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바 항에서는 출국수속과 승선수속을 밟아야 했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요르단으로 가기 때문이다. 이 항구는 시나이 반도와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 아카바만의 중간쯤에 있는 이집트의 항구다.
우리 일행들이 탄 버스가 항구에 도착하자 현지인 가이드 '얼빵'이 기다리고 있다가 맞아준다. 출국수속은 얼빵이 대부분 대신해주었다. 사실 입국수속에 비해서 출국수속은 대체로 느슨한 편이어서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들은 수속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승차하여 얼빵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BRI@그가 우리들의 여권을 모두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얼빵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기다리기에 지친 여행사 인솔자가 그를 찾아 나섰다. 잠시 후 여행사 인솔자가 돌아 왔다. 얼굴에는 웃음을 띠고 있었지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역시 얼빵은 어쩔 수 없네요."
얼빵은 무엇이 미진했던지 출국장에 있더라고 했다. 왜 승선준비를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아직 배가 도착하지도 않았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럼 우리들에게 알려줘야지 영문도 모르고 기다리게 하면 되느냐고 다그치니 그때서야 머리를 긁적이더라는 것이다. 얼빵의 일 처리는 항상 그렇게 엉성했다.
잠시 더 기다리고 있을 때 얼빵이 나타났다. 우리들이 탈 배가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승선하려면 또 한참 더 기다려야한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또 한참을 더 기다려 태양이 완전히 서쪽으로 기울어진 후에야 우리들은 요르단 아카바 항구로 가는 여객선에 승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집트 가이드 이 선생과 카이로에 사는 친지, 그리고 얼빵과 헤어져 여객선에 승선한 후에도 배는 출항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배정 받은 자리는 선실의 뒤쪽이며 가운데 자리였다. 창문 쪽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바깥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창가의 좋은 자리가 아니어서 불만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들이 자리를 잡고 잠깐 앉아 있을 때 선실 중앙의 매점 지배인인 듯한 사람이 우리들의 여행사 인솔자를 찾았다. 매점에서는 각종 과자류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맥주와 위스키, 와인 등 술까지 팔고 있었다.
매점 지배인과 이야기를 나눈 인솔자가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술이나 음료수를 팔아주면 앞쪽 선실의 창가에 있는 좋은 자리를 주겠다는데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느냐고 물으니 의논해서 대답하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들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우리들을 선실 앞쪽의 창가로 옮기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지배인이 손수 앞장을 섰다. 그리고 꼬레아 여러분에게 좋은 자리를 준다고 선심을 쓰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들이 선실에 들어갈 때부터 딱 찜해 놓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좋은 자리를 배정해 주면 틀림없이 매상을 올려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들의 속셈이 들여다보였지만 일단 창가의 좋은 자리에 앉고 보니 모두들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장 선생! 우리 일행들 모두에게 주문을 받아요, 좋은 자리 줬는데 그냥 있을 수 없잖아요. 좀 팔아줘야지, 이번엔 내가 쏠게요."
일행 중 한 사람이 결국 한 턱을 내게 되었다. 매점 지배인의 계산은 정확하게 들어맞은 셈이었다.
그때까지 여객선은 출항하지 않고 항구에 정박한 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객선 선실에서는 이집트 관리가 자국인들의 출국심사를 하고 있었다. 선실 맨 앞쪽에 책상을 놓고 앉은 출국심사관은 매우 오만한 자세로 자국민들의 여권을 받아들고 살펴보며 심사하고 있었다.
가끔씩 큰 소리로 호통을 치기도 하고 여권을 압수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선실 가운데 통로에 늘어서서 심사를 기다리는 이집트인들은 아직도 많았다.
"아니, 저 사람들 심사가 모두 끝난 후에 출항하려고 하는 것 아냐?"
일행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요르단으로 건너간 후에도 다시 그쪽의 입국심사를 거쳐야 하고 다음 코스로 이동할 거리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30여분을 기다린 후에야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여권심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매우 까다로운 심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니 이곳이나 요르단이나 형편이 비슷할 것 같은데 저렇게 까다로운 심사까지 받으면서 왜 굳이 요르단으로 가려 하지?"
