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토요일이면 국회는 텅 빈다. 되레 일요일에는 월요일자 보도 때문에 기자들이 나오고 그에 따라 취재원인 국회의원들도 국회를 들락거린다.

하지만 토요일인 31일에도 국회를 지키는 국회의원들이 있다. 바로 단식 농성 의원들이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상시한이 이틀 더 연장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들의 마음도 누구보다 무서워졌다. 단식은 5일 전후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5일째' 김근태] "24일째인 문성현 대표가 더 걱정"

▲ 단식 이틀째를 맞이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원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앞 농성장에서 지지자들을 상대로 강연을 갖고, `정치인들의 한미FTA 반대 단식`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원과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는 원래 협상 시한인 이날 오전으로 단식농성을 마치려고 했었다. 김 의원은 5일째, 문 대표는 24일째다. 김 의원은 이날 새벽 급하게 참모진들과 논의해 늘어난 협상시한만큼 단식을 연장키로 결정했다. 문 대표도 마찬가지다.

김 의원은 "협상시한이 임의적으로 미국의 요청의 의해 굴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에 항의하는 의미로 단식을 연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몸의 부담을 느끼는 듯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로 회갑을 맞이한 나이. 애써 힘을 내는 표정이 역력했다. 김 의원은 "막상 단식을 끝낸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가 연장하게 되어서 마음이 무겁지만 국민의 격려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식 중인 동료 정치인들을 걱정했다. 김 의원은 "나는 본회의장 앞이라 괜찮지만 추운 밖에서 고생하고 있는 천정배·임종인 의원과 이틀 더 단식을 연장한 문 대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의원들의 단식 장소는 이심전심으로 실내와 실외로 잡혔다. 연장자 배려 차원에서 김 의원은 본회의장 앞이지만 천정배·임종인 의원은 본청 앞 천막 신세다.

아무리 실내라 해도 온풍기가 가동되지 않는 주말 국회는 썰렁했다. 사람이 없어 더 그랬다. 그나마 이날 오전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한미FTA 대책회의를 여는 바람에 몇몇 의원들의 인사 방문이 이어졌다. 김 의원은 경제관련 서적과 조간신문을 펼쳐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김 의원은 오전에 잠시 기자회견을 열어 노 대통령의 '용단'을 촉구하며 "단지 비준 거부가 아닌 체결거부 반대 운동에 참여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준에도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입장이다.

['6일째' 천정배] "오늘은 조금 힘들다"

▲ `민생정치모임`의 천정배 의원은 26일 오후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중단을 요구하며 국회 본청 출입문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27일 오전 천정배 의원이 출입문앞 천막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날로 단식 6일째를 맞는 천정배 의원의 컨디션은 좋지 않아 보였다. 타결된 뒤 대책을 묻자 천 의원은 "오늘은 특히나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타결된 뒤에 생각해 보자"며 말을 더 잇지 않았다. '힘들어 보인다'고 인사말을 전하자 "오늘은 조금 그렇다"고 양해를 구했다.

보좌진들은 기자들의 접근도 제한했다. 단식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형국이라 힘 조절이 필요하다는 판단일 터. 천 의원은 성경책을 읽으며 간혹 물 한모금씩을 먹는 것으로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었다.

천 의원은 협상 시한이 연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정부의 죄악을 막지 못한 것을 국민에게 사죄한다"는 짧지만 강도 높은 논평을 냈다. 혈혈단신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첫번째 민주당 의원, 또 참여정부 법무부장관 출신이지만 이제는 노 대통령과도 확실히 갈라선 수위다.

김근태 의원은 늦가을 수준의 점퍼를 입고 있었지만, 노상의 천정배 의원은 한겨울 복장이다. 두터운 점퍼에, 목도리를 두르고 난로까지 피웠다. 지난밤 비바람으로 이날은 기온이 뚝 떨어졌다.

