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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반도로 가는 길.
시나이반도로 가는 길. ⓒ 이승철
"저기 좀 봐요! 사막에 마을도 있고 커다란 나무들도 있네."
"저건 마을 같기도 하고 옛날의 성벽 같기도 한데."


안개가 자욱한 카이로 시내를 벗어나 수에즈운하를 향하여 달리는 버스는 곧게 뻗은 도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그런데 시야에 들어오는 사막의 풍경은 책과 영화를 보고 상상했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BRI@일행의 말처럼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속에는 곳곳에 크고 작은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우리네 마을 하고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건물들이 대부분 2∼3층의 회색 콘크리트 집으로 똑같이 지어진 삭막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어느 마을은 주변을 온통 상당히 높은 콘크리트 블록 담장으로 둘러쌓아 놓아서 마치 옛날의 성벽처럼 보이는 마을도 있었다.

마을입구에는 어김없이 푸른 나무들을 심어 놓았다. 가로수 형태도 있고 정원 형태도 보인다. 오아시스가 아니라 인공으로 키우는 나무와 숲이었다. 그렇게 심겨져 있는 나무들과 마을의 생명선인 젖줄은 땅속에 매설한 수도관이었다.

도로변으로는 수도관을 매설한 흔적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나일강의 풍부한 물을 끌어올려 사막을 개발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안개가 자욱한 나일강과 카이로 시가지 풍경.
안개가 자욱한 나일강과 카이로 시가지 풍경. ⓒ 이승철
저 길로 곧장 가면 수에즈 운하.
저 길로 곧장 가면 수에즈 운하. ⓒ 이승철
"왼쪽으로 보이는 저 탑처럼 생긴 것 좀 보십시오, 저것은 비둘기 집입니다."

조금 더 달리다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달리는 창밖으로 내다본 비둘기 집은 우리 한강둔치에 세워져 있는 비둘기 집보다도 더 크고 멋진 모습이다. 그것도 마을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저 비둘기 집, 사람들이 사는 집보다도 더 좋은데요."

정말 룩소르와 카이로 시가지의 빈민촌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깨끗하고 산뜻해 보인다.

"저렇게 집을 잘 지어 주고 기르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비둘기를 기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말에 모두 궁금한 표정을 짓는다.

"이곳 사람들은 비둘기 요리를 우리나라의 뱀장어나 보신탕만큼이나 보양식품으로 치지요."

일행들은 모두들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비둘기 고기가 보양식품이라고요? 가이드 선생도 맛보셨습니까?"

우리 일행들이 놀라워하자 가이드는 한 술 더 뜬다.

"전 비둘기 고기를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정말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최고의 강정식품으로 여기는 것이 비둘기 고기랍니다."
"그럼, 비둘기고기가 이곳에선 비아그라인 셈이네. 우하하하. 그래서 룩소르 관광 중에 그 흔한 비둘기를 볼 수 없었구나."


그때 가이드가 옆자리의 현지인 가이드 '얼빵'을 툭 건드리더니 현지어로 뭐라고 말하자, 이 얼빵 친구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옳다는 말인 것 같았다. 모두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

최고의 강정식품이 비둘기 고기. 그래서 비둘기 집을 잘 지어주고 먹이를 공급하며 정성스럽게 기르는 새가 비둘기라는 것이었다. 하긴 나라마다 음식이나 기호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보양식품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사막의 도로를 따라 매설한 수도관 매설 흔적과 표시.
사막의 도로를 따라 매설한 수도관 매설 흔적과 표시. ⓒ 이승철
휴게소 옆 어느 집의 정원과 꽃밭.
휴게소 옆 어느 집의 정원과 꽃밭. ⓒ 이승철
그렇게 한참을 달려가노라니 여성들 사이에서 어디 휴게소에 좀 들렀다 가자고 한다. 그러나 사막을 달리는 도로에는 어느 곳에도 휴게소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잠깐만 참으십시오. 곧 휴게소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곳은 지하수가 흐르는 곳이어서 농사도 짓고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사막과는 다른 곳입니다."

정말 잠시 후 창밖의 풍경이 달라졌다. 길 좌우에 푸른 농장들이 나타난 것이다. 지표면 가까이 흐르는 지하수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 곳이라고 한다.

휴게소는 지하수가 흐르는 농장지역이 거의 끝나는 지점이며 수에즈운하 입구 검문소가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 가겠습니다. 그런데 이 휴게소에서는 화장실 사용요금을 받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이곳에서 음료수 한 개씩이라도 꼭 사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욕을 먹지 않거든요, 하하하."

지금까지 이집트 여행 중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중화장실은 모두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었는데 이곳은 매우 특별한 곳이었던 셈이다.

