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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역 밤의 승강장 풍경
룩소르역 밤의 승강장 풍경 ⓒ 이승철
카르낙 대신전과 룩소르 신전, 왕가의 계곡과 핫셉수트 장제전, 그리고 멤논의 거상 등 고대 이집트왕조의 고도였던 룩소르 유적들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체류기간이 짧아 아쉬움을 남긴 채 룩소르 관광을 마치고 카이로까지 가는 길은 야간열차를 이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열차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어서 룩소르 시가지의 재래시장을 잠깐 둘러보기로 하였다. 시가지와는 달리 재래시장 풍경은 오히려 현대화된 느낌이었다. 우리 서울 재래시장에 조금도 손색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 산뜻하기까지 하다. 가게 앞을 지나칠 때마다 호객하는 모습은 몇 년 전 우리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열차에서 먹을 과일을 사들고 룩소르 역으로 향했다. 룩소르 역에 도착하니 짐꾼들이 달려든다. 짐을 역 승강장까지 날라 주겠다는 것이다. 가이드가 값을 흥정한 후 그들에게 짐을 나르게 했다. 체격이 좋은 만큼 힘도 좋아 무거운 물건도 번쩍번쩍 들어 나르는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룩소르 시가지 어느 식당 앞 고무나무가 서있는 풍경
룩소르 시가지 어느 식당 앞 고무나무가 서있는 풍경 ⓒ 이승철

@BRI@승강장에는 우리 일행 외에는 몇 명의 여행객이 보일 뿐, 여행객이 별로 많지 않다. 이 철도는 남부 아스완에서 카이로까지 운행하는 철도로 우리나라의 경부선에 해당하는 주요 간선 철도였지만 승객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가 타고 갈 열차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열차 한 대가 들어온다. 그러나 그 열차는 우리가 탈 열차가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이곳에서는 정시운행이란 거의 없습니다. 30분 이상만 연착하지 않으면 양호한 편이지요."

가이드 이 선생의 말을 듣고 모두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방금 도착한 열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난 후 열차가 출발하자 예의 짐꾼들은 철도 노반 위로 내려가 선로 위를 가로질러 오가며 짐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긴다. 그들이 선로에 내려가 작업을 해도 아무도 말리거나 뭐라 말하는 사람이 없다.

잠시 후 한 사람이 우리 가이드에게 찾아와 무슨 말인가를 나누고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그는 현지 경찰인데 우리에게 무슨 도와줄 일이 없겠느냐며 호의를 베풀고 가더라는 것이었다. 돈을 바란다거나 하는 다른 뜻은 없다고 하니 관광대국답게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친절한 모습이었다.

열차는 정시보다 10분쯤 늦게 도착했다. 이 정도면 양호하다며 가이드가 매우 좋아한다. 열차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다음날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외관이 여기저기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고 허술한 열차에 오르자 열차 승무원이 짐도 받아주고 친절하게 맞아 준다.

카이로 기자역 승강장 풍경
카이로 기자역 승강장 풍경 ⓒ 이승철
객실은 2인 1실의 2층 침대열차였다. 그러나 침대가 펼쳐져 있지 않은 의자인 상태다. 가이드는 승무원에게 객실당 1달러씩 주면 침대도 펼쳐주고 잘해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객실에 들자마자 곧 저녁식사가 나왔다. 객실 안에는 식탁 대용으로 쓸 수 있는 두꺼운 판자 조각이 비치되어 있었다.

식사는 생각보다 괜찮은 편이다. 저녁을 대충 먹고 앉아 기다리자 승무원이 찾아와 2층 침대를 펼쳐준다. 1달러를 주자 고맙다고 싱긋 웃고 나간다. 객실과 침대는 약간 비좁기는 했지만 하룻밤 잠자리로는 별 불편이 없을 것 같았다.

그 외에도 객실 내에는 작은 세면함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너무 작고 물이 잘 나오지 않아 겨우 양치질만 가능했다. 세수는 열차의 연결부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은 그런대로 쓸 만했다. 비데까지 설치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선로상태가 불량한 것 같았다. 열차가 몹시 흔들려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서 세수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일 아침 카이로에 도착하면 곧바로 시나이 반도를 향하여 새로운 사막여행이 시작되는데 카메라의 배터리가 모두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배터리를 충전해보려고 열차 내의 콘센트를 이용하려 했지만 맞지 않는다.

카이로 기자역사 전경
카이로 기자역사 전경 ⓒ 이승철

"이거, 큰일났네, 어떻게 하지?"

