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수정 : 6일 밤 9시 23분]

▲ 강동순 방송위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점입가경이다. 방송계의 풍경, 특히 방송 정책과 행정의 총사령탑인 방송위원회가 그렇다. 지난해 5월 출범 때부터 파당적인 위원 선임으로 그 앞날이 걱정스러웠던 제3기 방송위원회다.

건강상의 문제로 인한 위원장의 교체, 부동산 문제로 인한 상임위원의 사임 파동에 이어 갖가지 인사 파문, 운영과 행정, 정책, 인사 등 전방위적인 난맥상을 보여 오던 방송위원회가 최근 불거진 한 상임위원의 부적절한 언행과 처신으로 그 독립성과 위상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방송위원이 대선주자 측근 만나 대책 논의

6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는 강동순 방송위 상임위원의 부적절한 언행과 처신이 도마에 올랐다.

강 위원은 지난해 11월 초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허심탄회한 '사적 대화'를 나눴다. 한나라당 추천으로 방송위원에 선임된 강 위원과 한나라당 의원과의 만남 자체를 문제 삼을 것까지는 없다. 문제는 그 '사적 대화'의 내용과 수준이다.

당시 경인방송의 신현덕 공동대표와 KBS 윤 모 심의위원도 함께 한 이 자리에서 강 위원은 거침없이 '방송대책'을 논의했다. KBS 정연주 사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노조를 잡아야 한다"는 발언은 약과다. 특정 노조위원장 후보를 밀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 대선 패배는 "말도 안 되는 홍보전략 때문"이라는 분석에 이어 "정말 방송이 중요한데,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 모니터 팀을 운영해야 한다"는 조언도 서슴지 않았다.

급기야는 "우리는 한 배"라는 참석자 말에 "한 배가 아니라 우리 일"이라는 합창까지 했다. "대승적으로 도와 달라"는 유승민 의원의 부탁에는 "후진하는 자동차는 타지 않는다. 운전기사가 누구든 간에 전진하는 차를 잡아야 된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집권 후 방송계 혁신의 구상도 내비쳤다. "우리가 정권을 찾아오면 방송계는 하얀 백지에다 새로 그려야 된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얘기가 있는데 빈대가 나오면, 빈대가 많으면 빈대를 잡을 수가 없다. 건물을 새로 지어야지. 방송이 그렇다"는 발언에선 한 맺힌 섬뜩함마저 읽힌다.

방송위, 어쩌다 이 지경까지... '코드 인사'가 문제

방송위원의 품격이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방송위원을 지극히 파당적으로 선임한 게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방송위원 9명은 대통령 3명, 국회의장 3명, 국회 문광위원회에서 3명을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토록 돼 있다. 지난해 5월 출범한 제3기 방송위원은 국회 몫 6명 가운데 3명씩을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나눠 추천했다.

제3기 방송위원 추천은 그 어느 때보다도 '충성심'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문성이나 경륜, 독립성보다는 여야 할 것 없이 '코드'를 중심으로 선임한 측면이 강하다. 지난 2기 방송위원들이 여야 모두에 불만이었던 것 같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제2기 때는 자민련도 1명을 추천했다)은 야당대로 자신들이 추천한 방송위원들이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는 불만이 높았다.

그러다 보니 방송위원회가 선임 권한을 갖고 있는 KBS 이사,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 등에서도 잇달아 말썽이 났다. 특히 한나라당 지분 몫으로 추천된 인사들이 결국 문제가 돼 중도 하차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방송위원회 운영 또한 난맥상을 거듭했다. 한미FTA 자료 유출 문제로 방송위 상임 위원이 상임 부위원장을 조사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주주의 국가 정보 유출 파문 등 이른바 '스파이 논란'으로 파행을 거듭했던 경인TV 방송허가 추천 절차 역시 그 단적인 사례다.

강 위원의 내밀한 '사적 대화'는 지금의 방송위원회가 얼마나 '파당화'돼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모든 위원들을 한 묶음으로 평가할 일은 아니지만, 방송위원의 품격이 어느 수준인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녹취자는 '한 배' 탄 줄 알았던 학교 후배

그 폭로 과정 또한 가관이다. 이 '내밀한 사적 대화'를 비밀스럽게 녹음한 사람은 바로 강 위원과 자리를 같이 했던 신현덕 전 경인TV 공동대표다.

신현덕 전 대표가 국회 문광위원회에서 경인TV 대주주인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의 '스파이 의혹'을 제기한 지 며칠 안 된 시점이었다. 신현덕 전 대표가 왜 이 자리의 대화를 녹음했는지, 왜 이 녹취록이 방송위원회에 제출됐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유출됐는지는 알 수 없다. 또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강 위원은 방송위원으로 선임되기 전 KBS 감사였다. 정연주 사장 체제의 KBS 운영과 보도에 강도 높은 비판으로 명성을 얻었다. 한나라당이 국정감사와 문광위원회에서 연이어 KBS 감사 자료로 '특종'을 올릴 때 그 유출자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학교 후배여서, 한 배를 같이 타고 있는 '우리'인 줄 알고 편안히 자리를 같이 했던 신현덕 전 대표가 이런 '배신'을 때릴 줄은 그도 미처 몰랐던 것 같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