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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마음'. 아름다운 처음 마음, 작은 마음
ⓒ 김은현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 제목의 책도 있고요. 이 말은, 예를 들어 기술이 발전하여 휴대폰 크기가 갈수록 작아지는 것에서의 의미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원래의 모습을 지켜나가기' 정도로요. 종로에 가면 '피맛골'이라는 파전집 골목이 있습니다. 그중 '열차집'이라는 집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누추하지만' 정겨운 분위기, 언제 가도 늘 손님이 북적여 혼자 막걸리 마시러 들어가기 미안한 집입니다. 그 옆 골목에는 비교도 안될 대규모의 타운이 들어섰지만, 저는 이 누추한 골목이 더 좋습니다.

@BRI@또 달리 공간 자체의 작음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겠지요.

폐쇄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압니다. 창문이나 문이 열려 있어야 안심이 되고, 닫힌 공간에서는 문 근처의 좌석에 있기를 원합니다. 어떤 이는 도서관 열람실의 칸칸으로 막힌 개인 열람 공간을 꺼려합니다. 툭 트인 곳에서야 공부가 되지요.

다행인지 몰라도 제겐 그런 공포가 없습니다. 좁은 공간, 닫힌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작은 공간에 대한 기호도 있다고나 할까요. 오히려 작은 공간에서 더 몰두가 잘 됩니다. 작은 공간뿐 아니라 깊은 공간, 깊은 구석을 좋아합니다. 안온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모릅니다.

가회동 주택가에 매듭박물관이란 곳이 있습니다. '동림 매듭박물관'입니다. 작은 한옥의 방 하나를 작업 공간으로 쓰고, 거실을 전시 공간으로 꾸몄는데 마당도 아기자기했습니다. 작은 것은, 작음은 결코 작은 내용만을 담지 않습니다. 작은 공간은 안정감을 주고 몰입할 수 있게 합니다. 작은 공간은 커다란 몽상의 세계를 지닙니다.

사색은 작은 길에서, 골목에서, 굽이굽이 휘어진 길에서 더 잘 이루어집니다. 앞이 탁 트인 공간에서의 사색은 어쩌면 쉼을 위해서, '안식(眼息: 눈의 휴식)'을 위해서 필요할 것입니다.

'Small is beautiful'이라는 주제의 전시회가 있습니다. '작은 그림전'인데 여러 화가들의 작품, 그 중에서도 크기가 작은 작품들이 모여 있습니다. 작아서, 또는 작은 화폭에 오밀조밀하게 그려서 조금은 눈여겨 보아야 할 작품도 있습니다. 오프닝 행사로 화가들이 담소를 나누는 사이를 '뚫고(?)' 작품을 살펴보았습니다.

▲ '춘몽'. 산수유들을 만나려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벌써 봄꽃 이야기 하기는 이르지.
ⓒ 최영걸
최영걸님의 작품은 4계절의 풍광을 네 개의 작은 화폭에 담았습니다. 봄을 그린,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를 그린 '춘몽'에 특히 눈이 갔습니다. 몇 년 전 산수유 마을에 간 일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산수유 꽃은 정말 작습니다. 그 작은 잎이 눈송이처럼 모여 나무를 장식합니다.

산수유처럼 작은 꽃들이 모여 무리를 나타내는 것을 '꽃차례'라고 합니다. 메밀꽃도 꽃차례입니다. 또 있습니다. 코스모스도 작은 꽃들이 모여 완성된 꽃차례입니다. 가장자리에 달린 분홍색 잎은 '혀꽃'에 불과하고 가운데 노란 부분이 진짜 꽃입니다. 그런데 코스모스의 어원이 멋집니다.

