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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0여일 동안 저를 지탱해 준 것은 '이것도 곧 지나가리'와 '깊고 간절한 마음은 닿지 못하는 것이 없다네'라는 글귀였습니다.

2006년이 저물어가는 지난달 28일 새벽 전날부터 가슴이 답답하다며 병원을 다녀왔던 아들이 "엄마, 숨을 쉬기가 곤란해요, 가슴이 바늘로 쑤신 것처럼 아파요"라며 가슴을 움켜쥔 채 침대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바짝 마른 입술에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들의 얼굴을 본 순간 가슴속에 고랑이 생겼습니다. 출근이 좀 늦어질 것 같다고 전화를 해 놓고 아들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집에서 나올 때는 어제 갔던 동네 병원으로 다시 갈 생각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아들 걸음을 따라가려면 달음질을 쳐야 했는데 녀석의 발걸음이 자꾸만 뒤처졌습니다. 어서 가자며 아들을 바라보는데 얼굴빛깔이 눈을 닮아 있었습니다.

@BRI@부리나케 택시를 잡아타고 대학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아들은 행여나 제 손을 놓칠 새라 꼭 쥐고 있었습니다. 외래에서 응급실로 갈 때까지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고 하니까 정확히 병명이나 알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심전도검사, 혈액검사, 심장초음파에 나타난 아들의 심장은 많이 아픈 상태였습니다. 위독할 수도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눈앞이 아찔해졌습니다. 고통이 그대로 가슴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몇 가지 검사를 위해 보호자 동의서를 쓰는데 글자를 제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아기 고래를 등에 업고 다니는 유령고래의 모정. 새끼고래가 포경선에 의해 생포가 되면 잡힐 줄 알면서도 포경선주위를 맴도는 어미고래의 애끓은 심정. 어느새 나는 어미고래가 되어 있었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는 내 모습을 보고 아들은 "엄마, 이 나이에 제가 어떻게 되겠어요, 걱정 마세요 이번 기회에 박지성선수보다 더 튼튼한 심장을 만들 테니까요"라며 오히려 저를 위로했습니다.

아들이 중환자실에 있었던 3일간의 시간은 저에게는 백년보다 더 길었습니다. 시간이 어찌나 더디 가던 지 차라리 내가 아프지, 어째서 아들의 심장에 탈이 났는지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다 제 귀와 눈에 들어온 글귀가 있었습니다.

'이것도 곧 지나가리'와 '깊고 간절한 마음은 닿지 못하는 것이 없다네' 두 글귀였습니다.

이 고통, 이 슬픔, 이 아픔도 곧 지나가리리 쾌유를 비는 어미의 깊고 간절한 마음이 아들의 심장에 전해져 아들이 좋아하는 박지성 선수보다 더 튼튼한 심장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처음에는 견딜 수 없이 아팠던 아픔과 고통이 시간이 흐르자 지나갔습니다. 아들은 3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겼고 건강을 회복해 입원한 지 12일만에 퇴원을 했습니다.

12일간 병실에서 아들을 지켜보면서 죽을 만큼 힘든 고통도 아픔도 '곧 지나가리리' 여기면 견딜 만 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을 통해 인생의 교훈을 배운 것입니다.

병간호를 위해 연가를 냈던 것을 끝내고 출근하면서 '그래, 나를 찾아오시는 구직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자. 아들의 갑작스런 병으로 인해 겪었던 그 고통을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고 여기며 견뎌냈던 그 마음을…, 취업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으면 지금은 비록 견디기 힘들겠지만 그 고통도 곧 지나가리라고 여기며 차근차근 준비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새 날이 올 거예요. 그러니 조금만 힘을 내요라고 격려를 해주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고용지원센터에서 11년째 취업지원업무를 하고 있는 저에게 취업 때문에 비관자살을 했다거나, 취업이 되지 않아 자살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볼 때면 마치 제가 그 분들에게 죄를 지은 것처럼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저에게 오셨던 구직자들 중에는 부모님이 계신 선산에서 자살을 하려고 농약을 주머니에 넣고 가시다 마지막으로 들렸던 고용지원센터를 통해 새 힘을 얻어 4년이 지난 지금 언제 그랬냐는 듯 씩씩하게 살고 계신 분도 있습니다. 400번째 서류전형에 떨어져 자포자기까지 가셨던 분도 401번째 도전해 취업에 성공하여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취업이 아무리 힘들어도, 처한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것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고통이 오면 고통이 오는 대로, 아픔이 오면 아픔이 오는 대로, 상처가 깊으면 상처가 깊은 대로 그 고통과 아픔, 상처에 가만히 손을 대고 그래,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 여기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그리고 진로 때문에 취업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은 언제든지 저희 고용지원센터를 찾아오세요. 2007년에도 노동부 고용지원센터는 사람과 일자리를 이어주는 든든한 다리로 진로지도나 취업을 원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현재 전국에 85개 노동부 고용지원센터가 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중·고·대학생, 청년층, 중장년, 여성, 장애인, 고령자까지 개인별 특성에 맞는 취업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2007년에는 취업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2007년 간절한 바람중 하나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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