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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지난해 추석때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는 야옹이
ⓒ 송성영
우리집 야옹이, '웃기는 놈'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해 추석 때 집을 나가 여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동네 주변에서 야옹이와 비슷하게 생긴 놈이라도 얼쩡거리면 부리나케 쫒아가 봅니다. 하지만 털색이 비슷한 고양이들이 다 그렇듯이 그놈이 그놈 같아 보일뿐 헛탕치기 일쑤입니다.

▲ 어렸을 때의 야옹이
ⓒ 송성영
<오마이 뉴스>에도 몇 차례 소개한 적이 있지만 야옹이 녀석은 사람 따르는 게 거의 강아지 수준이었습니다. 우리집에서 낳고 자란 녀석은 산책길을 쫄랑쫄랑 잘도 따라나섰습니다. 너 죽고 나죽자 식으로 야옹이만 보면 냅다 쫒아가는 우리 집 개, 곰순이 녀석과 함께 산책길을 나서면 질투하듯 저만치 뒤따라 나설 정도였습니다.

▲ 새 사냥을 했던 야성의 발톱을 접고 병아리들 틈에서 잠들수 있었던 착한 야옹이였다.
ⓒ 송성영
평소 새 사냥도 하는 야성 넘치는 녀석이었지만 마당가득 쫑쫑거리는 병아리떼들 틈에서 야성의 발톱을 접고 생각 없이 잠들 수도 있는 착한 녀석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 특히 작은 아이 인상이와 어울려 놀 때 보면 저 놈이 고양이인가 싶을 정도로 웃기는 놈이었습니다. 인상이가 자신을 본체만체 마당을 가로질러 지나가면 쪼르르 뒤따라가 정강이를 툭 툭 치며 장난을 걸기도 했으니까요.

▲ 아이들에게 놀자며 시비를 걸 정도로 웃기는 놈이었다.
ⓒ 송성영
우리 집 식구들만 잘 따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에 손님들이 찾아오면 금세 친해서 슬그머니 다가가 눈을 지그시 감고 몸을 비빌 정도로 애교가 넘치는 녀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녀석이 왜 무엇 때문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우리 집 우체통에 3대째 날아들었던 딱새를 쫒아내 무언의 압력과 구박을 당한 끝에 결국 보따리 싸고 집 나갔던 예전의 고양이와는 전혀 다른 경우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반달곰 새끼를 닮은 시꺼먼 곰순이의 느닷없는 출연으로 앞마당을 내주고 줄곧 달리기를 연습을 해야만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집 나갈 만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곰순이 등살 때문에 집을 나갔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합니다. 곰순이 녀석이 앞뒤 가리지 않고 저돌적으로 덤벼들어 처음에는 고생깨나 했지만 나중에는 목줄에 묶어 있는 곰순이 녀석에게 다가가 희롱하기까지 했을 정도로 심적 안정을 찾았으니까요.

▲ 곰순이 녀석이 덩치만 컸지 별거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리고 약을 올리기도 했다.
ⓒ 송성영
곰순이가 묶여 있을 때는 슬금슬금 옆에 다가가 약을 올리기도 했고 목줄이 풀려 나오면 도망치듯 하다가 갑자기 백팔십도로 휙 하니 돌아서 앞 발톱을 세우고 '호랑이 권법'을 날릴 정도로 여유를 부렸습니다. 곰순이 녀석이 덩치만 컸지 별 거 아니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 차렸던 것입니다.

사실 곰순이 녀석은 물러터진 놈입니다. 사나워서 야옹이를 해코지 하겠다고 쫒아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눈앞에 만만하게 생긴 놈이 얼쩡거리니까 본능적으로 냅다 쫒아가다가 번번이 야옹이의 '호권'에 호되게 당할 뿐이었습니다.

▲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마당을 점령한 곰순이와 한동안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 송성영
녀석의 노리개인 쥐새끼들도 넘쳐나는데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집을 나간 것일까? 어떤 이들는 고양이들의 습성이 그렇다고 합니다. 집 나갈 때 되면 집을 나간다는 것이지요. 단순하면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있습니다.

집 나가기 전에 어떤 행동을 보였을 터인데 전혀 그런 조짐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밥상머리 앞에서 머리를 맞대고 기분 좋게 밥 먹다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사라진 것처럼 갑작스럽게 보따리를 쌌으니까요.

야옹이 녀석이 암놈이었기에 새끼를 가졌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맹모삼천지교를 따른 것일까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합니다. 곰순이 녀석이 워낙 설쳐 대기 때문에 새끼를 낳고 기를 만한 환경이 되질 못한다고 판단했을지 모릅니다.

생각하고 싶지 않는 경우인데 최악의 경우 교통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야옹이는 큰 도로까지 나가는 경우가 없습니다. 만약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마을 주변 도로였을 것입니다. 아, 이 경우는 가능성이 있다해도 접어둬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일이니까요.

▲ 어느날 도마뱀을 잡아온 야옹이
ⓒ 송성영
야옹이가 없으니 우리 집은 다시 쥐새끼들 천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양이를 무지무지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듣게 되면 고양이를 쥐 사냥꾼으로 취급한다고 타박하겠지만 야옹이가 집 떠나고 한 달도 채 안 돼 쥐새끼들 천국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 쥐사냥에 일가견이 있던 야옹이가 집을 나간 뒤 쥐들이 부쩍 늘어났다.
ⓒ 송성영
쥐새끼들에게 애써 수확한 콩을 야금야금 도둑질 당하고 고구마를 죄 갉아 먹혔습니다. 닭 사료며 거름을 만들기 위해 재여 놓았던 쌀겨며 개밥이 수시로 도둑질 당하고 있습니다. 놈들은 때때로 천정에 모여 희희낙락 달리기 시합을 주 종목으로 하는 운동회를 열기도 합니다. 아마 도둑질한 것들을 상품으로 내걸었는지도 모르지요.

서민들의 주머니를 알게 모르게 도둑질 해가는 자본가, 정치인들을 쥐새끼로 빗댄 블랙코미디의 야성 넘치는 주인공으로 이미 <오마이 뉴스>에 출연 했던 야옹이. 이번에도 '야옹이가 없으니 쥐새끼들이 설친다'라는 제목으로 대통령 후보자들이 난립하는 정치판을 빗대고 싶었지만 집나간 야옹이를 생각하면 그럴 기분이 생기질 않습니다.

▲ 아이들은 야옹이가 돌아올 것이라는 싵날 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 송성영
마을 주변에서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아이들이 그럽니다.

"아빠, 아까 명성이네 집 근처서 자전거 타다가 야옹이 봤어!"
"진짜? 우리 집 야옹이 맞어? 털색만 그런 거 아녀?"
"뒷모습이 비슷했어."
"에이, 그럼 아니네."

우리 식구는 야옹이를 통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별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회자정리, 만나면 헤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가요. 아이들처럼 나 또한 집 나간 야옹이가 돌아오길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야옹이가 우르르 새끼들을 몰고 와도 상관없습니다. 이전처럼 설쳐대는 쥐새끼들이 찍소리 못하게 집안 청소도 하고 곰순이와 티격태격해가며 함께 산책을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어울려 마당을 빙빙 도는 녀석의 웃기는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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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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