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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박형숙 기자
- 사진 : 권우성 기자
- 동영상: 김윤상 기자


▲ 산문집 <서른의 당신에게>를 펴낸 강금실 전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9개월만에 모습을 보인 강금실 전 장관을 취재하기 위해 좁은 식당에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어 높은 관심을 보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강금실 전 장관이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마한지 9개월만의 일이다. 책 한권을 들고 나왔다. <서른의 당신에게>라는 산문집이다. 책 표지에는 이런 카피가 있다.

"불현듯 삶이 막막하거나 턱없이 만만해 보여도 서른 즈음의 젊은 그대여, 혹독한 세상의 비수에 상처 받지 말자.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지지 말자."

대선의 해, 유력주자들이 너나없이 자서전을 내는 시기와 맞물려 강 전 장관의 출판 배경에도 '의혹'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그는 책 서문에서 "왜 글을 쓰느냐고 물으면 그냥 쓰고 싶어서라는 말밖에 달리 할 답이 없다"고 무심한 듯 밝혔다. 그는 흔들리는 청춘기인 '서른 즈음'의 후배들에게 "당신이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이라는 전제로 자신의 고민과 경험을 풀어냈다.

열린우리당 사분오열 "아직 평가하기 일러"

12일 서울 인사동 한 한정식집에서 오찬을 겸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출판사(웅진)측에서 마련해 언론사 출판담당 기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하지만 정치부 기자들이 절반을 차지했다. 강 전 장관은 이를 의식한 듯 인사말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때가 때인 만큼 선거철에 책을 내면 정치에 뜻을 두고 한 것 같아 염려했다. 아시겠지만 선거 끝나고 얼마간 쉬었고 작년 가을부터 글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연초에 나왔다. 본인이 원하고 하고자 하는 것을 (이러한) 염려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다. 정치나 정치인으로서의 글쓰기가 아니라 내가 살아왔던 사회적 삶으로서 체험과 만남을 담았다."

강 전 장관과 출판사측은 정치 현안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답하지 말자고 사전에 입을 맞췄다고 했지만 완전히 비껴갈 수 없었다. 더욱이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3~5% 정도의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 그는 "제가 여권 주자 중에 수위냐 아니냐는 큰 의미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개인적으로는 (국민들이) 기대를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답했다.

▲ 정치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강 전 장관이 곤란하다는 듯 웃음으로 넘기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아직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사분오열하는 당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며 "아직은 상황을 평가하기가 빠른 것 같다"고 답했다.

이렇다할 답변이 나오지 않자 '대선에 출마하시냐'는 취재진의 노골적인 질문이 나왔다. 강 전 장관은 아예 입을 닫았다. 미소만 머금었다.

기자들이 먼저 침묵을 깨고 "소이부답(笑而不答)이라고 쓸까요? 아니면 염화미소(拈華微笑)?"라고 자문자답하자, 출판사측에서 "노코멘트"라고 잘랐다. 강 전 장관은 취재진을 향해 "사진을 그만 찍으면 안될까요? 오붓하게 얘기했으면 좋겠다"며 다소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책을 내면서 정치 발언 하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본다. 그런 의도로 책을 낸 게 아니기 때문에 정치이슈로 비화되는 것은 경계하고 싶다. 답답하더라도 질문을 좀 자제해 주길 바란다. 마치 그렇게 되면 보통 정치인들이 책 내고 출판기념회 하는 것이랑 다르지 않기 때문에 제 자신에게 불성실한 사람이 될 것 같다."

"더이상 빚 얘기 안나오도록 살아야죠"

카메라 불이 꺼지고 노트북이 닫히면서는 좀더 편안하게 질의응답이 오갔다. 서울시장 선거 막판 '72시간 마라톤 유세'라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떠난 뒤, 그는 "재밌었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고 말했다.

선거 이후 지방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순진한 생각"에 '국토순례'를 계획했지만 언론에 "대권행보"라는 수식이 달리면서 이내 접어버렸다. 이번에 낸 책에서 '딸기나무 이야기'라고 소개된 대목, 경북 의성군에서 두봉 주교 관사에서 피정을 지냈던 것이 그가 하고 싶었던 국토순례였다.