일행 한 사람이 의문을 제기한다. 줄을 서서 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동자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이집트 국민소득은 1천2백 달러 정도지만 요르단은 5천 달러나 되기 때문에 소득 격차가 상당한 편입니다. 그래서 이집트 노동자들이 요르단으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소득격차가 그 정도라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그러나 나일강 유역의 그 비옥한 땅과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진 이집트가 왜 그렇게 가난한 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더구나 이집트는 아랍의 맹주라고 자부하는 나라가 아닌가.
항구를 빠져 나온 여객선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북쪽을 향하여 항진하기 시작했다. 창문 밖의 풍경은 방금 떠나온 이집트 누에바 항이 점점 멀어지고 오른편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해안에 병풍처럼 솟아 있는 산들이 가물가물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 갑판으로 한 번 올라가 볼까요?"
뒷자리에 앉아 있던 일행 한 명이 다가와 제안을 한다. 그렇지 않아도 갑판으로 올라갈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어서 우리 두 사람은 곧장 갑판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갑판에 올라가자 휘몰아치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몸을 가눌 수는 있었지만 위험할 것 같았다. 우선 바람에 날려갈 것 같아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때 뒤따라 올라온 승무원이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심한 바람 때문에 위험해서인지 갑판 위에는 우리들 밖에 없었다.
우리들은 난간에 의지하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배가 너무 늦게 출항했기 때문에 태양은 이미 시나이 반도의 해안가 산 위에 걸려 있었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는 코발트빛이었다, 그 바다위로 멀리 산 위에 걸린 태양이 긴 꼬리처럼 바닷물 위에 반짝이는 풍경이 환상적이다.
여객선의 고물머리 밑에서는 배를 추진하는 프로펠러에서 뿜어내는 물보라가 하얗게 피어 오른다. 그런데 그 하얀 물보라에 순간순간 작은 무지개가 피어나는 것이 아닌가.
"어, 저것 좀 봐요? 저 물보라, 무지개야 무지개!"
내가 소리치자 일행도 물보라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지른다.
갑판 위에서는 해협의 양안이 모두 바라보인다. 시나이반도나 아라비아반도의 해안풍경은 비슷했다. 양쪽 모두 상당히 높직한 바위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이 해협을 아카바만 또는 걸프만으로 일컫는다. 다만 이스라엘에서는 엘라트만이라고 부른다.
이 해협의 남북의 길이는 160㎞, 동서의 넓이는 19∼27㎞다. 해협의 북단에는 요르단의 항구 아카바와 이스라엘의 엘라트항. 그리고 이집트의 타바항이 있으며 남단은 티란과 사나피르 두 섬으로 홍해와 구분된다. 또 티란섬과 시나이반도 사이에는 티란해협이 있다.
해안선의 길이는 아랍 쪽의 335㎞에 비하여 이스라엘 쪽은 12㎞에 불과하다. 그래서 1957년도에는 아랍 제국이 이 해협을 자신들의 영해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1967년에는 이집트가 이 해협을 봉쇄하여 그 유명한 6일전쟁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이스라엘로서는 인도양으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인 이 해협의 봉쇄를 결코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해협의 봉쇄로 유발된 이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 공군을 궤멸시키고 제공권을 장악했다.
전쟁 결과는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고, 아랍 측이 소유였던 구 예루살렘 시가지와 함께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 그리고 웨스트뱅크로 알려진 요르단 강 서안의 요르단령 이스라엘, 시리아 국경지대의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이 차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태양이 지는 시나이반도의 해안선을 바라보다가 선실로 들어왔다. 이집트인들의 출국심사도 모두 끝이 났는지 노동자들이 선실 가운데 자리에 앉아 풀죽은 모습으로 졸고 있었다. 조국이 너무 가난하여 바다 건너 다른 나라로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노동자들이 안쓰러워 보인다.
밖이 어두워지자 선실의 승객들도 대부분 잠깐 눈을 붙이는 모습이다. 잠시 후 선실에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곧 아카바 항에 입항한다는 방송이었다. 선실 창 밖으로 그리 머지 않아 보이는 곳에 항구의 불빛이 바닷물에 반사되어 파도에 일렁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