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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 무덤
ⓒ 김태영

재선충을 아시나요? 소나무실들음병이라고도 한다. 치명적이다. 그래서 소나무 에이즈라고도 한다.

1mm 내외의 실 같은 선충으로 나무 조직 내의 수분과 양분의 이동통로인 도관을 막아 나무를 말라 죽게 한다. 재선충이 나무에 침입하면 6일째부터 잎이 처지고, 20일째엔 잎이 시들기 시작한다. 30일 후에는 잎이 급속하게 붉은 색으로 바뀌면서 말라죽는다. 지금으로서는 치료약이 없다. 예방이 최선이다.

재선충은 지난 12월까지만 하더라도 소나무에만 침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솔수염하늘소라는 매개충을 통해 옮겨진다. 솔수염하늘소의 번데기가 소나무 안에서 우화할 때 여기에 묻어 나와, 솔수염하늘소가 소나무의 가지를 갉아 먹거나 할 때 그 상처를 통해 소나무에 침투한다.

일단 침투하면 그 소나무의 치사율은 100%다. 이 때문에 일본과 대만에서는 소나무가 절멸했다. 일본은 1905년 첫 소나무 재선충이 발견된 이후 60년 만에 소나무가 전멸했다. 대만에서는 아예 소나무를 잘라내고 차나무로 수종을 대체했다.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소나무를 찾아볼 수 있다.

발원지는 북미대륙.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중국, 대만, 미국, 캐나다, 멕시코, 포르투갈 등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지역의 피해가 크다. 중국은 지금까지 4000만 그루의 소나무를 베어냈으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황산을 지키기 위해 둘레 100km에 걸쳐 폭 4km안의 소나무를 모두 베어버린 무송지대를 구축했다.

우리나라에는 1988년 부산 동래구 금정산 소나무에서 처음 발견됐다. 부산 금정산 금강공원에 일본원숭이를 들여올 때 밑에 깔았던 소나무 가지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7년 2월 현재 9개 시·도 55개 시·군·구에서 발생했다. 피해 면적은 7871ha(1ha=1만㎡). 200년 1677ha이던 것이 2004년 4961ha, 2005년 7811ha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광주시에서만 발생해 비교적 피해 면적이 적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태풍의 눈' 속의 평화 같은 것이었다. 아주 새로운 위험요소가 발생했다. 세계에서 최초로 잣나무에서도 재선충이 발견됐다. 지난해 12월 22일이었다. 그것도 경기도에서 발견됐다. 그동안 주로 경남 지역에서만 발생했기 때문에 경기 북부 지역은 비교적 안전지대로 여겨졌다.

그 매개충도 솔수염하늘소가 아니라 북방수염하늘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솔수염 하늘소는 따뜻한 남부지역에 서식한다. 하지만 북방수염하늘소는 중북부 지방에 서식해 재선충 감염지역이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소나무 에이즈' 재선충, 전국이 사정권

산림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자료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다음 세기에는 후손들이 소나무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지만 개발 중인 예방약제의 효과가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어, 내년부터 이를 실용화하고, 국민과 더불어 산림청이 더 이상의 확산 방지 대책을 세워 노력한다면 반드시 소나무 재선충병(이제는 잣나무 재선충병까지)을 퇴치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함."

2005년 혹은 2006년 초에 작성된 글이다. 그러나 사태는 더 심각한 쪽으로 가고 있다. 이제는 소나무뿐만 아니라 잣나무까지, 그리고 감염 지역도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됐다. 특히 잣나무 재선충병은 자료나 정보, 대책이 나온 게 없어 더 문제다. 우리 손으로 모은 것을 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오늘(28일) <경향신문>이 한 면을 털어 보도한 '재선충 공포 확산-남양주 잣나무 방제현장 르포'(경태영 기자), '잣나무 전례 없어 방제 캄캄'(윤희일 기자), '북방하늘소 1마리가 재선충 1700여마리 옮겨'(윤희일 기자) 등의 기사를 보고 나름대로 추적해 본 재선충에 대한 기초 정보들이다.

