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반적으로 낙산(駱山)은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방면에서 올라가는 길이 잘 알려져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로에서 공원으로 조성된 이곳을 찾는 발걸음이 많다. 젊음의 거리, 화려한 대학로의 불빛과 서울 도심의 높은 빌딩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낙산은 젊은이들의 한적한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다.

반면 종로구 숭인동 방면에서 올라오다 보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낙산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 종로 뉴타운으로 지정되어 한참 아파트공사가 진행 중인 이곳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적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지하철 6호선 '창신역'이 있어 교통도 편리한 편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지인들이 찾아가기엔 쉽지 않은 곳이었다.

낙산에서 만나는 단종과 정순왕후의 흔적

@BRI@지하철역을 기준으로 숭인동 방면에서 낙산공원 쪽으로 언덕길을 올라가다보면 아파트 공사현장 가운데 조선조 6대 왕인 단종과 그의 왕비 정순왕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550여년 전 세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이 곳에선, 옛 선조들의 검소하고 청빈한 삶의 옛터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 산 3번지에는 현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가 있다. 이곳은 정업원(淨業院)이 있던 곳으로, 단종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宋)씨(1440~1521)가 팔십 평생 단종의 명복을 빌면서 살았던 곳이다.

골조공사가 한참 진행 중인 아파트공사장 한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보기에도 위태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선조 영조 47년(1771년)때 이곳에 송씨를 추모하기 위하여 정업원이 있었던 터란 뜻의 '정업원구기'라고 쓴 비석을 세웠다. 현판의 글씨체는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 뉴타운 아파트공사현장 바로 옆에 위치한 '정업원구기' 터
ⓒ 유태웅
ⓒ 유태웅
▲ 단종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宋)씨가 평생을 단종의 명복을 빌면서 살았던 곳.
ⓒ 유태웅
▲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는 비각 현판
ⓒ 유태웅
역사에 의하면, 동대문 밖에서 단종과 눈물의 이별을 한 송씨는 강원도 영월 쪽을 바라볼 수 있는 청룡사 부근에서 머리를 자르고 세 시녀와 정업원에서 지냈다. 하루아침에 고귀한 신분에서 쫓겨난 비운의 왕비는 궁궐에서 따라 나온 세 명의 시녀가 구걸해 온 밥으로 끼니를 연명할 정도였다고 한다.

옷에 자주 염색을 들여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송씨의 소식에 세조는 정업원 근처에 영빈정동(英嬪貞洞)이라는 집을 지어주었으나, 송씨는 끝내 그 집에 들어가지 않고 '초가삼간'으로 지어진 정업원에 머물며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숭인동 방면에서 낙산공원으로 난 2차선 도로를 오르다보면 왼편 경사진 언덕 아래에 작은 초가집 한 채와 바위가에 작은 샘터가 있다. 이것은 '자주동샘(紫朱洞泉)'으로 단종비 송씨가 비단을 빨면 자주색 물감이 들였다는 전설이 어려 있는 샘이다. 지금은 샘이 말라버린 상태이지만, 검게 그을린 세월의 때가 묻은 큰 바위만이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수광과 '비우당'

▲ 단종비 송씨의 애잔한 전설이 서려있는 '자주동샘'
ⓒ 유태웅
▲ <지봉선생 비우당 옛 터> 비석
ⓒ 유태웅
이 '자주동샘' 바로 옆에는 새롭게 지어놓은 초가삼간이 한 채 있다. 그 옆에는 '지봉선생 비우당 옛터'라는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실학자인 지봉(芝峰) 이수광(1563~1628)이 그의 저서 '지봉유설'을 지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비석에 새겨진 이수광이 지었다는 '비우당기(庇雨堂記)'를 보면, 이수광의 외가 5대 할아버지인 청백리 정승, 유관(柳寬)이 이곳에 초가삼간을 짓고 살았는데, 비가 오면 우산으로 빗물을 피하고 살았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이후에 이수광의 아버지가 이 집을 조금 넓혔는데 집이 소박하다고 누가 말하면 '우산에 비하여 너무 사치스럽다'고 대답하여 듣는 이들이 감복했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 때 없어진 이 집터에 이수광이 조그만 집을 짓고 '비우당(庇雨堂)'이라고 하였다.

'비우당'이라는 뜻은 비바람을 겨우 막겠다는 뜻이다. 초가삼간에 우산을 들고 살아 온 조상의 유풍(遺風)을 이어 간다는 뜻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근검 청빈한 삶을 살았던 옛 선조의 기상을 새삼스럽게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 비우당 터와 자주동샘 터에서 올려다 본 아파트단지
ⓒ 유태웅
현재는 당시 초가삼간을 새롭게 복원해 두었는데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초가삼간'의 정취나 투박함은 찾기가 힘들다. 경사진 언덕아래에 조성된 작은 공원 내에 마련된 이 공간 주위로는 고층아파트들이 둘러싸여 있다.

아쉽게도 비우당 터와 자주동샘은 낙산공원으로 가는 큰 길가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내 경우엔 무심결에 호기심 삼아 언덕 아래로 보이던 한 암자를 찾아 내려갔다가 발견했다. '출중한' 볼거리는 없었지만, 작은 감흥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이다.

뉴타운으로 지정되고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찾기 힘든 언덕아래에 자리한 이곳. 마치 초가삼간 한 채 지어놓고 비가 오면 우산을 받쳐 들고 자족하며 살아갔던 옛 선조들의 청빈했던 주거공간과 기상이 점차 잊혀져가는, 현 세태를 반영해 주는 듯 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