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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숲을 채워가는 너도바람꽃(경기도)
빈 숲을 채워가는 너도바람꽃(경기도) ⓒ 김민수
@BRI@우리 곁에서 '이름 없는 들풀'로 불리는 것들 중에서 정말 이름이 없는 것은 몇이나 될까? 정확하게 말하면 미확인종이 아니라면 이름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름 모를 꽃이 있을 뿐이다. 물론 사람들이 구분하기 위해 편의상 그 이름을 붙여준 것이지만 이름 중에는 중심이 되는 식물과 비교해서 비슷한 것들에게 '너도' 혹은 '나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너도바람꽃'도 그 중 하나인 것이다.

바람꽃이라는 꽃이 중심이고, 그 꽃과 유사한 꽃이니 '너도'자가 붙은 것이다. '나도바람꽃' 역시도 마찬가지인데 '너도' 혹은 '나도'가 아닌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변산바람꽃'처럼 독자적인 앞 단어라도 가지면 같은 종의 꽃이라도 전혀 다른 특색을 가진 것으로 취급을 받으니 '너도' 혹은 '나도'는 그저 보통사람을 가리키는 말처럼 들려진다.

중산층이라는 말보다 '보통사람'이라는 말이 좋았었는데 어느 전직 대통령이 하도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보통사람'의 진짜 의미가 퇴색되어버렸다. 그래서 '보통사람'이 아닌 '중산층'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요즘 양극화현상으로 인해 '중산층'이 급격하게 쇠락해가고 있다. 주변에서 너도, 나도 빈곤층으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너도' 혹은 '나도'는 중심이 아닌 변방 혹은 주변인들을 가리키는 말과도 통하는 것이다.

따스한 봄 햇살에 활짝 기지개를 펴고 세상을 바라본다.
따스한 봄 햇살에 활짝 기지개를 펴고 세상을 바라본다. ⓒ 김민수
<한국의 야생식물>(일진사)에서 색인을 보니 '나도'라는 이름이 들어간 식물이 32종, '너도'라는 이름이 들어간 식물이 4종이다. '너도'에 비해서 '나도'가 월등하게 많은 것을 보니 식물이름을 붙여준 이들의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너도'라는 상대방이 주변인이 되게 하기보다는 '나도'라는 자기가 차라리 주변인이 되게 하는 배려가 아닐까?

'나도'라는 이름을 가진 꽃들 이름을 불러보고 '너도'라는 이름 붙은 꽃들 이름을 불러보니 그냥 목록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다.

'나도'자가 들어간 것들 중에서 만나고 싶은 것들을 불러본다.
보고 싶다 나도닭의덩굴, 물통이도 작은데 나도물통이는 더 작을까?
나도미꾸리낚시는 미꾸라지처럼 미끌 거릴지도 몰라.
나도바람꽃은 어딘가 피어 "나도 봐 주세요!" 할 터인데,
나도송이풀, 나도옥잠화, 나도은조롱, 나도잠자리난초, 나도풍란
나도 만나고 싶은 꽃이 너무 많은데 너도 만나고 싶은 꽃들이 있니?
내가 만난 너도개미자리, 너도바람꽃, 너도밤나무.
그러고 보니 '너도'는 너도방동사니만 만나면 되겠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작시- '나도' 와 '너도' 그리고 '우리')


홀로 있어도 함께 있어도 아름다운 너도바람꽃
홀로 있어도 함께 있어도 아름다운 너도바람꽃 ⓒ 김민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신의 경제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그야말로 너도나도 '중산층'이라고 대답했다.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렁저렁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것은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우리는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 속에서 중산층의 몰락을 바라보고 있으며, 이젠 20 대 80의 구조가 사회전반에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던 이들이 이젠 중산층이 아니라 하위층이며 이대로 더 가면 희망도 없을 것 같은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너도나도 중산층이라고 대답했던 그 시절, 그때에는 나도 중산층이라고 대답을 했고 스스로도 그렇다 생각했다. 그래도 그때가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젠 더 이상 중산층이 아니며,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올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까지 세습될 것 같아 두렵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패배감을 안고 살아간다.

햇살을 등진 그녀의 속내를 담아보았다.
햇살을 등진 그녀의 속내를 담아보았다. ⓒ 김민수
지난주까지만 해도 서너 개체 보이던 너도바람꽃이 이젠 여기저기에서 손짓을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겨우 내 동토를 녹이고 피어난 꽃을 밟을까 걷는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봄 햇살이 따스하니 너도바람꽃도 한껏 기지개를 편다.

"너 행복하니?" 인사를 하니 "너도 행복하세요!"한다. 행복하다는 뜻이다.
"많이 힘들지 않았니?" 물으니 "다들 그렇게 피어나는 걸요"한다.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꽃은 순서대로 피어난다.

그 순서를 꼭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이른 봄에 피는 바람꽃의 경우는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의 순서다. 변산바람꽃이 필 무렵은 아직 찬바람이 많이 남아 있지만 너도바람꽃이나 꿩의바람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꽃샘추위가 와도 별 기운을 쓰지 못하고 하루 이틀 사이에 물러난다. 그러니 너도바람꽃이 피어나면 그만큼 봄이 가깝다는 이야기다.

너도바람꽃의 수분(꽃가루받이)매개체 역할을 하는 개미벌
너도바람꽃의 수분(꽃가루받이)매개체 역할을 하는 개미벌 ⓒ 김민수
오늘 산행 길에는 많지는 않았지만 나비도 두어 마리 날아다녔다. 꽃들은 주로 나비나 벌에 의해 수분(꽃가루받이)을 하는데 이른 봄이다보니 '너도바람꽃'의 수분매개체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몇 안 되는 나비들일까, 아니면 바람일까?

그런데 너도바람꽃이 피어난 계곡에 앉아 그를 바라보며 점심으로 김밥을 먹고 있는데 수분매개체가 나타나 너도바람꽃을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머리가 개미를 닮아 '개미벌'이라는 이름이 붙은 곤충이다. '아하! 너도바람꽃의 수분매개체는 개미벌이구나!'. 그가 있어 열매를 맺고 해마다 여기저기 피어나는 것이구나 싶으니 개미벌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것만 같다. 그들을 통해서 내년에는 올해보다 너도바람꽃의 영역이 더 넓어지길. 그래서 너도나도 피어나 행복하길 기도해 본다.

'너도바람꽃'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이 세상의 모든 '너도' 또한 '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

너도바람꽃

여러해살이풀 '너도바람꽃'
학명 : Shibateranthis pinnatifida(Maxim.)
분류 : 미나리아제비과


중부 이북의 산지 숲 속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국외로는 일본과 중국에 분포한다. 꽃줄기는 10-15Cm 높이로 자란다. 꽃줄기 끝에 돌려나는 잎처럼 생긴 총포는 자루가 없고 불규칙한 선형으로 갈라진다. 3-4월에 총포(總苞) 사이에서 나온 꽃자루 끝에 지름 2Cm 정도의 흰색 꽃 한 송이가 핀다.

꽃잎처럼 보이는 꽃받침조각은 5장이다. 꽃이 질 때 쯤 돋는 뿌리 잎은 잎자루가 길고 잎 몸이 3개로 깊게 갈라진다.

(이상 진선출판사 <야생화 쉽게 찾기>, 일진사 <한국의 야생식물> 참고)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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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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