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장애인차별금지법 서명식 행사에서 말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녹취록을 발췌해서 그것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 살펴봅시다.
"더욱이 여러분께서는 민관공동기획단을 만들어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거듭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통령에게 감사와 축하를 받은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날을 길거리에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정부와 관련 부처에서는 무엇을 했습니까?
장애 패러다임이란 것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결과만을 놓고 평가를 한다는 생각이 들며, 대통령이 그처럼 가볍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궁금합니다.
공동기획단의 구성은 말 그대로 모범이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정부와 관련 공무원들의 장애 이해 부족으로 인해 '민(民)'이 먼저 제안하고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자세는 우리 공무원사회가 얼마나 경직된 것인지 알게 해줍니다.
또한 봉사를 우선으로 여긴다고 늘 말을 하면서도 정작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지 관심 밖의 일로 여기는 행위는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라 여깁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은 장애인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역사적인 일입니다."
패러다임이 바뀐다고요? 과연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함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는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애인의 날에 겨우 30분 정도 휠체어를 타는 경험을 해본 뒤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간단한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정도로는 패러다임을 바꿀 수 없습니다.
장애인 관련해서는 전 분야에 걸친 혁명적인 제도 개선과 재정지원이 불가피한 현실에서 얼기설기 엮어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가지고서 마치 모든 장애현실이 바뀔 것이라는 식으로 표현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생각이 듭니다.
현재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알고 그런 말을 한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1년이라는 기간동안 다듬고, 부처간의 조정 절차를 거치면서 어떤 형태로 변모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런 과정에 장차법 제정을 위해 노력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장추련)와 장애 당사자의 배제로 이루어진 위원회는 과연 장애인들의 이해와 요구를 제대로 담아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초대된 장추련 관계자들은 기습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으로 다시금 빛바랜 법으로 바뀔 수 있다는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시켜 줄 것인지에 대한 답은 준비가 안 돼 있는 것인지요?
장애인 교육서비스, 이론보다 실천부터
"앞으로는 장애인이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적응할 수 있도록 사회가 변해야 합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차별이 금지되는 것은 물론, 여러분이 배우고, 일하고, 이동하는 데 있어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게 될 것입니다. 문화, 체육 등 수준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데도 더 많은 기회가 보장될 것입니다."
"장애인도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을 하는 것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교육을 통해 능력을 키우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노력하고 또 요구해야 합니다."
이론적인 것으로 변화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이론은 단지 이론일 뿐이며,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 나가는가 하는 문제가 더 필요합니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라 하더라도 실천 과제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단순히 작은 하나로 무언가 이루어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으며, 그것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사회 전 분야에 걸친 변화를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과연 법이 하나 만들어졌다고 가능할까요?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겠지요. 인식의 변화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무원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애에 대해서 과연 공무원들의 의식이 바뀔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은 알고 찾아 보셨는지요. 각 개인의 문제로 넘기면서 법으로 다 해결된다고 하실 생각인가요?
교육이 문제란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권리와 의무라는 표현은 정말 기분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수십 년이 지나도록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요?
지금도 장애인교육과 관련해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장애아 부모들이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간명합니다. 권리와 의무라는 것을 가지고 가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시설에 갇혀 지내는 장애인들의 권리와 인권에 대해서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나요? 장애인들은 요구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며 개선을 요구하고 관련법을 제정, 개정하자는 아우성을 보내고 있으며 제대로 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외면하는 사람들은 정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입니다. 대통령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요구하고 노력하는 이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얼마나 더 요구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길바닥에서 쓰러져 죽어가야 그 노력을 인정할 수 있는 건가요? '충분한 교육'이라는 표현 정말 듣기 좋고, 보기도 좋은 일입니다. 그럼, 어디서 어떻게 무슨 교육을 충분하게 해야 할까요.
학교는 문을 닫아걸고 외면하고, 기업은 능률을 이유로 외면하고, 정부는 예산을 이유로 외면하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래서 갈 곳이 없는 이 현실에서 어떻게 '충분한 교육'을 할 수 있는지 방도를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기업도 장애인 고용을 부담이 아니라,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인적자본 투자라고 생각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당부드립니다. 의무고용은 정부부터 독려해서 공공부문 의무고용률 2%를 초과달성했습니다. 민간부문도 좋은 모범사례들이 나오고 있고 앞으로 꾸준히 나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공공기관에서도 하지 않고 있으며 공기업에서도 꺼리는 일을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 기업에 넘기려 한다면 그것을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국가기관에서 먼저 모범적인 사례들을 만들어 내고 다양한 직업교육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을 한다면 기업들도 앞다퉈 시행할 수 있겠지만, 정부는 나 몰라라 하면서 기업의 책임이란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이치가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장애인 취업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고 계시나요? 그런 것들을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하렵니다. 근거와 합리적 논거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니 당연히 그러하리라 봅니다.
단순히 너희가 해야 한다는 식의 표현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특성에 맞는 교육이 어려서부터 이루어지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그런 속에서 기능을 익히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주는 것이 국가의 몫이라 생각하는데 어떠신지요?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 서둘러야
의무고용률을 달성했다고 하시니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의 2006년 10월 20일 한국산업단지공단 국정감사조사를 참고해주십시오.
김 의원은 장애인 노동자가 단 2명인 공단측에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라"고 질책했습니다.
"장애수당 등 대부분의 과제가 완료되었고, 장애학생 특수교육 등은 계속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수교육이 추진 중이라 하시는데 어디서 무엇을 추진 중인지 알고 싶어집니다. 장애아동의 경우 입학부터 시작되는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특수교육관련 요구는 해마다 늘어가고 있지만 예산부족을 이유로 무엇 하나 속시원하게 진행되는 것이 없는 실정입니다.
교육은 평등한 권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평등한 권리가 사라지고 시소게임을 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변호사 출신이시니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리라 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장애아동의 부모들이 다시 단식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이라는 과제를 안고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헌법에 기초해서 우리 아이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입니다.
추진 중이란 이야기에 비웃음이 섞여 나오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그 말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왜일까요?
아이들이 마음 놓고 학교에 가고, 그곳에서 개별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장애 특성에 따른 직업교육이 이루어지고, 자연스럽게 사회진출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지요.
대통령께서는 특수교육이 무엇인지 헤아리고 있으며, 그것이 왜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인지 알고 계시나요?
부모들이 목숨을 걸어가며 아이들의 미래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가며 나서야 하는 그 마음을 십분의 일이라도 이해하려 노력을 해보셨는지요?
서명식장에서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고요. 그 행위가 불미스러울지는 몰라도 그 상황까지 가야하는 절박함을 봐야 할 것입니다. 시설에서 굶주리고, 폭행당하며, 죽어가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교육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당하고 집 안에서만 평생을 살아가는 장애인이 있습니다. 온갖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겨우 할 수 있는 일이 구걸뿐인 장애인들이 당신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지금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몇 마디 말로 치하하고, 적당히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고는 뒤돌아서면 다 잊고 마는 그런 형식을 원하지 않기에 신상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하는 행동들입니다.
장애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실천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입니까?
장애아동을 둔 부모로서 장애인이 편한 세상을 꿈꿉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위드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