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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불 정책을 반대하는 선두는 서울대가 있다. 사진은 서울대 정문.
ⓒ 오마이뉴스 권우성

'조봉레'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조 본프레레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2006년 월드컵을 불과 10개월 정도 남겨둔 2005년 8월 23일 사퇴했다. 자진사퇴냐 압력이 있었느냐는 논란만큼 그의 진퇴는 축구팬들 사이에서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본프레레 감독이 그다지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은 데에는 경기결과나 구체적인 전술운용, 한국축구의 미래에 대한 철학 등 다방면에 걸친 평가가 작용했지만, 종종 경기의 패인을 "선수 탓"으로 돌린 데 대한 냉담한 여론도 큰 몫을 차지했다.

예를 들면 2004년 10월 레바논과의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1-1로 비긴 후 "나는 전술적으로 완벽했으나 선수들의 이기려는 의지가 부족했다. 선취 골을 넣고도 해이한 정신력으로 실점해서 비겼다"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실제 본프레레는 언론에서 선수 탓을 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기도 한 만큼, 우리가 언론에 놀아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분명한 것은 아무리 경기를 하는 것은 선수라고 하더라도 모든 책임을 선수에게 지우는 감독은 훌륭한 감독으로 신뢰할 수가 없다는 점일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스포츠계의 초호화군단 삼성 배구팀을 격파한 현대캐피탈의 김호철 감독이나 축구에서 완승해 버린 FC서울의 귀네슈 감독에 열광한다. 낮은 몸값, 무명, 그리고 다소 떨어지는 실력…. 그런 선수들을 모아서 조련하고 체력을 끌어 올리고 정신력을 가다듬게 해서 최강의 팀을 이기게 한 감독이 진정한 명감독이다.

우리 기억 속의 히딩크도 그런 명장 중의 한 명이었다. 우리도 좋은 지도자를 만나면 충분히 세계 4강 갈 수 있다, 단지 축구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지난 2002년 세상을 붉게 물들이며 우리가 그토록 목 놓아 감격했던 이유가 아닐까.

3불정책이 문제?

최근 서울대 장기발전위원회가 정부의 이른바 '교육3불(不)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을 대학경쟁력 확보의 암초같은 존재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뒤이어 3월 22일에는 사립대학총장협의회에서도 서울대를 거들었다.

언론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날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선진국의 국가적 관심사는 대학경쟁력 강화다. 지금부터라도 여기에 교육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3불정책이 얼마나 교육평등과 사교육비 완화에 기여했는지 냉철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며 "부모 경제력에 의해 명문대 입학이 좌우되는 현실은 현 정부 들어 더 심해졌다"고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기사에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평소 3불정책 폐지를 수차례 언급한 점을 지적하며 "대학에 대한 재정 투자 확대는 양질의 인적 자본을 확충하며 이는 다시 연구의 질적 수준 제고와 기술자본 확대의 선순환 고리로 연결된다"는 그의 주장을 옮겼다.

나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사회지도층의 그 몰염치와 파렴치함에 어처구니가 없다. 솔직히 나는 3불정책 중 기여입학제는 향후 긍정적이고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 때는 아니다.

우리 대학의 경쟁력이 형편없고 사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 기여 입학을 안 하기 때문인가, 본고사를 안 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고교등급제를 안 하기 때문인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신기할 정도로 이 3불정책은 모두 대학의 신입생 선발과 관계가 있다. 특히 본고사나 고교등급제가 그렇다. 그러니까 서울대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질 좋은 학생들을 마음껏 뽑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서울대가 대한민국의 좋은 학생들 못 데려간다면, 그럼 어느 대학이 그 우수한 학생들 데려 간단 말인가?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이 서울대 '발전위원회'에서 나왔다는 기사를 솔직히 나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이건 본프레레 전 감독이 "이게 다 선수 탓"이라고 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생각해 보라. 한 대학의 경쟁력 저하를 자기 학생들에게 전가시키는 것도 참으로 한심스런 일인데, 서울대는 그 책임을 ‘못난’ 신입생들에게 죄다 뒤집어씌우고 있지 않은가! “이게 다 노무현 탓”이라며, 국정최고책임자의 무한책임을 강조하던 어르신네들의 대학책임자로서의 무한책임은 도대체 어디로 가 버렸단 말인가.

서울대의 주장은 마치 "국가대표팀의 성적이 초라한 이유는 K리그에서 훌륭한 선수들을 마음껏 대표팀으로 데려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항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마 천하의 히딩크라도 이렇게 말했더라면 다음날 짐을 싸서 한국을 당장 떠났어야만 했을 게다. 백번 양보해서 지금 고등학생들의 학력저하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오히려 극복해야 하는 것이 대학의 임무 아니던가. 고등학생 수준만 놓고 대학이나 국가경쟁력을 논한다면, 확언하건대 미국은 벌써 수십 번도 더 망했다.

