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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영
다음날(8월 7일) 새벽, 가욕관역에 도착했다. 가욕관시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감숙성에 속하고, 하서주랑의 중심에 있다. 가욕관시 서북쪽에는 만리장성의 서쪽 끝인 가욕관성이 있고, 남쪽에는 만년설로 뒤덮인 기련산맥이 버티고 있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황량한 고비사막이 펼쳐져 있다.

인구는 30만명 정도이고, 연강수량은 80㎜밖에 되지 않는 건조한 곳이다. 가장 추운 1월은 기온이 영하 28℃이고, 가장 더운 7월은 38℃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연평균온도 7℃라 하니 뜨거운 날보다 추운 날이 더 많은 셈이다.

그래서 이곳의 관광은 5월에서 11월 사이에만 가능하다. 그 이후의 기간에는 기온이 너무 낮아 여행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주민들은 그 기간 동안 1년의 수입을 다 벌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주변 도시보다 물가가 비싼 것 같다.

가욕관 시내는 제철공장이 생기면서 신흥도시로 형성되어 구획정리가 잘 되어 있고 건물들이 깨끗한 것이 우리나라 신도시와 같았다.

▲ (사진 위) 다음날 새벽 도착한 가욕관역 (사진 아래) 가욕관 시내. 깨끗하고 정리가 잘되어 있다.
ⓒ 조수영
아무리 마셔도 모자라지 않는 술의 샘, 주천

가욕관성으로 가기 전에 주천 5호묘를 들르기로 했다. 주천은 가욕관역에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었다. 주천은 실크로드의 주요 오아시스 중 하나로 일찍이 상업도시로서 번영했던 곳이다. 그러나 오랜 역사 속에서 한족과 유목민과의 세력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곧 싸움터의 한복판이 되고 마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주천으로 가는 길 양쪽에는 우산나무, 백양나무, 버드나무 등의 가로수가 늘어서 있다. 이 나무들은 원래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오아시스 도시의 주변에 많이 심었다. 그 너머에는 옥수수밭과 보리밭, 목화밭 등이 펼쳐져 있다.

주천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러하다. 북방의 유목민 흉노와 싸워 이긴 곽거병과 그 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해 한무제가 술을 보내왔는데 전군이 마시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곽거병이 그 술을 샘에 쏟아 부었더니 샘이 금방 술로 변해 아무리 마셔도 모자라지 않았다고 하여 술의 샘이라는 지역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한다.

▲ (사진 위)얼핏 보아선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천5호묘 입구과 매표소. (사진 아래) 안내원이 열어준 철문을 지나 계단으로 내려간다.
ⓒ 조수영

▲ (사진 왼쪽)안내원이 열어준 철문을 지나 계단으로 내려간다. (사진 오른쪽) 입구에서 가까운 지점에 도굴의 흔적이 있었다.
ⓒ 조수영
주천 5호묘는 천 육백년 전 위진남북조시대 어느 제후의 무덤이다. 고비사막에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묘가 천 개 정도 있는데 가욕관 6호묘와 이곳 주천 정가갑 5호묘가 대표적이다. 주천 5호묘란 주천에서 발견된 다섯 번째 무덤이라는 뜻이다.

안내원이 열어준 철문으로 들어서면 계단이 나타난다. 시원한 내부는 뜨거운 이곳의 더위를 식히기에 충분했다. 묘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나라 공주에 있는 무령왕릉이 생각났다. 무령왕릉이 위진남북조 시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했으니 그 전형을 여기에서 본 셈이다.

인간세상과 천상을 벽화에 그리다

전실과 후실은 좁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각 실의 최대높이는 12m 정도이고 전체 길이는 33m이다. 벽돌로 지어서 석회칠을 한 내부에 그려진 화려한 벽화가 특징이다. 전실에는 당시 사람들의 이상향과 제후의 생활을 보여주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벽화의 아랫부분은 인간세상의 모습을, 윗부분은 하늘세상을 그렸다.

