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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씨는 대학졸업 이후 <시사저널> 통일국제팀 기자와 <동아일보> 신동아팀 기자, <월간중앙> 기자를 거쳐 현재 뉴라이트의 사상이론지인 <시대정신>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또 그는 지난해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 동아시아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지냈다. <오마이뉴스>는 보수대해부 기획의 일환으로 '뉴라이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보수'를 주제로 최 편집장에게 기고를 부탁했으며 이에 그가 글을 보내와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 지난 2003년 11월 23일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자유주의연대 창립식 및 기념토론회'.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언론매체인 <오마이뉴스>의 청탁을 받고 망설였다. 뉴라이트로서 한국사회의 보수를 비판하라고 하는데, 필자가 과연 뉴라이트라고 할 자격이 있는가? 또 뉴라이트가 한국의 기존 보수세력에게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소설가들이 처녀작을 쓸 때는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자기 이야기가 가장 진솔하고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도 내가 왜 뉴라이트가 되었는가부터 시작한다.

나는 어떻게 학생운동가에서 뉴라이트로 전향했나?

88학번인 필자는 대학시절 민중민주(PD) 운동권이었다. 구속되어 감옥에 간 일은 없었지만 당시에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한국사회를 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 만큼 나름대로 신념에 찬 학생운동 활동가였다. 1995년 대학을 졸업한 필자는 '이상'보다는 '현실'을 선택하고 언론사에 입사해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필자는 몸은 제도언론의 기자였지만 머리는 아직까지 학생운동 활동가였다. 그러니 모든 사회현상을 볼 때 학생운동권 시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쓰는 기사도 편향적이었고 회사의 선배기자들과 자주 충돌했다.

"제발 운동권 물 좀 빼라. 아직도 대학생인 줄 알고 있냐?"

지금은 청와대 비서관이 된 한 선배의 그 당시 충고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민중민주혁명 사상을 갖고 있던 필자가 '우경화'하기 시작한 것은 한반도 문제를 취재하면서부터다. 한반도 이슈의 취재현장은 서울이 아니라 압록강과 두만강 등 조중(朝中) 국경 지역, 북만주, 극동러시아, 사할린, 북경·동경·워싱턴 등이었다.

필자는 동료기자들의 질투를 받을 만큼 국제현장을 발로 뛰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현장에서 만난 조선족과 고려인, 재일동포, 재미동포 등 '코리안 디아스포라'(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 공동체)들은 어떤 간절한 '주문'을 필자에게 했다. 그것은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다시는 조상들과 자신들이 당한 슬픔을 되풀이하지 않게 해달라는 염원이었다.

무엇보다 만주를 정처 없이 떠도는 탈북자를 보면서 필자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라가 무너지면 어린이와 여성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다고 했다. 성노예로 팔려다니는 북한 여성들과 굶어죽는 북한 어린이들은 견딜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만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공무원들은 대부분 이런 현실을 외면했다. 햇볕정책이 시작된 이래 북한의 인권과 탈북자들은 정부에게는 달갑지 않은 짐이었다.

필자의 우경화에 속도를 붙인 것은 한국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박정희의 흔적이었다. 박정희의 나쁜 점만 텍스트를 통해서 머리에 넣고 있던 필자는 '현장'에서 박정희의 공(功)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모든 현장에서 확인되는 박정희의 업적과 그 반도 못 따라가는 이후 정권들의 성과.

그렇게 필자는 현장에서 눈으로 확인하며 가슴으로 느끼며 우파가 되었다. 강의실에서 텍스트를 통해서 어느 순간 바뀐 것이 아니라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취재 현장에서 서서히 우경화한 것이다. 이런 차에 2004년 뉴라이트 그룹을 만났다. 이는 대단한 행운이었다. 뜻과 행동을 같이할 수 있는 동지를 만난 기쁨을 무엇에 비길 수 있겠는가.


▲ 한나라당의 정치적 도덕적 쇄신을 추진하기 위한 `참정치운동본부`가 지난해 11월 2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서경석 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인명진 당 윤리위원장등이 나란히 출범식장에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레판토 해전의 베네치아와 한나라당의 차이

보수세력을 비판하자면 먼저 대표적인 보수정당 한나라당을 과녁 위에 올려야 한다. 한나라당 하면 가장 먼저 2002년 대선을 떠들썩하게 만든 병역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다. 세월이 지났다지만 여전히 한나라당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거리가 먼 것이다. 일본의 보수정당이나 유럽의 귀족, 미국의 보수세력이 가지고 있는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을 한국의 한나라당 인사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세계사를 읽다보면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일어서는 나라와 민족은 반드시 '싹수'가 있었다. BC 500년께 이탈리아 반도 중부 조그마한 언덕에서 일어난 로마가 그렇고, 14∼15세기 중세 지중해 상권을 장악하고 전성기를 누린 해상무역공화국 베네치아가 그랬다. 로마와 베네치아가 흥한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공통 징표는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었다. 1571년 10월7일 일어난 레판토 해전을 보면 이런 정신을 잘 알 수 있다.

