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저널> 기자들이 지난 5일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7월 금창태 사장은 삼성그룹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이에 항의하는 이윤삼 <시사저널>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했고, 그 뒤 6개월 동안 사측과 기자들은 공방을 벌여왔다. 최근에는 기자들이 배제된 채 만들어진 '짝퉁' <시사저널>이 만들어지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여섯번째 글을 쓴 고은광순 기자는 양성평등 사회를 꿈꾸는 한의사이다. <편집자주>
|
<시사저널>을 발행하는 서울미디어그룹 회장 심상기님과 <시사저널> 사장 금창태님, 안녕하십니까. 요즘 시중에는 두 분이 '짝퉁' <시사저널>을 펴내신다는 흉흉한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찌나 재기발랄한지, 자기 아이디를 재미있게 지은 경우들을 봅니다. 순대렐라(신데렐라), 오드리될뻔(오드리햅번) 이런 것들 말이지요. 요즘 시중의 <짝퉁 시사저널> 논란을 보고는 이제 '시사저넘'이라는 아이디가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더군요.
'삼성-중앙일보-고려대'... 유난히 눈에 띄어요
@BRI@ 제가 심상기님과 금창태님이 시사저널의 회장님이고 사장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작년 6월 그 이상한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 제가 시사주간지의 회장·사장 이름을 알 이유가 없었지요.
심상기 회장님. 1936년 부여 출생. 고려대. 1965년부터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 서울문화사 대표이사사장, 시사저널대표이사회장.
아, '삼성·중앙일보·고려대'의 연결고리가 유난히 눈에 뜨이는군요.
금창태 사장님. 1938년 경북 안동출생. 고려대. 27세부터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 지난 8일자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중앙> 기자시절 업무추진력이 뛰어나 사내 특종상도 받았지만 노조를 비난한 발언과 독단적 성품 등이 문제가 되어 편집국장 내정자로 지명되었음에도 임명동의제 때문에 첫 낙마를 하셨더군요.
그러니 이학수, 심상기, 금창태 이 분들은 고려대 선·후배, 삼성이라는 코드로 탄탄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하기야, 한국 남성들은 '동문'에 약하더라고요. 저는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민주적 소통을 방해하는 커다란 요인이라고 부르짖으며 가끔 '야자타임'을 제안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벌금을 감수하면서도 야자를 절대사양하는 그룹이 있더군요. 바로 선·후배 관계에 있는 남성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왕조시대의 군신유의(君臣有義·임금과 신하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라는 가치가 아직도 일부 한국 남성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시사저널> 2005년 9월호에 나온 것처럼 삼성은 "①평상시에 꾸준히 언론에 광고비와 협찬금을 대며 관계를 공고히 한다 ②삼성에 비판적인 취재에 들어가면 기자의 신상조사를 한다 ③기사를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게재시기를 늦추거나 내용의 톤을 낮추는 것으로 목표를 바꾼다 ④보도가 되면 타사에 다른 보도자료를 주어 물타기를 한다"고 하지요?
'삼성 모시는 저널'?
그런데 삼성의 이학수 부회장님과 <시사저널>의 심상기 회장, 금창태 사장님은 군신, 또는 선·후배, 혹은 형제 같은 관계이신 모양인지라 좀 더 나가신 게 아닌가 합니다. 이번 삼성 관련기사 삭제 파문을 보니 말입니다.
①평상시에 꾸준히 관계를 공고히 한다
②삼성(선배)에 비판적 취재에 들어가면 기자의 신상을 파악한다
③기사게재를 취소하도록 회유한다
④회유가 먹히지 않으면 '삼성맨'(사장)으로 하여금 인쇄소에서 기사를 빼도록 한다
⑤조직 내에서 반발이 있으면 폭탄 징계를 한다
⑥언론단체, 시민단체와 공조가 벌어지면 명예훼손, 손해배상 등의 소송을 한다
⑦노조협상은 결렬시키고, 비상근 편집위원 등을 외부에서 급히 조달하여 대충 지면을 메운다. '삼성·중앙·고려대'라는 삼박자가 맞는 사람이라면 60대 고령이라도 좋다
⑧모든 기자는 삼성에 관해서는 어떠한 비판기사도 쓰지 못하도록 길들여지기를 갈망한다
이쯤 되면 <시사(時事)저널>이 아니라 <시사(侍社)저넘> 소리도 나올 만하겠네요. 모실 '시'(侍), 삼성 '사'(社)자를 써서 말이지요.
사건이 이렇게 번지면, 제일 곤란한 건 이학수 부회장님이 속해있는 삼성 아닐까요? 약 70조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삼성재벌이 이렇게 대한민국 정부가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짓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70조의 자산을 갖고 있지만 불법 대선자금 제공, 에버랜드 전환사채(CB)편법 배정, 안기부 'X파일' 사건 등 갖가지 의혹과 파문으로 삼성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은 곤란하다고 보고 이건희 회장과 삼성의 경영진은 '지난날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반성'이라며 8천억을 내어놓지 않았습니까?