▲ 우포늪에서 만난 코스모스. 아름다운 꽃차례.
ⓒ 박태신
"코스모스는 하나로 보면 보잘것없는 그들이 모여 가장 아름다운 꽃차례를 만드는 꽃입니다. 코스모스라는 말이 '질서'와 조화, 나아가 완전한 질서 체계를 가진 '우주'를 의미하며, 한편으로 조화를 이룬 것은 아름답다라는 뜻으로 '아름답다'는 어원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코스모스 한 송이를 작은 우주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지나친 비유가 아닙니다."
- 이유미의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중에서


▲ 'condition light'. 깊은 산중에 숨바꼭질하듯 나타나다 사라지다 하는 햇빛 무리. 빛이 숲을 관통했기에 손으로 움켜잡아보면 손에 '녹(綠)물'이 배일 것 같다.
ⓒ 도성욱
도성욱님의 작품은 눈이 부십니다. 수풀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어둔 숲 속의 장막을 놀래킵니다. 작품의 크기는 작지만 강렬합니다. 사진을 찍을 때 기본적인 자세의 하나가 '덜어내기'입니다. 찍고자 하는 대상을 클로즈업하는 것, 카메라에 많이 담으려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성욱님의 그림은 카메라 렌즈를 가까이 끌어당겨 숲의 일부만을 찍은 사진과 같습니다.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라는 수필집이 있습니다. 지은이에게 위로가 된 문구이기도 합니다. 태백산에서 키 큰 나무 사이를 걸으며 하늘을 쳐다본 적이 있습니다. 쭉 뻗은 나무들이 두 손 모아 받아들이고 있는 빛의 세례는 정말 기운나게 합니다. 우리 주위에 그런 키 큰 나무 같은 존재들이 절실합니다.

▲ '화가의 꿈'. 탁자 위에,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르네 마그리트의 화집이 놓여 있다. 병 속의 모습이 거울 속에는 달리 나타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남경민
남경민 화가의 그림에는 '화가'가 있습니다. 작년 이 화가의 전시회에도 가보았습니다. 아마도 화가가 좋아하는 '화가'이겠는데, 그 '화가'의 화집이 등장합니다. 화집뿐 아니라 그 '화가'의 그림을 모사한 부분도 같이 나옵니다. 알고 보니 화가의 아뜰리에를 그린 것입니다. 그 곳에 자신의 흔적도 남기고요, 간접적으로 그 '화가'의 세계와 교감하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사물과 그 사물을 비친 거울 속 모습이 '딴판'입니다. "한 공간에서 문이나 창을 통해 바라다보는 또 다른 공간은 경계 지점 이전에 또 하나의 풍경의 차원으로 읽혀지며, 이는 내가 실내풍경을 그리는 가장 중요한 코드의 하나로 작용한다. 이것은 풍경임과 동시에 의식의 흐름을 감지하는 개인적인 감성의 표현이다. 단지 그 경계점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감 내지 불안은 어느덧 '희망'이란 단어와 랑데부하는 것이다." 화가의 말입니다. 거울도 그런 풍경의 차원인 것은 아닌지요.

▲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둘둘씩 어울리기. 사람도 동물도 서로를 마주보는 데서 행복이 생겨난다. 집과 집도 담 없이 마주 본다. 무지개빛 마음 바탕에서.
ⓒ 김덕기
김덕기님의 '행복'은 한 가족의 행복 자화상입니다. 작은 틈도 주지 않고 화폭 가득 무지개색 바탕 위에 '행복'을 메웠습니다. 화가의 소망이기도 하겠고요. 그림 속에 마르크 샤갈의 뉘앙스가 풍겨나와 반갑습니다. 화가는, 보면 행복해지는 그런 그림을 작은 화폭에 그렸습니다.

김덕용님의 작품은 전에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적인 그의 그림 세계 속에 서양인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제가 보기에 '진주 귀고리 소녀' 같았습니다. 그 또한 결 속에 잘 들어가 있습니다. 와서 보시기를.

작은 것의 미덕이라는 것도 있을 법 합니다. 큰 것을 지향하는 세상에서 작은 것은 보잘 것 없지만 그래도 우리를 견디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작은 것들이 잘 지켜졌으면 합니다. 무엇이 작은 것인가는 생각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작은 그림들의 위력! 한번 오셔서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Small is beautiful' 전시회. 이화익 갤러리(02 730-7814). 1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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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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