지중해 제해권을 두고 투르크 세력과 기독교 세력이 일대 결전을 벌인 이 해전에서 기독교 함대는 비록 승리했지만 희생도 컸다. 기독교 함대 전사자가 무려 7000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베네치아 공화국 참전자가 가장 많았다. 기록 문화에 투철했던 중세의 베네치아는 당시 전사자를 귀족과 평민 등 신분별로 나누어 단(單) 단위까지 기록해 놓았는데, 문제는 귀족 전사자가 너무 많았다는 사실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전사자 처리방식. 베네치아 당국은 평민 전사자를 국립묘지격인 국가유공자 묘역에 묻었는데, 귀족 전사자는 전사자 명단에만 올리고 이 묘역에 수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귀족들은 따로 좋은 개인 묘지를 마련할 재력이 있기 때문에 굳이 전사자 묘역에 수용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당국이 귀족전사자 유족들에게 베푼 것은 '명예'였다. 베네치아의 명문가들은 레판토 해전 전사자를 몇 명 냈다는 것을 가문의 최고 명예로 삼았다.

이런 사례는 서양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삼국통일 전쟁 당시 화랑 관창을 아들로 둔 신라의 품일 장군이나 전쟁에서 패한 아들을 용서하지 않은 김유신 장군에게도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있었다. 아들을 한국전쟁에 내보내 전사하게 만든 중국의 모택동도 마찬가지다.

이런 전통에서 비추어보면 한국의 보수정당 한나라당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이들은 명백하게 불법행위를 저질러 소속 의원이 사법처리 대상이 되었는데도 방탄 국회를 연 사례가 있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데도 석방결의안을 내 감옥에서 해당 의원을 빼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아직도 특권을 즐길 뿐 조국과 공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지 않고 '짐'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한나라당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으로 가면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 삼국통일을 하기 전 신라의 서라벌에 안주해 있던 진골, 성골 계급 같다고 할까? 당시의 진골, 성골들은 삼국통일이라는 대업보다는 서라벌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편안하게 먹고 마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의 초석을 닦은 태종무열왕 김춘추도 처음에는 서라벌의 진골 오렌지였다.

현재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에 지역구를 가지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을 들여다보면 이들 중 다수가 정당의 지상과제인 정권획득보다는 지역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최우선 고려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행태는 지난 2006년 5월31일 치러진 지방 선거 공천과정이나 지역구 의원들이 입김을 넣을 수 있는 모든 정치 일정에서 엿보인다. 즉 이들에게는 당장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물이나 자신의 지역 영향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물이 절실한 것이다. 이들은 정치적 소신이나 인물 됨됨이보다는 자신에게만 머리를 조아리면 만사형통이다.

한나라당은 또 보수정당이라고는 하지만 뚜렷한 정치이념이 없다. 노무현 정부가 4대 개혁입법이라고 내세운 국보법 폐지, 과거사 진상규명법, 사립학교법, 언론개혁법을 놓고 벌어진 국회 내 공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런 법안 처리 과정에서 단기간에 국민의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보수정당으로서 양보할 수 없는 선들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오락가락했다. 이런 한나라당이 만약 집권한다면 또 하나의 이익집단이 들어서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 '뉴라이트전국연합 창립 1주년 기념대회 및 전국대의원 총회'가 지난해 11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한나라당 대표와 유력 대권후보를 비롯해서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왜 기업들은 좌파 시민단체나 언론기관에 돈을 바치나?

정당은 그렇다 하고 체질상 보수세력이 될 수밖에 없는 한국의 기업이나 경제단체들은 어떤가? 미국이 지금처럼 보수주의와 우파의 나라가 된 것은 바로 미국 기업과 경제단체들의 투자 덕분이었다. 이 기업과 경제단체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굳건히 지켜낼 가치·이념 집단에 진작부터 투자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우파의 나라 미국을 이끌고 있는 헤리티지 재단이나, AEI(미국기업연구소) 등이다.

그런데 한국에 시장경제·보수 이념에 투자하는 단체가 있는가? 일부 기업들이 돈을 쓰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정권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이들은 오히려 좌파시민단체나 좌파언론기관에 돈을 갖다 준다. 그래야만 현 정권에게 잘 보이기 때문이다.