선거 이후 한 달은 푹 쉬었고, 이후 두 달은 선거 때 도와준 사람들을 찾아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한 때 '강금실의 남자들'이라고 소개된 적도 있다. 선대본에서 일을 도운 김영춘, 민병두, 오영식, 김형주 등 열린우리당 의원들과는 아직도 한두 달에 한번씩은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석 달을 쉰 뒤에는 변호사 일을 새로 시작했고, 외교통상부의 여성인권대사로 있으면서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며 "자리를 잡는 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의 고민은 좀더 "구체적으로 사는 것"에 닿아 있었다. "생활비를 벌고 내 집을 마련하고, 어떻게 하면 빚을 갚을까하는 게 고민"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언론에서) 앞으로는 빚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냐"고도 했다.

여성인권대사로서도 "상반기 중 꼭 성과를 내려고 한다"며 '국제결혼' 문제에 애착을 드러냈다. 작년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유엔아태경제사회위원회(UNESCAP) 이주여성 전문가 세미나에도 참석했고 지난 1월엔 이주 여성 주요 송출국인 베트남과 필리핀을 방문해 현지 조사를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국제결혼 비율이 13%나 되고 베트남의 경우 연간 8000쌍이나 된다. 정부가 결혼 이후 지원 정책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주여성들이 한국에 오기 전에 결혼할 사람에 대해 좀더 많이 알고 우리의 언어, 문화,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선진국인 호주나 캐나다는 이미 많이 하고 있다. 올 상반기 현지에서 사전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여당 경선에 참여 계획? "그동안 바빠서..." 여운

식사를 하면서 정치 얘기도 보다 편안 수준에서 오고갔다. 노 대통령의 개헌 발의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그는 "개헌 차제에 대한 여론은 높지 않냐"고 반문한 뒤 "법리의 문제는 아니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상황의 문제인 것 같다"고 말해 '시기'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한나라당 대권주자인 손학규 전 지사가 여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가벼운 코멘트도 나왔다. "좀 웃겼어요. 다른 당의 사람을… 호호호"

여권의 오픈프라이머리(국민경선제)에 참여 의사가 있는지 묻자 그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다"며 "그동안 책 내느라 바빴다"고 일축했다.

언론기관이 진행하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강금실'이라는 이름은 포함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의 이름을 늘 넣는 편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소장 김헌태)는 "여권에 인물이 너무 없다보니 한명숙, 천정배, 유시민 등과 함께 포함시킨 결과"라고 말한다.

한귀영 연구실장은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여권 주자 중에선 꾸준히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며 "특히 여권에서 논의되는 '진보신당'과 관련해 박원순, 문국현, 정운찬은 대중적 인지도가 낮지만 강금실은 지난 서울시장 선거과정에서 마지막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정동영 전 의장으로 대표되는 '호남중도신당'과 제3후보의 '비호남진보신당' 구도에서 '강금실의 가능성'을 주목한다는 얘기였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삶의 힘!"
강금실이 우울에 빠진 서른 즈음의 당신에게

강금실 전 장관의 첫 저서 <서른의 당신에게> 출판 간담회에서도 탤런트 정다빈(27)씨의 죽음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강 전 장관은 자신의 책에서 '세상에 견디지 못할 일이란 없다'는 챕터를 들어 "죽음이나 우울에 대한 염려를 염두하고 쓴 부분"이라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우리 때는 공간도 닫혀 있고 자유롭지 못한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다양한 가능성과 자유가 주어지지만 경쟁이 너무 치열해져서 무지 힘든 것 같다. 그러다보니 더 못 견딜 수 있다. 좀더 삶을 넓게 꾸려나가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강 전 장관은 서른 즈음의 후배들에게 "고민하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충고한다. 생각하는 힘! 그런 점에서 자신의 책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처세서'가 아니라 "생각과 판단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위기와 어려움 뚫고 나가는 힘이라는 점에서 읽힐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강 전 장관은 설 이후 <교보문고> 주최의 '저자 사인회'를 서너 차례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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