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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기 전에 출근하고, 해가 진 뒤에 퇴근하다 보니 태백이와 강산이(둘 다 풍산개)를 데리고 산책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꿀맛 같은 휴가로 하여, 이즈음은 아침에 짬이 생겨 두 녀석을 데리고 산에 오를 기회가 많아졌다.
오늘은 평소에 다니던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는 대신 아랫마을 명대리로 가는 길을 택했다. 이 길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밋밋한 길이지만 그래도 왕복 한 시간쯤 되는 거리니 제법 운동이 된다.
@BRI@나는 앞에서 태백이를, 아내는 뒤에서 강산이를 몰고 가는데 중간쯤 왔을까, 갑자기 태백이가 짖어대며 목줄을 당겼다.
이곳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도 않고, 또 현재는 논과 밭에 아무것도 심은 게 없다가 보니 줄을 풀어놓아도 된다. 하지만 녀석들이 제 마음대로 산 속을 오르내리다 보면 온몸에 풀씨나 벌레를 달고 오기에 꼭 줄을 묶고 다녔다.
그래도 풀어주지 않자 태백이가 다시 짖으며 줄을 당기는 거였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에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듯싶어 풀어주었다.
그런데… 산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들짐승 한 마리를 물고 나오는 게 아닌가. 너구리였다. 나는 대충 짐작한 터라 놀라지 않았지만 아내는 기겁을 했다.
태백이가 물고 온 너구리는 산 너구리가 아니라 죽은 너구리였다. 언제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길바닥에 태백이가 내팽개쳐 놓은 걸 뒤집어보았더니 가슴과 뒷발에 큰 상처가 있고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한눈에 뜨일 정도의 상처에다 피를 흘렸다면…?
그래도 혹 굶어 죽은 게 아닌가 하고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았다. 작년 겨울에도 산길에서, 마을 길에서 너구리나 고라니, 노루 등이 죽어 있는 걸 가끔 보았기에. 그때는 산골생활 초보자가 보더라도 굶어 죽은 게 확실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몸뚱이가 바짝 말랐는데다 다른 상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아직 먹이를 구할 수 없을 만큼 춥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가슴과 발에 난 상처가 나 있지 않은가. 특히 가슴의 그 상처는 치명상이 분명했다. 그로 인해 피를 흘렸을 테고….
얼마 전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된 올무와 덫에 걸려 죽어가는 야생동물을 본 적 있다. 그때 방송에 나온 동물은 대부분 숨이 끊어졌었다. 특히 올무에 걸려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고라니 한 마리가 화면에 잡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몸뚱이 군데군데에는 빠져나오려고 얼마나 발버둥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흔적들과 함께.
야생동물은 앞으로만 전진하는 습성이 있어 올무에 한 번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한다. 목을 뒤로 빼기만 하면 빠져나올 수 있지만 앞으로만 가다 보니 목이 점점 졸려 결국은 죽게 된다.
그나마 너구리처럼 작은 건 목에 걸리지 않고 배 쪽에 걸리기도 하는데, 이도 다행스러운 건 아니다. 한 번 걸린 이상 빠져나와도 그 사이 발버둥치다가 상처는 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피를 흘리고,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니 덧나고,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하여 결국은 숨이 끊어질 수밖에.
나의 이런 추리가 제발 엉터리이길 빌며 차라리 무슨 병이 들어 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눈에는 너구리 가슴의 상처가 더욱 크게 확대돼왔다. 아무 도구가 없어 묻어주지 못하고 멀리 던져버리고는 돌아서서 오는 길에 애처로움과 부끄러움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