"알았습니다. 그럼 이곳에서 모두에게 음료수 한 개씩은 내가 쏘겠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기분이 매우 좋은지 음료수 20여 개를 샀다. 음료수는 대개 한 개에 1달러 정도였다.

음료수를 마시고 화장실이 들렀다 나오자 가게 입구에서 기념품을 팔고 있던 청년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꼬레아! 빨리빠리 오세요. 싸게 팝니다. 골라! 골라!"

우리 일행들은 또 한 번 뒤집어 졌다. 아니 이집트 사막을 건넌 수에즈 운하 입구의 한 휴게소에서 우리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에서나 보고 들을 수 있는 구성진 목소리의 "골라! 골라!"를 듣다니. 그런데 이 청년은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몸짓에 손뼉까지 치면서 "골라! 골라!"를 외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남대문시장 노점상의 그것이었다.

휴게소 기념품 가게의 "골라! 골라!"를 외치는 청년.
휴게소 기념품 가게의 "골라! 골라!"를 외치는 청년. ⓒ 이승철
수에즈운하 해저 터널 입구의 검문소.
수에즈운하 해저 터널 입구의 검문소. ⓒ 이승철
"이곳에 와보니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적이 되었구먼, 이런 곳에서 '골라! 골라!'를 들을 수도 있고."

휴게소를 출발한 버스는 곧 수에즈운하 입구의 검문소를 통과했다. 시나이 반도로 연결된 도로는 수에즈운하 밑을 통과하는 해저터널이었다.

수에즈 운하를 밑으로 통과한 버스는 잠시 후 오른편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 버스는 지금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들어가서는 안 되는 수에즈운하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조금 달리자 정말 저만큼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화물선이 천천히 운하를 통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보이는 저 배가 지금 운하를 통과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수에즈운하는 길이가 162.5킬로미터로 지금은 이집트가 운영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운영했었지요. 50여 년 전인 1956년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었던 압둘 나세르가 국유화를 선언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이집트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세르의 이 선언은 결코 운하의 운영권에 국한한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나세르의 국유화 발표 후 1960년대 모로코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아랍국들이 범 아랍권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세르 대통령은 아랍의 영웅으로 급부상하며 아랍의 맹주로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세르 대통령이 아스완댐 건설의 재원 마련 등을 이유로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이 운하를 통해 석유를 지중해와 유럽으로 수송하던 영국과 프랑스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이집트의 지원을 받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공격을 뿌리 뽑으려던 이스라엘이 영국과 프랑스와 합류했다.

당시의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은 "우리는 사악한 돼지가 우리의 해상교통망을 가로막게 방치할 수는 없다"고 거친 반응을 보였다. 프랑스로서도 당시 알제리의 독립운동을 암암리에 지원하고 있던 나세르가 못마땅했는데 이스라엘에도 팔레스타인 게릴라를 돕고 있던 나세르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사막의 하얀산과 검은 산.
사막의 하얀산과 검은 산. ⓒ 이승철
컨테이너를 잔뜩 실은 화물선이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모습.
컨테이너를 잔뜩 실은 화물선이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모습. ⓒ 이승철
이들 3국은 그해 10월 29일 무력으로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런 군사적 성공에도 아랍권의 여론 악화를 의식한 미국의 압력으로 이들 3국은 같은 해 12월까지 모두 이집트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아랍권에선 아랍민족주의와 사회 정의, 그리고 반 이스라엘 분위기가 고조됐습니다. 대영제국은 수에즈운하 사건을 계기로 제국의 종언(終焉)을 고한 셈이 되었고, 그 이후 국제 외교무대에서 새로운 강자가 된 미국의 편에 서는 정책을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콧대 높던 드골이 이끌고 있던 프랑스는 오히려 반대로 미국주도의 나토군 체제에서 철수하고, 독일과 함께 독자적인 유럽 정책을 펴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버스는 수에즈 운하가 바로 코앞에 보이는 곳에 당도했다.

버스를 세운 군인들이 앞으로 다가왔다. 모두 무장을 하고 있었다. 수에즈운하는 이집트의 1급 보안시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전사는 각본대로 길을 잘못 들었다고 변명하는 모양이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절대 사진을 찍지 말라고 당부한다.

저 움푹파인 곳의 파란 물이 수에즈운하.
저 움푹파인 곳의 파란 물이 수에즈운하. ⓒ 이승철
그들에게 오해를 받으면 우리들의 여행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좋은 자료가 될 현장사진은 한 장도 찍을 수가 없었다. 군인들의 지시대로 방향을 돌린 우리들의 여행버스는 다시 시나이사막을 향하여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저만큼 예의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화물선의 갑판 위에 빌딩처럼 쌓인 컨테이너가 모래 지평선 위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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