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대통령이 될 거예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어린 시절 한번쯤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외국에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부의 수반이 되는, 국가 최고의 통치권자인 '대통령'은 최대한 큰 꿈과 희망을 품어야 하는 어린이들에게 가장 적당한 장래희망 모델이 된다.

당시 대통령이면 무조건 훌륭한 사람이라 강요받았기에 난 그 시절의 전두환 대통령이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태우씨가 정권을 잡은 1988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자기소개 시간에 "노태우 대통령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아직까지 대통령은 많은 어린이를 비롯한 국민들의 꿈이자 희망이다.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는 그 꿈이 이루어지는 '꿈의 궁전'이나 다름없다. 그런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만나는 '꿈'은 이루어지고 말았다.

27일 오후 나를 포함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2명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인터넷신문협회(인신협, 회장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주최한 '취임4주년, 노무현 대통령과의 대화'에 참관인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배고픈 대학생들, 청와대는 '칼국수'가 별미?

▲ 영빈관 내부의 모습.
ⓒ 차예지

기자회견 시작 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앞선 집합시간 덕에 약간 투덜대며 모임장소로 향했다. 경복궁 동편 주차장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청와대로 향했다. 확실히 청와대 버스인지라 실내 공간이 널찍하다. 무릎을 활짝 펴도 될 만큼 쾌적한 우등 버스였다.

뒷자리에 자리를 잡은 대학생 시민 기자들과 청와대 방문에 대한 설렘의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모두들 첫 방문인지라 많이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 들뜬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이다. 어중간한 모임 시간 덕에 모두들 공복상태. 기자회견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꼬로록'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먹는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청와대 가면 뭐 먹을 것 안 주나?"
"다과를 마련 해 놓지 않았을까?"
"청와대 갔는데 칼국수 먹겠죠."


순간 정적이 흘렀다. 칼국수? 문득 청와대 이미지에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청와대가 '칼국수'이미지가 되었을까?

"으이구~ 지금이 김영삼 시절이냐. 그건 문민정부 때 먹던 거지."

똑똑한 한 시민기자의 명쾌한 발언이 우리를 깨우쳤다. 그렇다. 칼국수는 그 시절에나 먹던 음식이다. 그 후 우리는 '그럼 노무현 대통령은 무슨 음식을 주로 먹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잠깐 벌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일들이 모두 가능했던 이유는 배가 '심각하게' 고팠기 때문이다.

새삼 칼국수를 청와대의 대표음식으로 전국민에게 각인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의 능력(?)을 되새길 수 있었다. 아마 김 전 대통령의 얼마 안되는 업적이 아닐까?

"화장실에 정체불명의 백색 가루가 있어요"

▲ 청와대 영빈관 화장실 내부의 모습.
ⓒ 김귀현

버스를 타고 회견 장소인 청와대 영빈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며 사진기와 가방을 어찌 해야 할 지 고민 했다. 분명 삼엄하게 경비를 할 테고, 가방에 나도 모르는 '불온선전물'이라도 있으면 '큰일이 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앞섰다. 또한 지난 동방신기 콘서트 때처럼 카메라와 휴대폰을 빼앗았다가, 나중에 나올 때 혼란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결국 마음 편히 가방과 카메라를 모두 버스에 놓고 내렸다. 영빈관에 들어서자마자 멋진 샹들리에와 레드카펫이 우리를 반겼다. 비행기 탈 때나 해 보았던 검색대를 통과하고 회견장에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았고, 생방송을 위한 '비움의 의식'을 위해 동행했던 시민기자들은 청와대 화장실을 방문했다. 나는 자리를 맡아 주느라 다음 기회로 미뤘다.

화장실에 다녀온 차예지(여) 시민기자가 갑자기 나에게 의미심장하게 한 마디를 건냈다.

"확실히 청와대 화장실이라 뭐가 다르긴 다른 것 같아요. 금색으로 치장한 용기에 백색 가루가 담겨있더라고요. 그것도 두 개 씩이나... 근데 그게 무슨 용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체불명의 백색가루? 솔깃했다. '역시 청와대라 뭐가 다르긴 다르구나'며 감탄했다. '화장실의 냄새를 흡수 할 수 있는 특수 화학 물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경이로운 청와대 화장실 탐방을 시작했다.

▲ 고운 흰색 가루담긴 있는 금색 재떨이.
ⓒ 김귀현
들어가자마자 도금인지 금색페인트 칠을 한 것인지 모를 금색 마감처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그 의문의 백색가루의 정체를 한 눈에 확인 할 수 있었다.

백색가루 주변에는 몇몇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재털이'였다. 여자화장실에서는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는지 차예지 시민기자는 이것이 무슨 용도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래도 '금색 재떨이라니', 역시 청와대였다.

