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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등나무 길 학교 축제 행사를 위해 전남청소년상담소에서 자원봉사를 해주셨다(아래 왼쪽). 꿈의 등나무길을 잘 단장해놓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아래 오른쪽).
꿈의 등나무 길학교 축제 행사를 위해 전남청소년상담소에서 자원봉사를 해주셨다(아래 왼쪽). 꿈의 등나무길을 잘 단장해놓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아래 오른쪽). ⓒ 안준철
지난 달 말 학교 축제가 열리던 날, 나는 오전 내내 '꿈의 등나무 길'을 거닐고 있었다. 학교 교정에서는 동아리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고, 강당에서는 놀이마당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그날 오전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꿈의 등나무 길을 오가는 아이들과 '꿈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나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간호사의 손이 아름다운 이유가 뭐야?"
"예? 그게 뭔데요?"
"그걸 모르는 걸 보니 너 아직 꿈 이야기를 안 읽었구나. 저기 입구로 가서 꿈의 안내판부터 다시 읽어 봐."

@BRI@그날 아이들은 열이면 아홉,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등나무 길 입구로 되돌아 가야했다. 용케도 안내판에 써진 대로 꿈 이야기를 읽고 온 아이들과는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갔다.

"간호사의 손이 아름다운 이유가 뭐야?"
"예, 저 알아요. 그게, 그러니까, 간호사가… 아니, 어떤 친척 아주머니가…."

"그 친척 아주머니가 중환자실에서 누군가를 간병하고 있었지 아마?"
"맞아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간호사의 직업이 참 깨끗한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더럽고 힘든 일도 많았어요. 그래서…."

"그래서 그 아주머니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안 좋게 생각했지 아마?"
"맞아요. 하지만 간호사의 손은 더러워져도 더러워지는 만큼 환자는 병이 낫는 거잖아요. 그래서 간호사의 손이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 남을 이롭게 하면서 자기 꿈도 이루어가는 것이 좋은 거지. 근데 네 꿈이 뭐야?"
"예? 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래? 그럼 저리로 가서 꿈의 상담을 한 번 받아 봐. 상담이 끝나면 꿈의 명찰을 달아주실 거야.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 알았지?"
"예 알았습니다."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씩씩하게 대답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가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것은 '꿈의 등나무 길' 입구에 설치한 꿈의 안내판을 눈여겨본 까닭이었다. 그런데 꿈의 안내판에는 도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을까?

올해 학교 축제의 주제를 아시나요? 바로 '꿈꾸는 사람은 아름답다'입니다. "꿈이 뭐야?"하고 물으면 "없는데요"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오늘 '꿈의 등나무 길'을 거닐며 여러분 자신에게 "넌 꿈이 뭐니?" 하고 넌지시 물어 보세요.

꿈의 등나무 길에는 꿈에 대한 참된 생각을 갖게 해줄 '꿈 이야기'를 비롯하여 '꿈의 시화전', '꿈의 그래픽', '꿈의 오행시', 그리고 전문 상담인과 꿈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꿈의 상담' 등의 코너가 마련되어 있답니다. 이 꿈의 코스를 다녀가신 분에게는 기념으로 '꿈의 명찰'을 달아드립니다.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니 많이 애용해 주세요.


따뜻한 연꽃차를 준비하신 학부모님들(위), 꿈의 시화전과 미술전이 열리고 있는 꿈의 등나무 길(아래).
따뜻한 연꽃차를 준비하신 학부모님들(위), 꿈의 시화전과 미술전이 열리고 있는 꿈의 등나무 길(아래). ⓒ 안준철
천연염색 동아리 회원들 황토염색을 하고 있는 손길들과 동그랗게 모여있는 아이들, 그리고 줄에 널린 손수건들이 모두 아름답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교육복지투자사업의 일환으로 12개의 동아리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천연염색 동아리도 그 중 하나이다.
천연염색 동아리 회원들황토염색을 하고 있는 손길들과 동그랗게 모여있는 아이들, 그리고 줄에 널린 손수건들이 모두 아름답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교육복지투자사업의 일환으로 12개의 동아리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천연염색 동아리도 그 중 하나이다. ⓒ 안준철
나는 수업시간에도 아이들에게 꿈 이야기를 자주 해주는 편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언제나 시큰둥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아이들은 최고가 되어야만 꿈을 이루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최고가 될 수 없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 최고가 되라는 말은 곧 꿈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꿈이 없는 아이들은 관능의 유혹에 빠지기가 쉽다. 한 줌의 쾌락과 자신의 미래를 맞바꾸는 것을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는 없을까? 언젠가 남학생 반에서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 그 반은 유난히도 아버지와 갈등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직 꿈이 없다면 좋은 아버지가 되는 꿈은 어떨까요? 혹시 여러분 중에 가족에게 성실하지 못한 아버지 때문에 힘든 학창을 보내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더욱 좋은 아버지가 되는 꿈을 가져보세요. 좋은 아버지가 되는 꿈은 최고가 될만한 남다른 재능이 없어도 이룰 수 있는 꿈이지만, 지금처럼 누군가를 원망하기만 하고 자기를 가꾸지 않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기도 해요."

