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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는 습한 곳이라면 바위라도 마다하지 않고 푸릇푸릇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 중에서도 우산이끼는 땅이나 바위에 붙어 조금이라도 틈이 있을까 바짝 몸을 붙이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다. 이렇게 땅에 온 몸을 바짝 붙이고 살아가는 식물 중에는 땅빈대라는 것도 있는데, 우산이끼도 그와 견주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밑바닥 인생', 누군들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서 살아갈까마는 밑바닥 인생이 있어 그들을 보며 위안을 삼는 인생이 있고, 그들이 있어 하이클래스가 존재하는 것이니 밑바닥 인생이라고 우습게 여기지 말아야 할 일이다.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행진 속에서 양극화현상은 겉잡을 수 없이 우리 사회를 좀먹어 들어가고 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이른바 빈민계층,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식물들의 생태를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살이와 닮은 점이 많다. 산불이 휩쓸어 버린 산에 제일 먼저 푸릇푸릇 피어나는 것은 고사리와 이끼같은 작은 것들이며,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에 가장 먼저 새싹을 낸 것이 쇠뜨기였다니 그 작은 것들이 영역을 넓혀가면서 점차 다른 것들도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낸 것이다. 죽음의 땅에 다시 들풀이 자리를 잡고, 나무가 자라 위대한 숲이 되는 그 첫 걸음은 바로 우산이끼처럼 식물계에서 밑바닥 인생을 사는 것들이었다.
인류 역사의 원동력, 그것은 사실 가진자들의 역사책에서 늘 무지렁뱅이로 나오는 익명의 밑바닥 인생들이었다. 그 중 몇몇의 이름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그냥 대중 혹은 민중으로 불리우던 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밑바닥 인생을 강요당하고 있고, 이제 그것은 대물림되고 세습되고 있으니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되었다. 또 개천에서 용이 난들 그것을 용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는 세상이다보니 낮은 삶을 추구하는 이들, 진정으로 섬김의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은 바보가 되어버리고, 오로지 높아지려는 이들과 섬김을 받으려는 이들만이 득세하는 세상인 듯하여 씁쓸하다.
그러면 정녕 희망은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이렇게 조소하듯 비관적으로 한탄만 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 가장 낮은 곳에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살포시 우산을 피고 있는 이끼의 삶을 닮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조소하고, 비관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기독교는 요즘 사순절기(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는 기간)를 지내고 있다. 예수의 고난을 기억하며 그 고난에 동참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자는 경건한 절기이다. 이 고난의 절기에 고난의 길이라 생각하며 고난에 기꺼이 동참하는 두 부류의 목회자들을 본다. 한 부류는 실소를 금하지 못하게 만들고, 한 부류는 나 자신의 이기적인 신앙을 부끄럽게 한다.
사학법재개정을 요구하며 삭발투쟁을 하는 남자목사들 틈에 여자목사들까지 삭발투쟁에 가세했다. 눈물을 흘리며 삭발을 하는 그들, 고난의 길에 기꺼이 순교자의 심정으로 동참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을 정도로 허탈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가운데 사학법 재개정에 대한 반대입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소속 목사들이 고난당하는 이 땅의 이웃들을 위한 40일 릴레이 금식기도회를 열고 한미FTA,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민노동자, 고난당하는 생태계 등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이들의 모임에 잠깐 참석을 하고 나와 지속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목사라고 다 목사가 아니고, 교회라고 다 교회가 아니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그냥 일반 사람이라면 몰라도 목사는 다 목사여야 하고, 교회는 다 교회여야 하는데 무늬만 목사요, 무늬만 교회인 경우가 너무 많다. 이런 무늬만 그럴 듯한 가식적인 이들이 활개를 치게 된 까닭은 밑바닥 인생들을 우습게 여기고, 오로지 위로만 향하려는 잘못된 가치관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가치관은 결국 물질을 최고로 여기고, 물질(자본)로 대표되는 돈이 가치척도가 되어 진실을 보지 못하고, 헛된 것을 보는 것이다. 그 헛된 것에 눈이 팔렸으니 스스로 순교한다고 생각하고, 고난당한다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실소를 금하지 못할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우산이끼, 그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지만 작은 우산을 만들어낸다. '밑바닥 인생이라도 우산이 되리라'는 그들의 결연한 의지를 보는 것 같아 우산이끼의 삶이 다르게 느껴진다.
누구를 위한 우산일까? 우산은 자신을 젖을지언정 우산 속에 있는 이들을 지켜준다. 우산은 홀로 쓸 수도 있지만 여럿이 함께 쓸 수도 있다. 한 우산 속에 들어 있다는 것, 그것은 참 좋은 설렘이기도 하다. 다정한 연인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짝사랑하고 있던 연인일 수도 있다. 우산으로 인해 이루어진 사랑이 얼마나 많을까?
우산은 그 느낌이 따스하고, 포곤하다. 그 따스한 느낌을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이끼가 만들어낸다. 그래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더 끈끈하고 따스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 | 우산이끼 | | | | 우산이끼목 우산이끼과의 선태식물.
학명 Marchantia polymorpha
분류 우산이끼과
분포지역 전세계
자생지 음습한 땅
크기 엽상체 나비 7∼20mm
음습한 땅에서 자란다. 도시의 집 근처나 산지의 응달 등 습기가 있는 곳에 퍼져 있으나, 특히 집 근처의 암모니아 성분이 많은 곳에 많다. 전체적으로 잎처럼 넓은 엽상체와 헛뿌리로 이루어져 있다.
엽상체는 나비 7∼20mm이고 짙은 녹색이며 2개씩 갈라진다. 또한 표면에는 육각형의 구획이 생기고 각 중앙에 작은 구멍이 있다. 구멍은 기공구(氣孔口)이며 4개의 공변세포가 있다. 엽상체의 복면에는 털 같은 헛뿌리가 있으나 수분흡수와는 관계가 없다.
암수딴그루이며 암그루는 찢어진 우산 모양의 배우체를 가지며, 수그루는 뒤집어진 우산 모양의 배우체를 가진다. 암 배우체에 포자낭이 생기며 이 포자낭 속에서 포자가 만들어져 번식한다.
엽상체의 표면에 술잔 같은 무성아기(無性芽器)가 생겨서 짙은 녹색의 무성아가 많이 생긴다. 번식은 포자보다도 무성아에 의한 것이 많다. 우산이끼란 암그루와 수그루가 우산같이 펼쳐지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온실 안에서는 화분 겉에 붙어서 귀찮을 때도 있다.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각처에 분포한다. (안양천 생태도감 참고) / 김민수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