아쉬움도 남았다. 지금 대부분의 건물 내에서는 강력히 금연 정책을 시행중이다. 지하철 화장실에서 흡연 할 경우 3만원의 벌금도 부과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관저인 청와대 화장실에 재떨이라니, 그것도 두 개씩이나.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이 후, 탐방을 더 세밀히 진행했다. 예상대로 양변기에는 모두 비데가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비치된 비누는 비교적 싼 가격의 인삼비누였고, 화장품은 대중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독한 남성의 향기가 느껴지는 싸구려 로션이 비치되어 있었다. 화려한 청와대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졸병 출신 대통령, 개그우먼에게 감동 받다

드디어 기자회견이 시작 되었다. 내 눈앞에, 그것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 대통령이 등장했다. 난 믿기지가 않았다. 대통령이 등장했을 때 까지도 난 '이미테이션 대통령'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품었다. 대통령이 입을 열고 낯익은 목소리를 생(live)으로 들었을 때 비로소 난 '진짜 노무현 대통령이 맞구나'라고 느낄 정도였다.

처음부터 노 대통령은 지난 신년 특별 연설에서의 비난을 의식 한 듯 "말을 가볍고 우습게 하면 안 되겠다"며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었지만, 대통령은 그러면 안 되겠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는 딱딱하게 얘기할 것"임을 밝혔다.

기자들의 질의응답이 오가고, 지지율 문제가 나오자 노 대통령은 "국민들과 소통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 후 "내가 군대에서 졸병 출신이라, 말실수를 자주 하는 것 같다. 앞으로 최대한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회를 보던 개그우먼 김미화씨가 "국민들이 대통령을 '의기소침한 대통령'으로 본다. 남은 기간 '열정적인 대통령'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격려하자. 회견장의 참관자들이 모두 박수를 보냈고, 노 대통령을 살짝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느 기자회견장에서 볼 수 없는 감동의 시간이었다. 대개의 기자회견이라면 주로 날카로운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차가운 분위기로 진행이 되지만, 사회자 김씨의 용기 있는 격려로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도어, 보기 드문 기자회견장의 풍경이 연출되었다.

5공 청문회, 그 시절 그 모습 살짝 드러낸 노 대통령

경제부문 질의응답을 하던 중, 오랜만에 노 대통령의 화끈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FTA 협상으로 양극화가 심화될 것" 이라는 기자의 말에 노 대통령은 "농업 분야의 경우 피해를 받는 만큼 국가가 책임져 줄 것이다. 농업 말고 어떤 분야가 문제인가"라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이때 기자가 "유통업"이라고 하자 노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유통업은 이미 개방 되었고, 협상 분야에 포함되지도 않았다"며 반박했다. 그리고 계속 된 질문으로 기자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이 광경은 마치 지난 5공 청문회 시절의 노 대통령 모습이 생각났다. 1988년 당시 초선 의원이었던, 노 대통령은 논리적인 질문과 따끔한 반박으로 참신한 인상을 주었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불쾌하다는 듯이 계속 대답을 회피하자 자신의 명패를 집어 던지며 그 장소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이 날 기자에 대해 반박하고, 논리적으로 따지려는 노 대통령의 모습은 청문회 때와 꼭 같았다. 또 다시 명패를 집어던지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되었다. 경제 분야의 질문을 한 기자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질문을 했던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조는 참관자, 빠져나간 사회자, 청와대 많이 변했다

2시간 30분여의 기자회견이 끝났다. 예정된 시간 보다 1시간이 더 연장되었다. 노 대통령이 이 날만은 욕심을 부렸다. 물론 대통령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좋았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앉아 있는 것은 '고난'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힘들었다.

물론 위에도 언급 되었던 허기짐은 이미 인간의 한계에 도전 중이었다. 참관자 중에 간간히 조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예상치 못한 노 대통령의 욕심 덕에, 사회자인 김미화씨는 생방송 관계로 대통령이 말을 하는 도중 회견장을 빠져나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결국 마무리는 인신협 회장인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가 지었다.

노 대통령이 '친구 같은 대통령'이었기에 망정이지, 예전의 군사정권이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회견장에서 졸았던 참관자, 대통령 말씀(?)중에 슬쩍 회견장을 빠져나간 사회자에게 어떠한 응징이 가해지지 않았을까?

기자회견이 끝나고 저녁 8시, 9시쯤이 되자, 곳곳에서 축하전화가 걸려왔다. 뉴스에서 나의 모습을 봤다는 것이다. 대부분 '머리가 크게 나왔다'란 얘기가 많아 안타까웠다.(원래 큰 것을 어찌하랴) 하지만 청와대에도 가보고, 대통령도 직접 눈으로 보고, TV에도 출연했다는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역시 '청와대'는 꿈이 실현되는 '꿈의 궁전'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과 청와대를 꿈을 실현 시켜주는 사람, 꿈이 실현되는 곳으로 믿고 있다. 이제 노 대통령의 임기는 1년 남았다. "국민들과 소통이 어렵다", "말조심 하겠다", "왜 날 인정해주지 않는가"라는 투정 대는 약한 모습을 보일 시간은 없다.

임기 초기의 그 자신 있고 당찬 모습으로, 국민들의 소박한 꿈들을 하나둘 실현 시켜 주길 바란다. 아직 늦지 않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