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내가 잘 키우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온갖 유해한 음식과 환경 속에서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이고 천 기저귀를 쓰는 등 신경을 기울이지만 그래도 찜찜할 때가 많다. 우리가 쉽게 사먹는 온갖 음식들이 농약과 유해 물질로 범벅이 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어디서 안 그런 음식을 구하랴 싶어 그냥 먹게 되는 게 나와 같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이다.
<거꾸로 사는 엄마>는 우연한 기회에 유기농산물 세상을 접하고 십 여 년 동안 이와 관련한 일들을 하며 살아 온 주부 서형숙 씨가 쓴 책이다. 건강한 먹거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살림'이라는 생협 공동체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서형숙 씨는 강남에서 이 공동체를 함께 하며 건강한 먹거리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에어컨으로 야기되는 문제가 안타까워 부채로 여름을 나고 유기농 먹거리를 위해 직접 생산자를 찾아다니는 엄마. 자가용에 아이를 태우고 다니며 온갖 과외와 학원 도우미 역할을 자초하는 일반적인 강남 엄마와는 다른 모습이 영락없는 시골 아줌마다. 그래서 자신을 스스로 '거꾸로 사는 엄마'라고 칭했나 보다.
"화학조미료는 천식, 구토, 두통을 유발하고, 뼈의 성장을 멈추게 하고 어린이의 뇌신경을 파괴한다. 아이 머리 좋게 하려고 갖은 애를 쓰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뇌신경 파괴하는 화학 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먹을거리를 주다니 어이가 없다. 화학조미료는 아이들이 먹는 과자, 음료에도 들어간다."
@BRI@엄마가 이토록 아이들 먹거리와 우리 농업 살리기에 관심이 많으니 혹자는 아이들 교육은 뒷전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줄 아는 아이들은 많은 이들의 칭찬을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내용은 바로 수입 밀이 엄청난 농약 범벅이라는 사실. 예전에도 들어서 대충 그 상황을 알고는 있었으나 실험 결과와 유통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읽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바구미(바구밋과 곤충)조차도 수입 밀은 몸에 묻히기조차 싫다며 그 위에서 거부를 했다고 하니 얼마나 유해한 걸까.
"수입 밀은 재배 과정은 물론 수송 과정에서도 농약이 뿌려진다. 수출하는 밀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양의 수십 배까지도 농약을 뿌려 재배한다. 창고나 컨테이너 같은 밀봉 용기 안에서도 살충제 등으로 훈증되며 엘리베이터 컨베이어에서는 분무 처리 된다. 재배 후에까지 농약을 치는 이유는 몇 주마다 부화되는 바구미와 다른 유충을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밀폐된 용기 안에 실려 긴긴 날 고온 다습한 바다를 건너와야 하니 당연하다. 잔류성 강한 맹독성 농약을 뿌릴 수밖에 없다."
이런 글을 읽다 보면 밀가루 음식을 먹을 맛이 딱 떨어진다. 저자는 설탕, 우유, 달걀, 버터 등이 꼭 들어가야 하는 빵 문화보다 첨가물이 거의 없는 떡 문화로 간식 생활을 바꾸는 걸 제안한다. 국수를 먹더라도 쌀 국수를 먹으면 좋다. 정 밀가루 음식을 먹고 싶다면 유통 과정에서 첨가물을 적게 넣은 우리 밀을 이용하자.
이 책의 저자처럼 100% 유기농산물만을 구입하여 먹기도 쉽지가 않다. 주변에는 달콤한 여러 유해 음식의 유혹이 있으며 유기농산물은 그 재배량도 적고 유통도 쉽지 않아 소비자의 손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유기농산물을 구입하고 싶지만 일반 마트에는 아주 적은 양의 유기농산물만 유통될 뿐이다.
그렇다고 하여 시골을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농약 안 친 채소, 풀을 먹인 소, 사료와 항생제를 먹이지 않은 닭이 낳은 달걀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살림은 유기농산물을 원하는 소비자와 건강한 우리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을 연결시켜 주는 중계자 역할을 한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한살림이 지향하는 목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한 생명을 느끼고 그것을 실현합니다.
2. 우리는 우리가 딛고 사는 땅을 내 몸처럼 생각합니다.
3. 우리는 이웃과 생산자와 소비자를 가족으로 생각합니다.
4. 우리는 우주 생명의 일원으로서 생태계에 책임지고자 합니다.
5.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나부터 시작합니다."
자연을 아끼고 인공적인 것들을 피하고자 노력하는 많은 운동들. 이런 움직임이 있는 한 이 세상은 그나마 살만한 곳일 것이다.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건강한 것을 만들고 이 땅의 생명력을 지키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 평범한 아줌마의 십 년에 걸친 유기농 먹거리 만들기 운동은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