오전 11시, 이해영 교수를 비롯해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인사들이 지지방문을 오자 약간의 화색이 돌았다. 건강을 묻는 질문에 천 의원은 "먹진 못하지만 평소보다 수면시간은 길어져서 괜찮다"며 "끊임없이 물을 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같은 자리에서 단식농성을 하던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의 지지방문도 있었다. 권 의원이 "앞에 쫙 내려다 보이는 국회 명당"이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천 의원은 문성현 대표의 건강을 염려했다. 자신은 그나마 국회 지붕 아래 노상이지만, 문 대표는 완전한 노천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국본에서 함께 온 전문의 우석균씨가 "나이가 있기 때문에 장기가 많이 상했을 것"이라며 염려했다.

천 의원은 협상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정부를 '5공 쿠데타 세력'에 비교했다.

"1980년 5공 쿠데타 세력들이 '5공 헌법'을 만들어 국민투표에 붙였을 때 나는 군법무관으로 있었다. 당시 군에도 5공 헌법을 홍보하라고 지침이 내려왔다. 내가 헌법의 초안을 달라고 하니 대외비라고 안된다고 하더라.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그 때와 뭐가 다른가. 정부는 협상내용을 알고 있고 국정홍보처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를 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사람들에겐 내용도 모르면서 반대한다고 비판한다. 웃기는 일이다."

천 의원은 낮에는 비닐을 둘러친 천막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곁에 쳐둔 등산용 천막에서 잠을 잔다.

['5일째' 임종인]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은 세끼 밥"

▲ 임종인 의원은 27일 오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중단을 요구하며 국회 본청 출입문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반대쪽에 임종인 의원의 농성 캠프가 있다. 단식 5일째다. 그의 천막은 앞이 뚫려 있었다. 늘상 자신을 '순수 무소속'이라 밝히는 임 의원은 꽤 씩씩해 보였다. 김근태·천정배 의원에 비해 나이도 적고 체격도 건장하다. "두 분은 고관대작 출신 아니냐"(웃음)며 자신은 끄떡 없노라고 말했다.

임 의원은 의정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전날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도 참석해 한국외환은행 불법매각의혹에 관한 감사원 감사결과의 문제점과 공무원들의 책임을 묻는 결의안 처리에 목소리를 높였다. 2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이와 관한 제안설명도 직접 할 것이라고 한다. 지난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주택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따지며 한나라당을 압박했다.

임 의원의 일용할 양식은 여느 단식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물과 소금, 그리고 책이었다. 그는 목하 '공부중'이다. 한미FTA 19개 분과 주요 쟁점뿐 아니라, 미국의 자본주의와 한국의 자본주의의 변화를 공부하고 있다. 공부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아, 우리가 미국에게 잘못 걸려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미국의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이 '외교안보적 침략'이라면 FTA는 미국의 '경제 침략'이다. 원래는 WTO(세계무역기구) 체제 아래서 여러 나라가 함께 참여하는 다자간 협상을 시도했으나 자기들의 헤게모니 관철이 안되자 양자간 자유무역협상으로 틀었다. 다른 나라들은 다 중단했는데 우리만 매달려서 하고 있다. 한미FTA 협상은 '매달려 협상''묻지마 타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 의원은 일찌감치 한미FTA 협상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작년에는 열린우리당 일부,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위헌소송'도 냈다가 지도부에게 징계도 받았다. 임 의원은 "단식농성을 통해 심각성을 알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무기한 단식 투쟁을 얘기했다.

임 의원은 "87년 6월 항쟁 수준의 '제2의 시민항쟁'이 이번 계기로 이뤄져야 한다"며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정권 퇴진운동에도 동조했다. 임 의원은 "이 정권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국민은 앞으로 긴 시간 어마어마한 경제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내가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이유도 노 대통령과 당이 미국과 특권층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성토했다.

'배고프지 않느냐'고 묻자 임 의원의 수준 높은 답변이 돌아왔다.

"전혀 허기를 못 느끼고 있다. 기분도 괜찮다.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은 세끼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세끼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끼니를 걸러야 하는 역설적인 현실이다.

▲ 30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앞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졸속타결에 반대하는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에서 단식농성중인 임종인, 김근태, 천정배 의원이 나린히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