나뿐만이 아니었다. 여행의 필수품인 카메라에 배터리가 없으면 다음날의 사막여행에서는 한 장의 사진도 찍을 수 없는 것 아닌가. 할 수 없이 가이드에게 사정을 말했다. 그러자 가이드는 곧 승무원을 부른다. 내 경우처럼 배터리를 충전해야 할 사람이 다섯 명이나 되었다.

"안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그런데 열차승무원은 얼굴에 웃음까지 띠며 승무원실에서 모두 충전해주겠다고 한다.

"걱정하지 말랍니다. 자기가 책임지고 모두 충전해 주겠답니다. 이 친구 참 착하죠?"

"얏호!" 우리는 고마워서 모두 손뼉을 짝짝 쳤다. 승무원은 우리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표정으로 우리가 자신에게 고마워하는 줄 알고 덩달아 좋아한다. 친절한 승무원 덕택에 카메라 배터리 충전문제는 쉽게 해결이 된 것이다.

카이로 기자역까지 달리는 시간은 9시간으로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저 연착하지 않고 달려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어두운 밤 나일강 유역을 따라 북쪽으로 달리는 열차는 덜커덕덜커덕 흔들리며 거침없이 달렸다.

누군가 문을 두들기는 기척에 눈을 뜨니 어느새 먼동이 트는 새벽이다. 밝아오는 여명이 창밖 풍경을 어렴풋이 보여 주는가 했는데 곧 날이 밝았다. 창밖 풍경이 또렷해졌다. 밭 가운데 우뚝우뚝 솟아있는 대추야자나무의 풍경은 언제 보아도 멋지다. 밭 가운데 농수로가 뻗어있고 채소와 사탕수수가 자라는 모습도 보인다.

기자역 광장 풍경
기자역 광장 풍경 ⓒ 이승철

철로 주변의 풍경은 룩소르보다 한결 정돈된 모습이다. 카이로가 가까워질수록 농가와 주택들의 모습도 훨씬 좋은 모습이다. 마을 길에는 여전히 히잡을 둘러쓴 여인들과 조랑말을 타고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열차는 예정시간보다 약간 늦은 9시간 20분 만에 기자역에 도착했다.

역에는 우리 일행에게 많은 짐을 부탁하여 힘들게 했던 교민이 마중을 나와 짐을 인수해 감으로써 우리들의 다음 일정은 한결 홀가분할 수 있게 되었다. 카이로 외곽의 기자역은 마침 출근시간이어서인지 사람들도 많고 상당히 복잡한 풍경이었다.

대합실을 빠져나오자 바로 옆의 광장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이다. 광장 건너편에는 현대식 빌딩이 우뚝우뚝 서 있는데 광장 안쪽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은 그야말로 구구 각색이다. 제법 쓸 만한 차가 있는가 하면 오래전에 폐차를 했어야 할, 너무나 허름한 낡은 차도 버젓이 택시영업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쌓여 있는 쓰레기는 이 나라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매우 흔한 모습이었는데 카이로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잠시 후 이미 여행 가방을 미리 실어 놓았던, 우리를 태우고 시나이반도 사막지대를 돌아볼 버스에 올랐다.

기자역 광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
기자역 광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 ⓒ 이승철

버스에는 미남형에 거구인 현지인 가이드 청년이 동승했다. 그런데 이 청년의 행동이 여행하는 동안 우리를 때때로 웃기는 역할로 한몫 단단히 하게 될 줄이야.

체구만큼이나 힘도 좋아 보이는 이 가이드청년은 사람은 좋아 보였으나 일처리가 매끄럽지 못하고 어딘가 엉성하여 운전기사와도 자주 마찰을 빚었다.

버스는 우리 일행과 엉성한 현지인 가이드, 얼빵(여행사 인솔자가 지은 별명)을 싣고 시나이반도를 향하여 카이로 시내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카이로 시내 교통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버스가 출발한 잠시 후 어느 3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자동차들이 서로 엉켜 움직일 줄 모른다.

커다란 트럭이 좁은 길을 돌아가다가 도로 옆의 작은 구조물을 들이받고 그대로 멈춰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나와서 정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뒤엉켜 있는 자동차들 사이로 길을 마구 건너다니는 사람들까지. 도로는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그렇게 10여분 동안 지체한 후에야 가까스로 길이 얼렸다.

수에즈 운하로 가는 길
수에즈 운하로 가는 길 ⓒ 이승철

카이로 도심을 흐르는 나일강의 다리를 건너고, 시내를 벗어나자 버스는 금방 사막지대로 접어들었다.

"우리 일정에는 없지만 가는 길에 잠깐 수에즈 운하에 들러 가겠습니다. 일반차량은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지만 운전사가 길을 잘못 들어 들르게 되는 거야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가이드의 말에는 의도된 숨은 뜻이 들어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수에즈 운하를 향하여 황량한 사막 길을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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