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누에바항을 출발한 여객선은 1시간여를 항해하여 요르단의 아카바항에 입항했다. 아카바만은 시나이반도와 아라비아반도 사이의 좁은 해협이지만 기상 상태가 수시로 급변하는 곳이다. 가끔씩 돌풍이나 풍랑을 일으켜 선박운행이 자주 결항되는 바다로 소문난 해협이다.
@BRI@그러나 다행히 우리들이 탄 여객선은 누에바항에서 출항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아카바항에 무사히 입항하게 된 것이다. 아카바항의 입국심사는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모두들 별 탈 없이 입국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주차장에는 이 지역을 안내할 가이드 안 선생과 요르단과 시리아 지역을 우리들과 함께할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버스를 타고 요르단의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현지인 가이드는 50대의 키가 자그마한 남자였다. 그는 이집트 현지인 가이드 ‘얼빵’하고는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이지적인 용모뿐만 아니라 차분한 행동으로 덜렁거리던 얼빵과는 달리 엘리트 냄새를 풍기는 사내였기 때문이다.
아카바만의 해변 길을 달리던 버스가 내륙지역으로 접어들어 얼마 달리지 않아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오른 버스는 언덕위에 있는 호텔 앞에 멈추어 섰다. 기다렸다는 듯 종업원들이 뛰어나와 우리들의 가방을 옮긴다. 호텔은 깔끔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이미 예약이 되어 있던 호텔에서는 우리들의 도착이 늦어지자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식사가 준비되었으니 바로 저녁식사를 하라고 한다. 식사는 양식 뷔페였다. 식성이 까다로운 사람들은 예의 고추장과 멸치조림을 꺼내놓고 함께 먹는다. 호텔은 상당히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았지만 어두운 밤이어서 보이는 것이 별로 없었다.
저녁을 먹은 일행들은 곧 잠자리에 들었다. 며칠 째 계속된 여행에다 이집트에서의 출국절차를 거치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승선하고, 또 요르단 입국절차를 거치는 등 상당히 피곤한 하루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알람 벨 소리에 눈을 뜨니 아직 날이 밝기 전의 상당히 이른 시간이다.
호텔 로비에 나오니 벌써 나와 있는 일행들이 보인다. 밖은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로비 앞마당에 있는 멋진 수영장은 맑고 푸른 물이 찰랑거린다. 그러나 문밖으로 나서니 싸늘한 바람이 제법 세차게 몰아친다.
짐작했던 것처럼 호텔은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멀고 가까운 풍경들이 발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발아래 저 밑은 깊은 계곡이었다. 그 계곡 건너는 온통 바위산들이다. 그 바위산 위에 아침 햇살이 비쳐들자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아직 어두운 바위산과 햇살을 받은 바위산들의 색깔이 멋진 대조를 이루며 기막힌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울퉁불퉁 근육질인 바위산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했었던 풍경이었다.
“저 아래 계곡에 그 유명한 고대동굴도시 패트라가 있습니다.”
가이드 안 선생이었다.
“그리고 저 건너편에 있는 바위산들 중에서 지금 햇볕을 받고 있는 제일 높은 산이 호르산입니다. 높이가 해발 1593m로 모세의 형 아론이 죽은 곳이어서 이곳 사람들은 아론의 산이라고 하지요.”
'패트라', '호르산' 얼마나 유명한 이름들인가.
오늘은 일정이 빠듯하여 바삐 서둘러야 될 것 같다고 한다. 아침식사 준비가 되었다고 하여 역시 양식 뷔페식인 아침을 대충 먹고 버스에 올랐다. 우리들을 태운 버스는 우선 패트라로 향했다. 그러나 패트라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패트라 관광을 마치고 나오다가 지나는 길에 들른 모세의 샘 이야기를 먼저 하기로 하자.
정말 놀라운 광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 사이도 없었던 패트라를 구경하고 나오다가 버스가 멈춘 곳은 역시 패트라로 내려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언덕이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이집트 풍경하고는 너무나 달랐다.
바위산들의 풍경은 웅장하기 짝이 없었다. 툭툭 불거진 산세는 여기저기에서 꿈틀꿈틀 용틀임이라도 할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런 산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들은 단정했으며 건물들은 하얀 콘크리트들이다. 미완성인 어설픈 이집트 가옥들과는 역시 전혀 다른 모습이다.