'서울대공화국' 만들라고 세금 낸 게 아니다

▲ '서울대 공화국'에 폐해를 지적하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2월 24일 열린'서울대학교 제60회 학위수여식'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세계 유수의 언론이나 기관이 대학을 평가할 때 적용하는 중요한 기준들은 대부분 대학의 기반시설과 교수들의 자질에 대한 것들이지 학생들의 능력에 대한 것은 거의 없다. 교수 당 논문실적은 따져도 학생 당 논문실적은 안 따진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대학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금 내서 국립서울대를 만든 이유는 대한민국의 가장 똑똑한 애들 데려다가 그들만의 공화국을 만들라는 게 아니다. 능력이 좀 부족한 평범한 여염집 자식들을 데려다가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최고의 일꾼으로 길러 내라고 월급주고 있는 것이다.

국립 서울대와 소위 명문 사립대들과 보수언론들이 이렇게 들고 일어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는 '평준화=평등주의=기계적 평등=북한의 배급제=공산주의=좌파정권=빨갱이'라는 우리 사회의 무의식적 연상 작용과 맞물리며 위력을 발휘해 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치명적인 눈가림이 존재한다.

대한민국 경쟁력을 좀먹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평등주의 혹은 '무경쟁'이 전혀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매일매일 피 터지는 전쟁터 속에서 죽을 힘을 다해 경쟁하고 있다. 물론 고3 수험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 높은 곳에서 사회의 중요한 요소와 여론을 결정하고 움직이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경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일정한 지위 이상 올라가면 그 지위를 이용해서 편하게 살려고 하지 거기서 다시 피 터지는 경쟁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자기들만의 공고한 '거탑'을 쌓아놓은 뒤 다수에 대한 균등한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따라서 경쟁 없는 평등주의가 나라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지 않는 소수의 기득권이 자기들만의 기회를 독점하면서 절대 다수에게 엄청난 생존경쟁을 강요하는 이 현실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그 거탑의 꼭대기에 서울대가 있고, 연세대-<조선일보>와 고려대-<동아일보>가 있다.

이것이 바로 선진국과 대한민국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우리가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토록 공감했던 이유는 우리에게서 전혀 볼 수 없었던 로마 지도자와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레주 때문이 아니던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러니까 서울대 경쟁력이 낮은 일차적인 원인은 바로 서울대 교수들에게서 찾아야 마땅하다. 아마도 그분들 개개인의 능력은 출중할 것이다. 문제는 상위 층에 있는 사람들도 열심히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구조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책임 전가하는 서울대여!

▲ 서울대 본고사 부활 기도는 매번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았다. 2005년 참교육학부모회, 함께하는시민모임, 전교조 회원들이 2005년 서울 관악구 서울대 학생회관앞에서 2008년 입시에서 고교등급제와 본고사를 부활하려고 한다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일본에서는 교수 진급하려면 아예 대학을 옮겨야 한다. 하버드에서는 교수들 간 다면평가가 이미 일반화되어 있다. 많은 미국 교수들은 방학 기간에 월급을 받지 않는다. 자기 실력으로 외부에서 돈을 따 와야만 한다.

2003년 국회자료에 의하면 연세대의 경우 정교수 10년차의 연봉이 1억500만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상당한 연봉을 받는 교수들과 대학은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선진국 대학의 사례에 대해서는 눈 감아 버린다.

더군다나 논문을 표절·조작한 교수가 버젓이 캠퍼스를 활개치고, 연구비 착복이나 부정한 짓을 저지른 교수는 건재한 반면, 틀린 수학문제가 틀렸다고 말한 교수는 재임용 탈락시킨다. 적지 않은 교수님들은 좀 모자란 학생들 데려다가 훌륭하게 키워 낼 생각보다 학생들이 알아서 똑똑해지기를 기다린다. '교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 대학에 남아 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서울대여 그리고 명문 사학들이여, 그대들이 똑똑한 학생들 못 데려가서가 아니라 좋은 제도에는 눈을 감고, 못된 관행들은 스스로 고치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들의 경쟁력이 바닥나고 있다고 고백하기가 그리도 어려운가. 그것을 반성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책임을 아무 죄 없는 학생들에게, 안 그래도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그 불쌍한 학생들의 '학력저하'에 뒤집어씌우는 행위는 교육자로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악행이다.

서울대발전위원회의 계획안은 교수승진 및 정년보장 심사를 강화하고 업적에 따른 연봉제를 도입하는 등 획기적인 안들도 포함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서울대가 진정으로 역점을 두고자 하는 방향이라고 믿고 싶다.

모교에 험한 소리하면서 마음 편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여러 해 연구직 생활을 하며 교수님들 눈치 봐야하는 이 '파리 목숨'인 나의 고발이 에밀졸라의 그것에 어찌 비교라도 될까 만은, 서울대의 그 파렴치함을 여기 밝혀두는 것도 서울대 졸업생으로서 내가 빚 진 사회적 혜택을 조금이나마 갚는 한 방법이 아닐는지.

덧붙이는 글 |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기사를 쓴 이종필 기자는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연구원입니다.


태그:#3불정책, #서울대, #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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