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미니 이마트'로 관심을 모은 이마트 메트로 광명점이 24일 오전 문을 열자마자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바로 코앞에 '유통공룡'을 맞닥뜨린 광명시장 상인 수백명이 '개점 반대'를 외치며 집회를 벌이자 경찰과 이마트 측이 출입구를 모두 막아버린 것이다.
"이마트 입점 날이 광명시장 제삿날!"
@BRI@"재래시장 입구에 이마트가 웬 말이냐! 영세상인 죽이는 이마트 당장 물러가라!"
24일 오전 10시께 가게 문을 모두 내리고 광명시장 입구에 수백 명의 시장상인들이 모여 들었다. 이들이 이마트 광명점이 새로 입점한 크로앙스 건물로 이동하는 데는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바로 광명시장 입구, 사실상 시장 노른자위를 이마트가 차지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지하 2층 이마트 매장 입구는 지하철 7호선 광명사거리 역사와 바로 이어져 지하철 손님들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구조다.
이미 대형슈퍼마켓이 있던 자리, 그것도 전국 이마트 가운데 가장 작다는 광명점의 등장에 상인들이 이토록 반발하는 것도 이처럼 가까운 매장 위치와 이마트의 상징성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형마트가 보통 1000~3000평 규모인 반면 이마트 메트로 광명점은 350평 규모의 SSM(슈퍼슈퍼마켓) 형태. 하지만 '대형마트업계 1위 이마트'라는 브랜드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이날도 오전 10시 개점 직후 수백명이 고객들이 몰려들어 매장 안은 발디딜 틈 없었다.
10시 30분경 상인들이 이마트 매장으로 통하는 크로앙스 출입구로 들어가려 하자 경찰들이 방패로 막아섰다. 결국 상가 측이 셔터를 내려버리자 일부 상인들은 지하철 역사 통로를 이용해 이마트 입구로 바로 이동했다.
이마트 매장 입구에는 이미 10여명의 사설경비업체 직원들이 문을 막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마트 물러가라'고 적힌 붉은 띠를 두른 상인들이 매장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직원들이 출입을 막았고 이 과정에서 심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지상에 있던 경찰 병력까지 내려와 지하2층 출입구를 겹겹이 둘러싸고 고객 출입까지 막았다.
"소비자 선택에 맡겨야" - "지역경제 고사될 수도..."
입구가 막히자 이마트 개점 소식을 듣고 매장을 찾았던 고객들이 입구 앞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젊은 고객은 "광명시내에 대형마트가 없는데 이마트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손꼽아 기다렸다"면서 "이마트가 생기더라도 재래시장에서 살 물건은 사지 않겠느냐"며 이마트 입점을 반겼다.
아이를 안고 온 한 20대 고객 역시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불편해 지금까지 재래시장 대신 멀더라도 대형마트를 이용해 왔다"면서 "사고 싶은 것 사는 것도 소비자 권리인데 상인들이 이용을 막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한 40대 고객은 "소비자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지만 이마트가 생기면 아무래도 재래시장 상인들이 고사할 수밖에 없고 결국 지역경제도 죽지 않겠느냐"며 상인들의 처지를 헤아리기도 했다.
"시민혈세 57억 들인 시장현대화, 말짱 도루묵!"
지금까지 대형마트 무주공산이었던 광명지역 최대 재래시장으로 자리매김한 광명시장 400여개 점포 상인들은 이마트의 등장을 생존권을 위협하는 최대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6월경 이마트 입점 사실을 알게 된 시장 상인들이 이마트입점저지대책위를 결성한 뒤 7차례 반대집회를 열고 광명시와 시의회 등에 청원서까지 제출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이에 대책위 집행부 간부들은 지난 20일 집단 삭발하고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광명시장 이마트입점저지대책위 정준식 총무는 "이마트 자리에 있던 개인 슈퍼마켓의 하루 매출이 3000~5000만원 정도였지만 이마트 브랜드를 감안하면 매출이 2배 이상 늘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 광명시장 하루 매출이 2억~2억5000만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시장 매출의 절반 이상을 잠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광명시장에서 10년째 청과물상을 하고 있는 조성재(55)씨는 "일반슈퍼라면 경쟁이 되지만 이마트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는 데다, 걸어서 장보러 다니는 사람까지 대형마트가 흡수해 버리면 시장상인은 다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광명시장 상인들이 더 황당해 하는 건 바로 얼마 전까지 정부예산 57억원을 들여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시장현대화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시장 입구에서 10년째 구이김집을 해온 양영애(59)씨는 "시장 현대화 공사 때문에 장사를 제대로 못하면서도 손님 들 것만 기대했는데 공사 다 끝나고 나니까 난데없이 이마트가 들어온다니 말이 되느냐"고 하소연했다.
정준식 총무는 "지난해 3월부터 장사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시장에 지붕을 덮고 상하수도, 도시가스 공사 등 70% 정도 작업을 마친 상태지만 이제 시장 현대화의 의미가 사라져버렸다"고 밝혔다. 이마트가 손님들을 다 끌어가는 상황에서 시설만 현대화해 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시장 점포 1/3 폐점 위기...무분별한 확장 중단해야"
시장상인들이 더 염려하는 문제는 이마트 광명점이 언제까지 슈퍼마켓 정도에 머무르겠냐는 것이다. 이마트가 입점한 지하 2층, 지상 7층짜리 대형유통상가를 모두 흡수할 경우 3000평 규모의 초대형마트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이마트 측은 적극 부인하고 있지만 시장상인들의 염려는 단순한 기우에 그치지 않는다. 정준식 총무는 "실제 이마트가 식품매장을 임대해 들어간 인천 주영백화점이 결국 부도가 나면서 신세계백화점에 넘어간 사례가 있다"면서 "위층 상가들까지 조금씩 먹어 들어가 결국 전체를 차지하겠다는 발상 아니겠느냐"고 우려했다.
전남 홍도에서 올라와 15년 야채 노점상 끝에 지난해 점포를 마련했다는 박경애(71)씨는 "아들 전세금까지 털었는데 이마트가 들어와 가게 권리금도 못 건지게 생겼다"면서 "어차피 가게문 열어봐야 장사도 안될 것, 앞으로 이마트 문 닫을 때까지 계속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광명시장 상인들은 오후 4시경 집회를 마치고 철수했다. 하지만 이마트 광명점 폐점시까지 계속 매장 앞에서 집회를 벌일 계획이어서 사태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23일 광명시장 대책위와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이마트 입점시 매출감소로 광명시장 입점 점포의 3분의 1이 문을 닫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마트는 무분별한 확장을 중단하고 지역 중소영세상권을 보호하는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심 의원은 지난해 5월 1000㎡(약 300평) 이상 대형유통매장 입점시 지자체 등에서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지역유통균형발전법안을 발의했으나 현재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에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