또 다른 풍경은 메마른 바위산들이지만 어느 곳에는 상당히 많은 올리브 나무와 다른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변의 땅들이 젖어 있는 모습도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풍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조금 더 달리다가 큰길가에서 버스가 멈춰 섰다.
“이곳 와디무사 마을에서 모세의 샘에 잠시 들렀다 가겠습니다.”
모세의 샘이라니 마을에는 길가에 몇 채의 집들이 서있기는 했지만 주변은 온통 깡마른 바위산들이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샘물이 나올 것 같은 곳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버스가 멈춘 곳에서 길 건너 맞은편 바위산 아래 하얀 돔처럼 보이는 것을 세 개나 옥상에 얹은 건물이 보였다.
“저 건물 안에 므리바라고 불리는 모세의 샘이 있습니다.”
우리 일행들이 우르르 길을 건넜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정말 도저히 믿기지 않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자 오른 쪽에 바위 한 개가 보이는데 물은 그 아래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흘러나온 물줄기는 돌로 잘 다듬어진 수로를 따라 맑은 냇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수량도 제법 많았다. 한꺼번에 수백 개의 수도꼭지를 틀어 놓으면 저 정도의 수량이 될까 싶을 정도의 양이었다. 마침 수로의 한쪽에는 아랍인 한 명이 커다란 플라스틱 물통을 물에 담가 물을 퍼 올리고 있었다.
근처에 사는 사람인데 식수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물이 맑고 깨끗하여 어떤 정수나 여과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마신다니 얼마나 깨끗한 물인가. 일행 중의 한 사람이 손으로 물을 퍼 올려 맛을 보기도 한다.
“물맛도 좋은데요.”
이 물이 바로 고대도시 패트라의 식수원이었다고 한다. 로마는 이 물줄기를 끊어 패트라를 정복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도 흐르던 물이 오늘도 변함없이 깨끗한 상태로 흐르고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성경에 의하면 이 물이 바로 이집트에서 모세에 이끌려 나온 유대인들이 마실 물이 없다고 투정을 했을 때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내려치자 솟아올랐던 바로 그 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을 모세의 샘이라고 부르지요.”
“그럼 이 샘이 바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그 샘이란 말에요?”
누군가 영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묻는다.
“물론 지리상으로 볼 때 이 샘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이 샘의 이름은 모세의 샘입니다.”
성경을 한 번 찾아보자. 구약성경 민수기 20장
“2절,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10절,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절,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만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또, 22절에서 29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가데스에서 진행하여 호르산에 이르렀더니(22절) 여호와께서 에돔 땅 변경 호르산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니라 가라사대(23절)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고니라(34절)”
“너는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을 데리고 호르산에 올라(25절)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 아론은 거기서 죽어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라.(26절) 모세가 여호와의 명을 좇아 그들과 함께 회중의 목전에서 호르산에 오르니라.(27절) 모세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매 아론이 그 산꼭대기에서 죽으니라 모세와 엘르아살이 산에서 내려오니(28절) 온 회중 곧 이스라엘 온 족속이 아론의 죽은 것을 보고 위하여 삼십일을 애곡하였더라.(29절)”
성경의 기록을 보면 결국 모세와 아론은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내라”는 여호와의 말을 거역하고 백성에게 화를 내며 바위를 침으로써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큰 벌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샘의 위치는 성경의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로 보기 어렵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정말 이 샘이 모세와 모세의 형 아론의 샘일까요?”
일행들은 여전히 의문이 남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위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도자가 갖추고 행해야 할 바른 자세가 성경에 제시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겸손하게 행하지 않고 혈기를 부리고 자신을 앞세운 모세와 아론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형벌을 받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 최초의 대 제사장이었던 아론과 아론의 동생이며 유대인들을 이집트에서 구해낸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 왜 그랬을까? 이들은 얼핏 큰 잘못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자신들을 앞세운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성경에 기술된 이 사건은 오늘날의 지도자들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가져야할 덕목과 자세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아론이 죽은 호르산은 현지 지명으로는 ‘아론의 산’ 이라는 의미의 ‘자발 하룬’ 이라고 한다. 아론은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에서는 하룬이다. 산꼭대기에 있는 아론의 무덤에는 비잔틴 시대에는 돔형의 건물과 오벨리스크가 있었으나 현재는 모스크 형태의 기념교회가 남아 있다고 한다. 다음 회에는 패트라 이야기가 2회에 걸쳐 이어질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