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거리가 만만치 않습니다. 시간도 절약할 겸 마차나 낙타를 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가이드 안 선생이 제안을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들 몇 사람은 그냥 걸어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마차는 2인승인데 1대 왕복에 10달러입니다. 그리고 낙타는 편도 7달러구요, 저 아래 신전입구 광장까지입니다."
마차 값이 오히려 싸다. 2인승이니까 1인당 왕복 5달러인 셈이었다.
"마차 값은 내가 내지요. 12대가 필요하니까 120달러면 되겠군요."
일행 중 한 사람이 모두의 마차 값을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그러니 나를 포함하여 걸어가겠다고 마음먹었던 몇 사람들도 마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마차를 책임지고 비용을 부담하는 일행의 성의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마차를 타고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시나이 산에서 낙타를 타 본 사람들이어서인지 굳이 낙타를 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신전 앞 광장까지 타고 내려가서 구경을 마친 다음에, 타고 갔던 마차를 다시 타고 이 자리로 돌아와 내리시면 됩니다. 내릴 때 1달러씩 수고비를 따로 주시면 됩니다."
마차를 총괄 관리하는 조직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 총괄책임자와 마차사용료와 수고비를 책정하여 결정을 한 것이라고 한다.
일행들은 두 사람씩 한 조가 되어 마차를 탔다. 그런데 별로 크지 않은 당나귀가 끄는 마차들이 달리는 속도가 모두 제각각이다. 어떤 마차는 천천히 느긋하게 걸어가는가 하면 어떤 마차는 그야말로 쏜살같이 달렸다.
내리막길이어서 당나귀가 힘들 것 같지는 않았지만 덜컹거리며 달리는 마차가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내가 탄 마차 옆으로 조금 뒤에 탄 일행의 마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리자 여성들 두 명이 비명을 지른다. 무서운 모양이었다. 비명 소리를 듣고 마차를 몰던 젊은 마부가 속도를 조금 늦추어 주었다.
그러나 다른 또 하나의 마차는 그냥 정신 없이 질주를 한다. 그 마차를 탄 사람들은 그냥 신이 나는지 깔깔거리며 좋아했기 때문이다. 마차를 모는 마부들은 날마다 같은 길을 수없이 반복해서 달려서 길에 익숙한 때문인지 아주 자신 있게 마차를 몰았다.
내가 탄 마차는 내리막길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길 양쪽은 아슬아슬 높이 솟아있는 바위협곡이어서 하늘이 손바닥만큼 밖에 바라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길은 제법 넓어서 마차 두 대가 비껴 지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저 밑을 좀 보세요, 저거 수로 같잖아요?"
옆에 탄 일행이 길 옆의 바위 밑을 가리킨다. 정말 절벽 아랫부분에는 바위를 파내어 만든 수로가 협곡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한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로는 양쪽에 모두 만들어져 있었다. 그 수로의 어느 곳에는 물이 고여 있는 것도 보인다.
놀라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깎아지른 듯한 협곡의 곳곳에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디 마땅하게 뿌리 내릴 곳도 없는 바위협곡, 햇빛도 보기 어려운 그 비좁은 바위 틈새에서 상당히 큰 나무가 살아 있는 모습은 정말 경이로운 것이었다.
잠시 후 우리가 탄 마차는 제법 넓어 보이는 광장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이미 먼저 도착한 우리 일행들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관광객들이 주변의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여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우와! 저게 뭐야? 바위 절벽에 저런 건축물을 세워놓다니."
패트라의 알카즈네 신전이었다. 거대한 바위절벽을 반듯하게 자르고 정교하게 다듬어서 조각한 작품이었다. 그 놀라운 솜씨 때문에 그렇잖아도 대단한 이 신전을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이 바로 영화 인디아나 존스 '마지막 성배'의 배경이 되면서 부터다.
외양으로 드러난 양식은 헬레니즘문명의 영향을 받았는지 그리스에서 볼 수 있는 고대 건축물을 보는 느낌이다. 그런데 신전은 만들어 세운 것이 아니라 바위를 깎아 만든 것이었다. 건축물이 아니라 조각 작품인 셈이다.
"아니 어떻게 그 시절에 이런 건축을 할 수 있었지. 절벽의 바위를 마치 두부를 자르듯 자르고, 떡 주무르듯 한 것 같잖아?"
모두들 놀라운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런데 신전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바위 절벽에 만들어 놓은 동굴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우리나라에 많은 화강암처럼 그렇게 단단하지는 않은 사암절벽들이지만 기원 전후의 그 시절에 이렇게 정교하고 멋진 조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광장을 지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놀라운 광경은 더욱 많았다.
절벽 몇 군데에는 신전 비슷한 모양의 조각이 되어 있었고 동굴은 하도 많아서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었다. 처음 들어올 때 입구의 협곡보다는 조금 넓었지만 다음 협곡을 지나자 시야가 한결 넓어진다.
그 곳에서 우측으로 꺾이는 지점 왼편에 원형 경기장이 나타났다. 관중석만 해도 천명 이상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좌석이 층층이 만들어져 있고 그 뒤의 절벽에는 예의 커다란 동굴들 몇 개가 보인다.
경기장의 양편에는 출입구가 만들어져 있고 한편에 커다란 돌기둥 4개가 서 있는 모습이 그 옛날의 거대하고 웅장한 원형경기장을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이 패트라를 모두 관광하려면 대충해도 2~3일은 걸립니다. 저 안쪽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풍경들을 볼 수 있지만 이쯤해서 돌아나가시죠?"
가이드 안 선생이 다음 일정을 위하여 이만 돌아가자고 한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패트라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어떠세요. 보신 소감이, 정말 대단하죠?"
대답이야 너무나 뻔하다. 모두들 너무 놀라운 모습에 얼이 빠져 있는데 말이다. 돌아 나오다 보니 다시 알카즈네 신전 앞이다. 이 고대동굴도시는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부르크 하르트가 발견하여 1985년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믿기지 않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려고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만도 연간 10-15만 명이 찾는 곳이다. 이 고대동굴도시는 기원전에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이안들이 건설했는데 바위협곡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만든 동굴도시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지중해연안과 유럽을 석권한 로마군대가 침입하였을 때도 처음에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이 동굴도시를 지탱케 해준 물줄기를 발견하여 막아버림으로써 그 위대했던 동굴도시도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신전 앞에서 다시 마차를 타고 입구를 향해 달렸다. 나가는 길은 오르막길이어서 당나귀가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길바닥도 울퉁불퉁하여 마차를 끌기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종점에 도착하여 마부청년에게 1달러를 내밀자 무표정하게 받는다. 그런데 뒤이어 도착한 여성일행들 두 명이 탄 마차는 1달러를 내밀자 5달러를 내라고 억지를 부린다. 남자들이 나서서 무슨 소리냐고 따지자 군소리 없이 물러선다.
"역시 이쪽에선 여자들에게 사람대접을 제대로 안 해 주는구먼."
여성일행들이 푸념을 한다.
"거봐요?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여성들이 대접받는, 귀국하면 더 잘 하세요 하하하."
먼저 나온 사람들은 동굴도시를 관광하며 놀라고 감탄했던 가슴을 유쾌한 웃음으로 진정시키며 아직 나오지 않은 일행들을 기다렸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