천장은 둥글게 만들어 천상의 모습을 나타냈는데 천리마, 용 등이 그려져 있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그린 것은 도교의 영향이라 한다. 바닥은 사각으로 만들어 인간세상을 표현했는데 무덤의 주인인 제후가 가무를 즐기는 모습, 농사짓는 모습, 마차 등의 그림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얼굴이 각양각색이란 점인데 당시 많은 소수민족이 같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성한 나무와 농사짓는 그림에서 당시에는 이곳이 척박한 땅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좁은 통로로 연결된 후실에는 제후와 부인 그리고 애첩의 묘가 있었다고 한다. 묘실의 바닥에는 화려한 무늬가 조각되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의 발자국에 지워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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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왕모는 산이 치솟아 바위처럼 보이는 그 위에 손을 모으고 앉았으며, 그 아래에 세발까마귀와 구미호가 있다. 그리고 서왕모의 머리 위에는 달을 나타내는 원 속에 두꺼비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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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강자, 낙타

밖으로 나오니 사막의 따가운 햇살이 정수리에 꽂힌다. 등에 큰 혹을 가지고 있는 낙타는 이러한 사막에서 살아가기 적합하게 진화되었다. 스스로 닫을 수 있는 콧구멍과 귀 주변의 긴 털, 긴 속눈썹은 모래를 막아준다. 넓은 발은 모래 위를 걸어 다니기에 적합하다.

오랜 시간 물 없이도 견딜 수 있다. 등의 혹은 물이 아닌 지방이 저장된 것이어서 이를 비상식량으로 활동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에는 혹이 점점 작아지다가 나중에는 거의 없어진다고 한다. 혹의 크기도 영양 상태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

낙타는 혹이 1개 있는 단봉낙타와 2개가 있는 쌍봉낙타의 2종류가 있는데, 단봉낙타가 90%를 차지한다. 단봉낙타는 야생이 없고, 아랍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산다. 쌍봉낙타는 단봉낙타보다 크기가 약간 작은데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서부터 고비사막, 몽골에 이르는 지역에 분포한다. 그래서 중국 쪽의 실크로드에서 본 낙타는 모두 쌍봉낙타였다.

낙타는 옛날부터 가축화되어 사람이 타고 다니는 일 이외에도, 젖은 비타민C가 풍부한 음료로, 털은 천막이나 카페트를 만들고, 낙타가죽은 가방과 밧줄을 만든다. 낙타의 발에는 3개의 관절이 있기 때문에 관절염에 좋다하여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은 낙타발 요리를 꼭 찾는다. 그러나 고기나 혹은 맛이 없어서 먹지 않는다 한다. 하늘의 비행기과 육지의 책상을 빼곤 다 먹는다는 중국인도 가리는 걸 보면 어지간히 맛이 없나보다.

▲ 낙타가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 (직접 그림)
ⓒ 조수영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라는 말이 있다. 상당히 힘들다는 의미인데 어떻게 다른 동물도 아니고 낙타일까? 바늘과 낙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인데 말이다. 이 속담은 잘못된 번역에서 유래된 것이다.

사실 성경 마태복음 19장 24절에 나오는 성경구절 '밧줄이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를 잘못 번역한 것이다. 번역자가 아랍어의 원어 'gamta(밧줄)'를 'gamla(낙타)'와 혼동하였기 때문이다. 밧줄이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낙타에 비한다면 훨씬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생각으로는, 물리학에서는 아주 쉽게 낙타를 바늘구멍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 꼭 낙타뿐만 아니라 빛만 있다면 세상에 모든 물체를 바늘구멍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 바늘구멍 사진기를 이용하면 낙타를 바늘구멍으로 통과시켜 필름에 상을 맺을 수 있고 그곳에 흰 종이를 대면 실상을 관찰할 수도 있다. 실상은 바늘구멍 안쪽에 있으므로 낙타는 결국 바늘구멍을 통과한 것이 되지 않는가?

