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영산강 유역의 고대 사회’에 대하여 특강을 하고 있는 이정호 교수(동신대학교)
‘영산강 유역의 고대 사회’에 대하여 특강을 하고 있는 이정호 교수(동신대학교) ⓒ 최장문
"공주, 부여, 경주에 가면 볼 수 있는 것은?"
"큰 무덤이 있다."
"큰 무덤이 있는 도시의 정치적 특징은?"
"삼국시대 수도였다."

"그럼 나주 영산강 주변에서 발견되고 있는 대형무덤이 분포한 지역도 고도(古都)로 봐야 할 것인가? 고구려, 백제, 신라에 가야(김해)를 넣어 4국, 여기에 다시 마한(나주)을 넣어 5국 시대로 볼 것인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문헌자료는 없고 유물은 국가와 관련된 금동신발, 환두대도 등이 나오고... 곤혹스럽다.

좀 비약이긴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가지고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한편의 재미난 소설을 써도 좋을 듯싶다. 마치 주몽이나 대조영에 대한 역사적 문헌자료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몽>이나 <대조영>이라는 대하드라마를 만들 듯이…"

영산강 유역의 고대 사회에 대하여 특강을 해주신 이정호(동신대학교) 교수의 말이다.

영산강 유역에는 나주를 중심으로 광주, 영암, 함평, 무안 등에 다수의 대형 무덤이 분포하고 있다. 그 규모나 숫자는 고구려나 백제, 신라, 가야 등 고대 삼국의 왕도에 분포하는 고분의 규모나 숫자를 능가한다. 현재 영산강 유역에 분포하는 고분은 수백여 개이며 규모는 한변이 30m~78m에 이른다.

그래서 삼국이냐고, 오국이냐고?

영산강 유역의 대형 무덤 위에서 선생님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영산강 유역의 대형 무덤 위에서 선생님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최장문
발굴중인 무덤군. 이 대형 무덤 중에는 불과 십여년 전까지 안동 권씨의 선산으로 사용 된 무덤도 있다. 무덤이 아닌 산으로 여겨질 만큼 규모가 크다. 무덤위에 묘를 쓴 셈이다. 그래서 ‘아파트 고분군’이라는 현대식 명칭이 생겨났다.
발굴중인 무덤군. 이 대형 무덤 중에는 불과 십여년 전까지 안동 권씨의 선산으로 사용 된 무덤도 있다. 무덤이 아닌 산으로 여겨질 만큼 규모가 크다. 무덤위에 묘를 쓴 셈이다. 그래서 ‘아파트 고분군’이라는 현대식 명칭이 생겨났다. ⓒ 최장문
여기에서 나온 유물들은 어디에다 붙이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뀌는 것 같다. '어! 금동신발 이거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것인데… 백제 왕족이 묻혔나보다. 백제 중앙 왕실과 맞먹는 사람이 묻혔나보다'.

'전방후원군 무덤, 이거 일본에서 유행하던 양식인데… 일본인들이 건너와 이 지역에 살았나보다… 지배했었나 보다' 등등.

처음 전방후원군(앞쪽은 네모 뒤쪽은 원 모양의 형태로 일본에서 많이 나타나는 무덤 양식)의 무덤이 발견되었을 때, 일본 NHK방송국에서 헬기를 타고 와서 사진을 찍을 정도였다고 한다. 일본 고고학자만도 200여 명 찾아왔다고 한다.

그럼 왜 일본은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된 전방후원군 무덤 양식을 두고 초긴장을 하는 것일까?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백제 왕족이 바다를 건너와서 일본을 세웠다는 현재의 학설도 성이 안 차는데, 지방의 영산강 주변 사람들이 일본에 와서 나라를 세웠다는 고고학적 증거자료가 될까봐 긴장을 하였던 것이다.

발굴조사 결과 일본보다 시대가 떨어졌다. 이후에 일본은 '고대에 일본이 영산강 주변을 지배했었다'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큐모의 전방후원군 무덤은 78미터, 일본은 오사카에 있는 400미터이다.

그러나 전방후원군 양식은 일본과 같은 면도 있으나 부장품이 백제 것, 토착적인 것이 많기 때문에 일본 무덤이라 말할 수 없다. 다만 이 지역문화가 다국적, 개방적 문화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조선사람 무덤이냐고, 일본사람 무덤이냐고?', '삼국이냐고, 오국이냐고?'

혹자가 다시 따져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모른다' 이다. 한 평생을 이 분야에서 연구해온 전문가들도 생각이 다른데 이틀간 보고 들은 내가 어찌 답을 말라햐! 새롭게 보고 들은 것을 혼자만 알자니 아쉽고, 발문을 하고나니 문제해결 능력이 안되고…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4세기에 백제 근초고왕이 전라도 지역의 마한 세력을 정복하고 5세기 무령왕은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을 통제하였다'라는 국사 교과서 서술에 대해 무덤의 규모와 양을 놓고 보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김해에 답사를 갔을 때 '삼국시대에 가야를 넣어 4국시대 라고 주장하는 학설도 있다'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오늘 나주에 와서 마한의 유물·유적을 보니 5국 시대라는 학설도 있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에서의 '다양한 해석'과 '객관성'의 확보! 다양성에 관심을 갖자니 역사가 혼란스러워지고, 객관성을 강조하자니 역사가 너무 획일화되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옆에 있던 선배교사가 웃으며 말한다.

"교과서에 있는 대로 가르쳐~어."

선생님들의 눌러쓴 모자에서 강추위를 느낀다.
선생님들의 눌러쓴 모자에서 강추위를 느낀다. ⓒ 최장문

오늘 답사는 세찬 바람으로 오감이 무뎌질 정도로 추웠다. 깜짝 이벤트로 준비한 따뜻한 오뎅 국물은 추위를 녹여주었다. 따뜻한 국물만큼이나 전남 선생님들의 따뜻함을 느낀 하루였다.
오늘 답사는 세찬 바람으로 오감이 무뎌질 정도로 추웠다. 깜짝 이벤트로 준비한 따뜻한 오뎅 국물은 추위를 녹여주었다. 따뜻한 국물만큼이나 전남 선생님들의 따뜻함을 느낀 하루였다. ⓒ 최장문

덧붙이는 글 | 다음에는 '임란 의병장 김천일'이 이어집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가 세월속에서 문화의 무늬가 되고, 내 주변 어딘가에 저만치 있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보면 예쁘고 아름답다고 했는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