생활디자인 동아리 회원들-도자기 전시(위)와 가죽공예(아래)
생활디자인 동아리 회원들-도자기 전시(위)와 가죽공예(아래) ⓒ 안준철
리본접기, 조리제빵, 페이스페인팅 등 각종 동아리 행사에 참여하는 아이들.
리본접기, 조리제빵, 페이스페인팅 등 각종 동아리 행사에 참여하는 아이들. ⓒ 안준철
나는 올해 학교 축제 기획 업무를 맡았다. 내가 꿈꾸는 축제는 이런 것이었다. 주제가 있는 축제, 그리고 기획과 진행, 평가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해마다 계획은 그럴듯하게 세워도 결국에는 모든 일들이 교사의 손에서 시작되고 끝이 났다.

일의 효율성도 문제였지만 아이들 자신들도 교사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려고만 했다. 학교의 주인이면서도 한 번도 주인다운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나는 이런 악순환을 깨기 위해서 축제 업무를 총괄하는 특활부장인 정 선생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우선 학생축제기획단을 꾸려서 축제의 10%만이라도 아이들에게 맡겨봅시다. 어려울 거라고 아예 포기하는 것보다는 10%라도 희망을 가져 보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마도 10%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으리라.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같은 거 말이다. 사실 10%의 성공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람에게 10%로의 햇살은 얼마나 큰 희망인가. 한 번도 교사의 눈길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에게 10%로의 관심은 또한 얼마나 큰 사랑인가.

사랑의 징검다리-강당에서는 교사, 학부모, 학생이 하나가 되어 놀이마당을 즐기고 있다.
사랑의 징검다리-강당에서는 교사, 학부모, 학생이 하나가 되어 놀이마당을 즐기고 있다. ⓒ 안준철
공연 연습 장면-'꿈의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땀을 흘려야한다.
공연 연습 장면-'꿈의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땀을 흘려야한다. ⓒ 안준철
그후에도 정 선생과 나는 죽이 척척 잘 맞았다. 나는 꿈을 꾸고 그는 꿈을 이루었다고나 할까? 가령, 이런 식이었다.

"우리 학교 등나무 터널 있잖아요. 그곳을 꿈의 등나무 길로 만듭시다. 교문에서 보면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풍선을 가득 달아 놓고요. 근데 풍선 값이 많이 들겠지요?"
"풍선 수백 개를 달아도 몇 만 원 하지 않아요. 풍선은 제가 알아서 준비해 놓을게요."

그뿐이 아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꿈의 명찰을 달아주고 싶다고 하자 그는 컴퓨터 자판을 몇 번 두드리더니 금세 예쁜 명찰을 만들어냈다. 이상과 현실의 이중주라고나 할까? 그는 꿈을 꿀 수 있는 나의 머리를 부러워했지만 나로서는 꿈을 만들어내는 그의 손이 몇 갑절은 더 아름다워 보였다.

무대 공연-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그동안 갈고 닦아온 기량을 마음껏 선보이고 있다.
무대 공연-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그동안 갈고 닦아온 기량을 마음껏 선보이고 있다. ⓒ 안준철
오전 내내 꿈의 등나무 길을 거닐던 나는 오후가 되자 무대 공연 준비를 위해 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풍물부의 사물놀이를 시작으로 화려한 막을 올린 '꿈의 공연'은 연극부 동아리의 멋진 연기로 더욱 빛을 발했다. 제목은 '꿈을 찾아서'였다. '꿈'을 주제로 모이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모두 하나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그날 공연은 한 소녀가 나와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끝맺음을 했다. 그때 나는 그 아이 옆에 서 있었다. 무대의 조명이 다 꺼지고 학생축제기획단과 도우미들이 손에 들고 있던 케미나이트의 희미한 불빛에 의존하여 꿈 이야기를 낭송하는 아이 곁에서 나 또한 작은 불빛을 던져주며 서 있었던 것이다. 작지만 꿈이 있기에 결코 작지 않은 아이. 고요한 시간이 흐르면서 그 아이의 꿈 이야기는 이렇게 갈무리되고 있었다.

무대 공연-열정의 무대에서 마음껏 끼를 발산하는 아이들.
무대 공연-열정의 무대에서 마음껏 끼를 발산하는 아이들. ⓒ 안준철
"가끔은, 너무나 부족한 내 모습에 내 꿈이 참 높아 보이고,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나에게, 네가 그걸 어떻게 해? 니 주제를 알아라….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어떠한 희망도, 웃음도 잃어버린 것처럼, 주저앉게 됩니다. 나 자신에게 많이 실망하게 됩니다.

이제, 나는 생각을 씩씩하게 고쳐보려고 합니다. 내일이 되면 어제가 되는 하루하루, 이제 뒤돌아보았을 때 한숨 쉬며 주저앉아서 후회하는 내 모습은 보지 않기로. 내일이 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지금'이라는 최고의 선물에 충실해보기로.

나는 나에게 말합니다. '나를 이끌어가는 것은 머리가 아닌 열정이다'라고. 나는 믿습니다. '열정'이라는 빛이, 내 안에 살아 있는 빛나는 가능성이, 나의 꿈을 밝혀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지 <사과나무>에도 실립니다. 내용을 조금 더 보탰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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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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