8천억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려고 했는데, 뒤돌아서서 '대한민국 언론자유'를 짓밟는 원흉으로 비쳐진다면 이것은 커다란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밑지는 장사지요.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김형기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 방용석 전 노동부 장관, 신인령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이정자 녹색미래 대표, 최열 환경재단 대표, 최학래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아직도 삼성을 지켜보고 있다면 삼성 이학수 부회장과 심상기, 금창태의 의리 때문에 대한민국의 언론자유가 망가지고 삼성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는 것에 대해 하루 빨리 정확한 지적을 해주셔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금창태님은 평소에 "언론사가 어려울 때 기댈 곳은 삼성밖에 없다"고 종종 이야기하셨다지요? 삼성이 심상기·금창태님을 '눈치 없는 전위부대', '긁어부스럼만 만드는 충신'으로 여기기 시작한다면 어려울 때 기대시기도 만만치 않아지지 않겠습니까?
심상기님은 1999년 11월 4일 힘든 상태에 빠져있는 <시사저널>을 다시 곧추세우기로 하셨다며 그래서 법인이름도 독립신문사로 하셨다면서 "자본에도, 권력에도 예속되지 않는 진정한 독립 언론의 면모를 보이겠습니다… 나태하거나 타협하지 않도록 모질게 채찍질해 주십시오(初心)"라는 발행인의 글을 쓰셨더군요. 이로부터 불과 7년여의 세월이 지났을 뿐입니다.
이제 72세, 70세가 되신 두 분은 나태하거나 타협했다고 모질게 채찍질을 맞으실 연세가 아닙니다. 두 분의 노인에게는 흥분, 분노, 오기, 징계, 자존심… 이런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 연세에 어울리는 단어는 존경, 축복, 고요함, 이해, 신뢰, 긍정, 감화, 지혜, 너그러움, 민주적인, 부드러운, 점잖은, 수용하는, 열린, 영적인, 평화적인, 허심탄회한, 포용하는… 이런 단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립언론' 만들겠다고 했지 않습니까
최근에 한국언론재단과 한국기자협회가 한 달 동안 출고된 기사 중 가장 괜찮은 작품을 골라 기자에게 주는 상인 '이달의 기자상'을 '제이유 그룹 정관계 로비 의혹 및 로비 리스트' 기사를 쓴 <시사저널>의 정희상·신호철 기자가 받았다고 하네요. 축하합니다. 이들을 자랑스러워 하셔야 합니다.
모름지기 언론이란 이렇게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정의가 숨쉬게 하고, 그늘진 곳에 따뜻한 햇살이 비치도록 역할을 해야 합니다.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이 충만한 기자들만이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이 다르지 않은 발행인, 편집인이 그들의 뒤를 밀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자들을 내치고 썩은 동아줄을 잡으려는,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이 공허한 자들을 내세워 짝퉁 잡지를 만들고 계시다니요. 평생을 언론인으로 살아오신 분들이 말년을 오명으로 더럽히시는 것은 정녕 손해 보는 장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기, 분노, 자존심… 이런 감정들은 비탈길을 구르는 브레이크 없는 전차와도 같아서 일의 제대로 된 해결을 방해합니다. 절대로 알아서 멈추지 않으려 할 겁니다.
그러나 저는 7년 전이기는 하지만 심상기님의 초심이라는 제목의 발행인의 글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평생을 언론에 몸담아 오신 분들이니 그 시간이 '변절'할 정도의 긴 세월도 아닐 것입니다.
'짝퉁'은 그만... 초심을 찾으십시오
브레이크를 밟아주십시오. 그리고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갖춘, 그동안 '오리지널 시사저널'을 만들어왔던 기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대한민국 국민들이 피 흘리며 일궈온 '언론자유'에 다시 재갈을 물리지 말아주십시오. 님들이 노조기자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것은 전체 국민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계속 '짝퉁 시사저널', '시사저넘'을 만들어내신다면 독자들은 불매운동을 펼칠 것이고 정기구독자들은 파업을 푼 기자들이 만들어내는 정상적인 시사저널이 나올 때까지 정기구독을 멈추는 운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짝퉁인 것을 모르고 샀던 독자들이 환불을 요구하면 그것도 들어주셔야겠지요(혹시 899호가 잘 팔린다면, 그것은 정치권력에서 자유로운 21세기 대한민국의 언론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재벌권력에 굴복하여 괴물처럼 등장한 '짝퉁잡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니 좋아하실 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두 분 모두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환불을 요구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유리상자에 담아 아이들에게, 손주들에게, 고손주, 증손주들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입니다.
"2006년 6월 삼성의 이학수 부회장이 어쩌고, 시사저널의 심상기 회장과 금창태 사장이 어쩌고, 고려대 동문이 어쩌고, 그래서 2007년 1월에 노조 기자들을 배제하고 어쩌고, '짝퉁잡지'를 만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두 분이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의 중요성에 동의하시고 권력과 자본에 예속되지 않는 진정한 언론을 만들어야한다는 초심을 잃지 않으시고 자랑스러운 기자들을 포용하신다면, 그리하여 '짝퉁 시사저넘' 사건이 하루빨리 마무리된다면, 그것을 유리상자에 담아둘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환불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