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기본법안은 차별법입니다. 적어도 이 만화에 등장하는 아이에게 있어서는요. 일본인과 재일코리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을 설정한 것은 공교육이 일본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교육기본법 개악안은 현 교육기본법의 방침인 '인격의 완성', '자주적 정신'을 사실상 부정하고 있습니다. 개악 법안이 원하는 것은 국가에 충실한 아이들뿐 입니다. - <교육은 누구의 것인가> 오오타 (お-た)
<교육은 누구의 것인가>란 만화에 실린 글이다. 이 만화는 '미국의 전쟁확대와 일본의 유사법제에 반대하는 서명'이란 단체가 지난해 12월15일 일본 국회를 통과한 '일본 교육기본법' 개정 반대 운동의 일환으로 제작한 것이다.
모두 18개조로 이뤄진 교육기본법 개정안은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고, 이를 육성해온 국가와 향토를 사랑하도록 한다"는 표현이 전문에 포함되어 국가중심의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 교육계를 비롯 기본법 개악에 반대하는 이들은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동경·오사카 등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1인시위나 대형 집회를 계속 전개해가고 있다.
국가를 사랑할 것을 강요하는 '마음의 노트'
'애국심'을 강조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이런 태도는 5년 전인 2002년부터 계속 돼 왔다고 볼 수 있다. 바로 '마음의 노트'라는 책을 통해서다.
필자가 '마음의 노트'라는 정체불명의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 아베 정권이 속전속결로 교육기본법 '개정'을 단행할 무렵의 일이었다. 이즈음, 시즈오카에 사는 재일조선인 친구에게 메일 한 통을 받게 됐다. 거기에는 교육기본법 '개악(改惡)'이 재일사회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와 함께 짧은 만화 한편이 담겨있었다. 이 만화 속에 '마음의 노트'가 등장했다.
도덕 과목의 부교재인 '마음의 노트'가 일본 전국의 초중등학교에 배포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4월의 일이다. 초등학교 저·중·고학년용과 중학생용의 4종류로 나누어진 이 책자는 문부과학성(이하 '문과성')이 편집제작하고 4개의 민간출판사가 발행에 참가했다.
당초 문과성은 4년간 초등학교 저학년용부터 발행할 것을 계획해 1억9000만엔(한화 14억7096만원)의 예산을 책정했지만, 단기간에 8억6000엔(한화 66억5803만원)에 가까운 예산을 확보해 4종류를 한꺼번에 발행한다. 책 제작에 깊이 관여한 곳은 '일본회의(日本됵땉)'로 현 정권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 최대 극우단체다.
마음의 노트에는 저자명이나 발행처가 없다. 단지 '문부과학성'이라는 표기가 조그맣게 쓰여 있을 뿐이다.
교육 관련 사이트에서 중학생용 마음의 노트를 구할 수 있었다. 맑은 물속에 떨어지는 초록빛 잎사귀가 그려진 표지를 넘기자 크게 4개의 장으로 나뉜 목차가 나왔다. 크게 '자기 자신', '타인과의 관계,' '자연과 숭고한 것들과의 관계' 그리고 '집단과 사회와의 관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집단과의 관계를 다룬 4장으로 '향토를 더욱 사랑하자',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이 나라에 산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분명 교육기본법이 바뀌기 5년 전에 발간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애국심'과 '향토'를 강조하는 현 교육기본법과 맥이 닿아 있다.
'마음의 노트'는 발행 초부터 교육계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들의 심리를 조작한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반대운동을 펼치게 된 것. 이들의 반대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사실상의 국정교과서다. 교육기본법 개정으로 교육 내용에까지 간섭할 법적 근거를 얻은 문부과학성이 정기적으로 사용여부와 횟수 등을 점검, 적극적인 사용을 강제하고 있다.
▲심리학적인 수법을 이용해 아이들의 내면의 자유를 조작하려 한다. 아이들이 접하는 다양한 사회의 모순을 전부 아이들 내면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아래와 같은 내용을 습득하게 될 위험이 있다. '내면의 악한 근성을 버리고 자신보다는 사회의 이익을 생각하라', '위대한 것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을 사랑하라', '자신의 나라(일본)를 사랑하고 국가를 위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등.
▲외국인 아동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교과서에서 강조하는 '애국심'을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은 철저히 소외되어,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아름답지 않은 과거는 가르쳐선 안 된다?
애국심 교육은 교묘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법안에 대한 논란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지난해 11월, < NHK >의 시사 프로그램 '클로즈업 현대'는 '애국심이 뭐예요?'라는 제목으로 애국심 수업이 이루어지는 학교 현장을 생생하게 방송한 바 있다.
동경 시내 한 초등학교의 도덕시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치던 교사가 질문한다. "여름만 있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일본은 4계절이 있어서 아름답다'라고 말한다면?" 아이들은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 없지만 일본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일본에 태어나서 좋아요'라고 답한다.
이어 한 여학생이 '사계절이 없는 나라의 자연도 아름다운데 왜 일본의 자연만 아름답다고 해요?'라고 묻자 교사의 표정이 굳어지고, 여자 아이의 시무룩한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수업이 끝난 후 대부분의 아이들은 '4계절이 있는 일본은 아름다운 나라', '일본의 4계절과 문화를 소중하게 지켜나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등의 감상을 적어낸다.
아이들의 행복을 생각한다는 정부의 지령은 간단하다. '일본은 아름답다, 일본은 대단하다라고 가르치세요'. 아름답지 않은 것은 가르쳐서는 안 된다. 당연히 침략전쟁에 관한 역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동경대학살과 일본군 위안부,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생겨난 재일코리안을 비롯한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분명 일본의 교육계는 위기에 처해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수많은 문제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린다. 유아학대, 등교거부, 이지메, 학력 저하를 비롯해 니트와 프리타까지. 격변하는 사회와 교육은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어떤 반성도 없는 역사와 현대에 대한 '장밋빛' 교육. 국가의 구미에 맞지 않는 것은 교육의 현장에서도, 아이들의 마음에서도 삭제될 수밖에 없다.
교육기본법 개악에 지속적인 반대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 교육운동가는 말한다.
"'그들'이 목표하는 도달점은 '아름다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젊은이, 국가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순종적인 국민을 만드는 것입니다. 자민당이나 새로운 헌법정책은 현행법의 성격 자체를 변질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논리는)'일본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지키기 위해서는 군대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입니다. 그러나 교육기본법 개악이 말하는 '애국심'은 나라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는 것일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