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1일)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반기는 건 뜻밖에 박새였다. 우리 집 감나무 가지를 타고 이리저리 오르내리는 박새를 보니 덩치는 까치에 훨씬 못 미치지만 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노는구나 하여 대견히 여겼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게 아닌 듯했다.
녀석은 감나무가 하도 오래돼 구멍이 몇 군데 뚫려 있었는데, 바로 거기를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게 아닌가. 결국 녀석도 그동안 따뜻한 기온에 숲 속에 머물다가 갑작스러운 추위를 이길 수 없어 나무 속으로 파고들려는 듯 여겨졌다.
@BRI@가는 길에 다른 날 같으면 마을 어른들과 마주칠 텐데 보이지 않았다. 성산댁 할머니 마당에 내놓은 평상에는 겨울이라도 어지간한 날씨에는 할머니 몇 분이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데 역시 낙엽만 자리를 잡고 있을 뿐.
달이 냇물에 비치면 달그림자가 냇물과 함께 흘러간다 하여 붙여진 '달내마을(한자로는 月川)'이란 이름을 낳게 한 개울에 이르렀을 때 예상대로 꽁꽁 얼어 있었다. 이제 밤에 달그림자가 비쳐도 냇물과 함께 흘러가지 못하리라.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가에 버려진 합판 조각이 눈에 들어와 눈길을 주니, 아내가 또 한마디 한다.
"또 쓰레기가 눈에 띄었지요. 어지간히 갖다 놓아요. 이제 둘 곳도 없는데."
아내의 말에 그냥 지나치려다 갑자기 산책 나올 때 본 박새가 떠올랐다. 이렇게 겨울을 보내고 나면 녀석은 봄에 새끼를 낳을 게고, 그러려면 집이 필요했다.
작년 봄에 우리 부부는 박새와 전쟁을 벌였다. 박새와 전쟁이라니? 죽이고 살리는 문제가 아니라 녀석이 아무 곳에나 집을 만드는 통에 우리는 집을 부수고 녀석은 다시 짓는 전쟁이었다.
웬만한 자리면 그냥 둬도 좋으련만, 하필이면 녀석이 집을 만든 곳이 창고 뒤 장작 쌓아놓은 곳과 우체통 속이었다.
집 뒤 장작 쌓아놓은 곳은 별일 없으면 그냥 그대로 뒀겠지만 아궁이 쪽에 땔감이 떨어지면 갖다 날라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 집을 망가뜨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보다 우체통이 더 문제였다.
녀석은 그곳에다 집을 지었다. 제법 봄바람이 불어오면서 날이면 날마다 우체통 속에 잔가지나 나뭇잎을 갖다놓았다.
한 번은 우체부 아저씨가 우편물을 넣다가 깜짝 놀라는 일도 있었다. 무심코 편지를 넣는데 안에서 갑자기 박새가 튀어나왔으니. 사실 놀라기로 하면 박새가 더 놀랐겠지만.
그 뒤로 우리 부부는 아침마다 우체통 속 청소를 해야 했다. 그러면 녀석은 다시 그 속을 채워놓고…. 그래서 작년에 결심하기를 올봄에는 꼭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이번 참에 만들어주면 추위도 피할 겸 봄에 새끼 낳을 공간이 될 것 같아 즉시 실행에 옮겼다.
어릴 때부터 뭐든 만드는 걸 좋아한 취미가 이럴 때는 썩 도움이 됐다. 구경꾼인 태백이와 강산이(둘 다 풍산개)도 신기한지 제 주인이 하는 행동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두 녀석 중 강산이의 집은 가게에서 샀지만 태백이의 집은 직접 만들었다.
처음 생각에는 두 개쯤 만들려고 하다가 우리 집 감나무가 워낙 크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나무를 다 채우려면 수십 개가 있어야 하지만 쉬엄쉬엄 만들어 달기로 하였다. 오늘 우선 세 개 달고 짬이 날 때마다 만들어놓으면 달 곳이야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가만 생각하다가 보니 정말 그동안 나는 자연을 훼손만 했지 도움을 준 적이 한 번도 없지 않은가. 나무를 심은 적보다 자른 적이 더 많았고, 날짐승이나 들짐승을 해친 적은 있었지만 보호한 적은 없었다.
오늘 박새집 만든 걸 시작으로 올해는 자연을 살리는 일들을 좀 하고 싶다. 내가 만들어서 그런지 새집이 유난히 예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연재 중인 '달내일기'는 제가 사는 '달내마을'에서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이 되지 않는 관계로 하여 띄엄띄엄 올릴 수밖에 없음을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