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신문들의 뉴스 초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미FTA 그 자체에 대한 평가와 분석. 적극 지지하는 쪽과 문제를 제기하는 쪽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또 하나는 청와대까지도 어리둥절할 정도로 급변한 정치적 지형의 변화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편에 선 것에 대한 분석과 전망, 기대가 교차하면서 관련 기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진보·보수언론이 보는 '뒤바뀐 정치지형'
<한겨레>는 오늘(4월 5일) 노 대통령의 이념적 지향과 정체성의 문제를 1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경향신문>은 어제(4일)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지지를 얻게 된 'FTA 대연정?' 기사에 이어 오늘도 '뒤바뀐 정치지형'에 관한 분석 기사를 실었다.
반면 노 대통령과 한미FTA에 대한 지지 입장을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정치지형을 단숨에 뒤바꿔 놓은 '조중동'은 내친김에 그 전선을 더 공고하게 하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조선일보> 박두식 정당팀장은 어제(4일) 칼럼 '다시 보게 되는 노 대통령'에서 "종종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에 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노 대통령이 "남은 임기 10개월 동안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린 정책'에 전념한다면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썼다.
<중앙일보> 김종혁 사회부문 에디터도 어제 칼럼('노 대통령과 한·미 FTA 협상단 잘했다')에서 한미FTA를 단행한 노 대통령의 결단을 "역사 속에서 평가받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그것이 지지자들의 돌팔매 속에서 이뤄졌기에 더욱 빛"나며 "그동안 노 대통령이 미웠다고 그의 공로를 모른 체하고 깎아내리는 것은 소인배나 하는 짓"이라고 어정쩡한 한나라당이나 노 대통령 평가에 인색한 일부 보수층을 질타하기도 했다.
대다수 언론의 지지 속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급상승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노무현 주가' 분석 기사를 실었다. 반짝 상승인지, 본격 랠리로 이어질지가 관전 포인트다. 두 신문 모두 전통적으로 '비노무현 성향 계층'(<한겨레>), 즉 '보수층'(<조선일보>)의 지지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같은 분석의 초점은 '대선'에 미칠 영향에 모여있다.
몇 가지 변수가 있다. 첫째는 앞으로의 소재다. 지지율 상승을 이어갈 만한 소재가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한겨레>는 '불안한 상승' 쪽에 방점을 찍었다. "지지율 상승을 유지할 소재가 앞으론 거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보수언론의 태도다. 이 역시 "보수 언론과 야당이 지금과 같은 우호적 자세를 보일 가능성도 거의 없다"(임상렬 리서치플러스 사장)고 보았다.
세 번째는 경제적 변수다. <조선일보>도 이 점에서는 '반짝 상승' 쪽에 방점을 찍었다. "노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가 좋아져야 한다."(가상준 단국대 교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반짝 상승'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중동은 다시 노무현을 맹공할까
과연 어떻게 될까?
첫 번째, 소재 문제를 보자. 새로운 소재라면 크게 '개헌' '북핵문제' '남북정상회담' 등이 있다. 개헌은 지금으로서는 점수를 따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이 역시 알 수 없다. 보수언론의 '노무현 다시 보기' 때문에 노 대통령에 대한 태도를 바꾼 사람들이 많다면 '개헌 문제'도 악재라고만 할 수는 없다.
지지층의 반발까지 무릅쓰고 사심 없이 '국익'을 위해 일로매진한 대통령 아닌가? 자신과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개헌 문제인들 이제는 달리 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핵문제, 남북 평화회담, 남북 정상회담은 어쨌든 노 대통령으로서는 나쁠 게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랠리 정도가 아니라 '대세 상승' 흐름을 탈 수도 있다. 무엇보다 한미FTA라는 안전판이 있다. 결정적인 악재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최소한 '박스권'은 유지할 수 있다.
두번째, 보수언론, 나아가 한나라당과의 관계이다.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문제는 앞으로다. 개헌 문제가 당장 현안이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어제 오늘 사설을 통해 잇달아 노 대통령의 '통 큰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승적 철회' '다시 한 번 정치적 손해를 감수한 결단'을 내려줄 것을 주문했다.
노 대통령은 어떻게 할까? 노 대통령의 스타일로 보자면 '강행' 쪽이 맞다. 그러면 '조중동'은 어떻게 할까? 다시 '맹공'을 퍼부을 수 있을까? 관성의 힘이라는 것이 있다. 이제 노 대통령은 어제의 노 대통령이 아니다. '조중동' 또한 어제의 '조중동'처럼 할 수만은 없다. 제3의 개국을 한 훌륭한 지도자를 하루아침에 저버리기는 쉽지 않다. 관성의 법칙에서 '조중동'인들 자유로울 수 없다.
노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 정치권에 다시 한 번 '임기 중 개헌 불가' 입장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하고, 그래도 정치권이 받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개헌카드'를 던져버릴 수도 있다. 할 만큼 했다는 평가만 있으면 노 대통령으로서는 족하다. 이 또한 노 대통령의 스타일일 수 있다. 어쨌거나 노 대통령으로서는 개헌 또한 이제는 '꽃놀이 패'가 됐다.
세 번째, 경제 문제다. 최대의 변수일 수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4%선이 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었다. 여기에 한미FTA 효과가 더해질 수 있다. 어제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의 반응은 일단 나쁘지 않다.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진단과는 달리 '반짝 상승'이 아니라 '대세 상승'의 가능성이 적지않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FTA체제'는 '87년 체제'의 완결판?
다시 <한겨레>의 분석으로 돌아가 보자.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렇게 진단했다.
"중도세력이 몰락하고, 보수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정치 지형 및 구조가 중장기적으로 정착돼 가는 과정이다. 진보 계층은 전반적으로 고립되는 국면으로 접어들어 노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이 비극적인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뜰수록 중도세력의 몰락으로 인한 반사 이익을 일부 챙길 수도 있겠지만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비단 민주노동당뿐만 아닐 것이다.
조금 긴 안목으로 보자면 노 대통령은 한국사회에 FTA체제라는 새로운 체제를 열었다. '87년 체제'가 '97년(IMF) 체제'를 거쳐 '07년(FTA) 체제'로 이어지게 됐다. 'FTA 체제'는 결과적으론 '87년 체제'의 완결판이다.
87년 체제 이후 한국사회는 비로소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이 조금이나마 열렸다. 하지만 97년 체제로 그 여지는 크게 좁아졌다. 이제 그나마의 여지마저 없어지게 됐다. 이대로라면 그 어떤 대안의 모색마저 힘들어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경제적 득실을 넘어, 정치적 이해타산을 넘어 한국 사회의 진로를 보자면 그렇다.
1987년부터 20년의 세월, 20년의 기회, 누구를 탓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