또 좌파단체에 돈을 갖다 주어야만 이들이 자신을 물어뜯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계산하는 듯하다. 아마 이들은 한국에서 좌파정권이 계속 집권하고 좌파단체들의 영향력이 더욱 거세져 기업 활동을 하기 힘든 상황이 되면 공장을 외국으로 옮기고 자신과 가족들은 외국으로 이민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보수 시민단체들을 보자. 필자가 보기에 이들은 아직도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시대적 변화를 읽지 못하고 아직도 냉전적 세계 인식을 고수하고 있다.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일본이 보통국가로 다시 일어선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미일 군사동맹의 강화에 따라 한미동맹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들은 젊은 세대들의 인식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읽어내는 데 여전히 둔감하며 결국 미래 세대들에게서 소외되고 있다.

이런 보수단체 등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거나 우리 사회에서 보수 원로로 대접받고 있는 분들은 또 어떤가? 이들은 방송과 신문에 등장해서 그럴싸한 말씀과 칼럼은 곧잘 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니 정권의 힘이 빠지는 정권 말기에는 강력하게 정권을 비판한다. 김대중 정부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는 전혀 색깔이 다른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에서 자리 제의가 오면 덥석 받아 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감투를 쓰고 있는 동안에는 충실한 정권의 나팔수가 된다. 그러나 일단 정권에서 물러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기가 몸담았던 정권을 공격한다. 자신의 전력을 세탁하고 다음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더욱 더 가열차게 물어뜯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인사들을 두고 "그 사람만큼은 그런 소리 하면 안되지 않느냐"고 했던 말이 일리있게 들린다.

보수세력의 원로들이 보이는 또 다른 특징은 절대로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미 30대와 40대 당시 그것이 시민단체였든, 공직이었든 간에 누릴 만큼 누렸다. 이제는 여러 가지 자리를 떠오르는 후배들에게 양보할 법도 한데 여전히 자리만 펴지면 자신들이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지난 99년 전향 NL주사파들을 주축으로 출범했다. 사진은 지난 2004년 창립 5주년 행사 장면.
ⓒ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홈페이지

뉴라이트가 퍼져야 한국의 보수가 산다

열거하려고 하면 끝도 없는 한국 보수세력의 문제점들 때문에 2004년 뉴라이트 운동이 탄생했다. 뉴라이트 운동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출신성분은 집권 386 세력과 같으나, 이제는 프로그램이 완전히 달라졌다. 뉴라이트는 한국이 장래에 나아갈 방향을 '선진화'라고 규정짓고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뉴라이트라고 해서 다 같은 뉴라이트가 아니다. 현재 뉴라이트 운동에는 무늬만 뉴라이트인 세력도 있다. 사상의 공유 없이 뉴라이트라는 이름이 뜨니까 부나방처럼 모여든 세력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체육관으로 몰려다니며 구국을 외치며 세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사상적이고 이론적인 틀이 부족하다. 냉전시절, 머리띠를 두르고 반공대회에 나섰던 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이들도 많다.

이제 활력을 잃은 한국의 보수는 되살아나야 한다. 뉴라이트는 한국의 보수세력에게 분명히 새로운 약이 될 것이다. 한국의 보수세력이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우선 두뇌, 즉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사상을 갖추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지 아래 개방적 세계관, 경쟁력 있는 실무능력,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 대한 진취적인 상상력을 겸비해야 한다.

그리고 봉사와 헌신, 자기 희생 등 전세계의 보수주의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본 덕목을 회복해야 한다. 새롭게 등장한 뉴라이트 세력들은 이런 미덕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온실에서 곱게 자란 2세가 아니다. 바람 부는 들판에서 자유주의라는 사상 깃발을 들고 싸우는 투사들이다. 아직도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는 원로들과 온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2세 보수주의자들과는 습성이 다르다.

이런 뉴라이트를 감싸안고 한국의 보수세력은 거듭나야 한다. 이제 한국의 보수 세력은 과거의 좌파처럼 헌신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돈을 받지 않고 밤새 글도 쓰고 강연도 다니고, 집회에 나가서 발언도 해야 한다. 대중에게 당장 돌을 맞더라도 국리민복(國利民福)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과감히 나서는 패기를 되찾아야 한다.

보수세력이 이렇게 혁신하면 수구적인 좌파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진보세력들도 거듭 날 것이다. 그 길만이 다시는 20세기에 우리 민족이 당한 고난을 되풀이하지 않는 길이다. 보수세력의 혁신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노블레스#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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