재선충 비상을 비중 있게 다룬 기사는 비단 <경향신문>만이 아니다. 월요일인 26일에는 <한국일보>가 역시 한 면을 털어 이 소식('재선충병 점령군 광릉의 봄 짓밟나'-이범구·허택회 기자)을 다뤘다. <중앙일보>도 비교적 상세하게 다뤘다. 광릉에는 국립수목원이 있다. 국립수목원의 소나무와 잣나무가 자칫 전멸할지 모를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사가 커졌다.

이들 기사를 보면서 잣나무에도 재선충이 발견돼 전국의 소나무는 물론 잣나무까지 절멸할지로 모를 '충격적인 사실'을 그동안 왜 몰랐을까 싶었다. 한두 번 기사를 본 기억이 본 기억이 있지만 가물가물했다. 아마도 재선충이 뭐 큰일일까 싶어 쉽게 넘어갔으리라.

솔직하게 말하자면 도시에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일들이 많은데 소나무, 잣나무에 관심 가질 이유가 뭐 있겠는가.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들이 이번 주 들어 이를 비중 있게 보도한 것도 잣나무에서도 재선충이 발견됐기 때문인지, 광릉 수목원 때문인지 사실 헷갈린다. 물론 둘 다 일 것이다.

잣나무 재선충 기사를 추적해 보았다.(편의상 언론재단의 기사 데이터베이스 검색시스템인 KINDS 검색을 이용했다)

잣나무 재선충을 보는 언론의 편향

지난해 12월 22일 경기도 광주시에서 잣나무 재선충이 처음 발견됐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그리고 1면에 가장 비중 있게 보도한 신문은 의외로 경제지인 <머니투데이>였다('잣나무림서 재선충병 국내 첫 발견'-최태영 기자). 그 다음날인 23일 종합일간지들이 일제히 보도했지만 그 잠재적 심각성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서울신문>이 1면에 보도하고, <동아일보>와 <문화일보>가 2면에 배치한 것 정도가 그래도 눈에 띈다.

잣나무 재선충병에 주목한 <서울신문>은 12월 28일 "잣나무 재선충의 매개충이 '북방수염하늘소'일 가능성이 높아 산림당국이 긴장하고 있다"는 후속 보도를 내보냈다.

올해 들어 1월 8일 <시민의 신문>(지금은 인터넷 판만 나오고 있다)는 "북부지방산림청에 잣나무 재선충 의심 사례를 확인해달라는 민원이 1월에만 33건이 접수됐다"고 보도했다. 강원지역으로까지 재선충 감염우려가 확산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1월 16일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원창리 5번국도(춘천∼홍천)변 야산에서 잣나무 고사목 8그루가 재선충으로 죽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일보>와 <한겨레>, <한국일보>가 이번에는 비교적 비중 있게 다뤘다. 그래도 이번 경기도 광릉처럼 주목하지는 않았다.

3월 7일 강원도 원주에서도 잣나무 재선충이 발견됐다. 하지만 이제는 그다지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다. 사회면 단신으로만 간략하게 취급됐다.

그런 가운데서도 광릉 재선충 사태를 예고하는 기사가 있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는 3월 10일 '경기도에서도 재선충병 검사 의뢰가 폭주하고 있다'(이용선 기자)는 소식을 전했다. 올 들어 경기도내에서만 800건이 넘는 검사 신청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광릉 숲 지역인 남양주에서 신청한 것도 95건이나 됐다.

그 후 12일 만인 3월 22일 에 광릉시험림 잣나무 2그루가 재선충으로 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앞서 3월 15일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묵현리에서도 잣나무 4그루, 소나무 1그루가 역시 재선충으로 죽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 소식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광릉 숲 인근 잣나무 재선충 발견 소식은 3월 23일 <경인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광릉의 국립수목원이 '사정권'에 들어오면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재선충은 지역과 나무를 차별하지 않겠지만 우리의 뉴스 기준은 다른 것 같다. 일단 서울에 '입성'할 채비를 해야 '잣나무 재선충'도 비로소 본격적인 '대접'을 받는 듯싶다.

아니면, 생명에 대한 무심함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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