모래 사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막의 기준

일반적으로 사막이라 하면 모래언덕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러한 모래사막은 사막의 분류 중 한 가지일 뿐이다. 사막의 한계를 정하는 데 사용되는 기준은 건조도(aridity)이다. 1년에 내리는 비의 양이 250㎜ 이하일 때를 사막이라 한다.

뜨거운 사막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영구 빙하지역인 남극대륙, 그린란드 등은 고위도의 한성사막에 해당한다.

적도 주변에 존재하는 고압대 사막으로는 북아프리카의 사하라사막, 인도의 타르사막, 오스트레일리아의 빅토리아사막, 남아프리카의 칼라하리사막이 있다. 고압대 사막은 적도에서 더워진 공기가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차가워져서 내려올 때 생기게 된다.

내륙사막은 바다에서 먼 내륙에 있어서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실크로드를 지나면서 볼 수 있는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이 그것이다. 이러한 내륙사막에서는 기온의 일교차뿐만 아니라 계절적 변화도 크다.

또한 사막은 표면을 형성하는 물질에 따라 암석사막과 모래사막으로 구분된다. 흔히 사막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생각되는 모래사막은 단지 북아메리카에 2%, 사하라 사막의 10%, 아라비아 사막의 30%를 차지할 뿐이다.

우리가 지나는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은 자갈과 흙의 암석사막이다. 암석사막에서는 기온변화에 의해 암석이 풍화되었으나, 강한 바람에 의해 작은 세립물질들이 날아가 버려 모래를 거의 볼 수 없다.

사막의 생물이 살아가는 법

▲ 사막식물의 진화(직접 그림)

사막의 동식물들은 부족한 물을 얻어서 오랫동안 보존하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식물은 키가 작고, 물이 증발되는 표면적을 줄이기 위해 잎은 작거나 없어지고, 가시로 진화되었다.

또한 뿌리는 넓게 퍼지거나 깊이 내린다. 낮 동안에는 기공을 닫고 있으며,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큐티클 층으로 덮여 있고, 많은 양의 물을 축적하기 위해 다육다즙기관을 지니고 있다.

동물들은 대부분 기회만 있으면 물을 마시지만, 물이 없을 때는 다즙식물이나 그들의 먹이가 되는 다른 동물의 피나 조직을 통해 수분을 공급받는다. 심지어 낙타는 등의 혹에 축적되어 있는 지방을 산화시켜 물을 만들어낸다.

물의 보존 방법도 다양한데 파충류와 곤충류는 두꺼운 외피를 가지며, 포유류는 배설하기 전에 오줌 내의 물을 재 흡수하여 오줌을 농축시킨다. 갈증을 피하기 위해 야행성이 된 것도 있고, 가뭄기간 동안 여름잠을 자는 동물도 있다.

덧붙이는 글 | 1) 곽거병 - 한무제 때 장군으로 흉노의 정벌에 공이 컸다. 그러나 그가 24세인 젊은 나이에 죽어 안타까웠던 무제는 자신의 무덤인 무릉 근처에 무덤을 만들게 하고, 그 앞에 흉노를 밟고 있는 말의 상을 세우게 했다. 이른바 마답흉노(馬踏匈奴)이다.

2)청룡 - 동쪽의 수호신. 푸른 용의 형상을 하고 봄을 관장했다.

3)백호 - 서쪽의 수호신. 하얀 호랑이의 모습으로 가을을 수호하며, 쇠와 같은 금속을 관장한다. 
4)주작 - 남쪽의 수호신. 붉은 새의 모습으로 불을 다스리며 여름을 관장한다.

5)현무 북쪽의 수호신. 뱀의 꼬리를 가진 검은 거북이의 모습이다. 북쪽에서 오는 매서운 겨울을 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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