명씩 후원부모가 되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 시설이 내 자식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거라고만 생각하여 피하려 하지 마십시오. 세대별 담당 그룹을 정하여, 가끔 여유 있으실 때 과일이라도 한 상자 사거나 간식이라도 만들어 자녀들 데리고 그룹홈에 방문하시어, 맛있게 음식을 나누면서 놀다 와 보세요.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할 수 있다면 자녀교육에 그만큼 더 도움이 되겠지요. 내 아이랑 특별히 눈 맞는 아이가 있으면 집으로 놀러오게도 하시고요.
1000세대가 만원씩만 내도 1000만원, 3개월 동안 내면 3000만원입니다. 마을에 전세로 평생교육기관 하나 만들고, 거기서 그룹홈 아이들과 뜨란채 기존 주민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활동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준다면 더욱 좋겠지요.
그룹홈 아이들을 지도하는 전문가들이 어른들을 위한 교육도 주선할 수 있을 것이고요. 한켠에 도서관도 만들어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같이 놀러갈 계획도 세우고요.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우리 아이들, 지금은 철부지라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아도 어느 사이 믿음직하게 자라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후생원 시설이 그룹홈으로 운영되어 아파트로 들어가야 하고 이미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된 것이 아니어서, 저희 동네로 들어올 수 있다면 저는 동네 사람들에게 얘기하여 저희 동네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 입장에서 보아도 그 아이들이 누구보다 도움을 많이 줄 수 있는 친구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파티를 기획하여 노인회관에 찾아가기도 합니다. 미혼모 시설에 가서 아가 목욕이라도 시켜주고, 친정 엄마처럼 미혼모의 손을 따뜻이 감싸며 미역국이라도 한 수저 더 뜨게 거들어주실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자녀에게 솜털이 보송한 아가를 보여주며 그 소중한 아가들에 대한 책임문제를 얘기하신다면, 아이들은 이후 책임 없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당사자가 아니라고 쉽게 말한다고만 생각지 마시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지혜로운 것인지 주민들이 모여 의논해보시기 바랍니다.
‘꿈은 밤에 꾸는 것보다 낮에 꾸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밤에 꾸는 꿈은 대부분 속절없이 사그라지지만, 낮에 꾸는 꿈은 살다보면 점차 현실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몇 년 안 가 천연동이 후생원 아이들을 둘러싼 지금의 분란을 옛말로 만들고, 도란도란 ‘나눔을 실현하며 사는 천연동’으로 바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곳보다 살기 좋은 마을로 집 구하기가 힘든 곳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우리 동네가 어느새 공동체라 불리게 되고 집 구하기 어렵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곧 후생원생들의 입주에 맞춰 ‘아이들맞이 잔치’를 열어주는 뜨란채 주민들의 행복한 모습을 담은 기사를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어주신다면 저도 잔치 비용을 조금 보태고 싶습니다. 천연동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김효진 드림
덧붙이는 글 | 저는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에 10년째 살고 있는 재현이 엄마 김효진입니다. 저도 처음에 뜨란채 주민들에게 화만 내다가, 문득 '소통'은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진심을 담은 편지를 써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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