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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영추문
경복궁 영추문 ⓒ 이정근
소근이 부인의 전갈을 받들고 경복궁 영추문에 닿으니 경비가 삼엄했다. 진무군사들이 이중삼중으로 쫙 깔려있었다. 정안공댁 종 소근이라 말하고 겨우 영추문을 통과했다.

서쪽 행랑에 나아가니 임금의 환우를 걱정하는 왕실지친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방원을 찾아 마님이 몹시 아프다고 아뢰니 옆에서 이 소리를 듣고 있던 의안군이 청심환과 소합환(蘇合丸) 등의 약을 주면서 말했다.

"빨리 가서 병을 치료하십시오."

방원이 대궐을 나와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대궐의 서쪽 출입문 영추문에서 방원의 집까지는 직선거리로 1500자(500m) 정도의 가까운 거리이다. 집에 도착하니 몸져 누워있다는 부인은 멀쩡했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던 방원이 소근을 노려보았다. 공연한 불똥이 소근에게 떨어질 판이다.

"군사를 일으켜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보살펴야 할 것이오"

"나무라지 마십시오, 제가 오시라고 시켰습니다.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드니 궁에 나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버님의 환우가 경각에 달려있는데 무슨 쓸데없는 말씀을 하시는 거요?"
"아닙니다. 전하의 병환은 핑계인 것 같고 다른 음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들었습니다. 오늘밤에 큰 사단이 날거라고 저자거리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민무질이 거들었다.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대궐에 나아가지 않겠소? 더구나 여러 형들이 모두 대궐 안에 있으니 돌아가지 않을 수 없소. 만약 변고가 있으면 내가 나와 군사를 일으켜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보살펴야 할 것이오."

대궐의 낌새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한 방원은 민무질에게 이숙번으로 하여금 무장을 갖추고 자신의 사저 앞에 있는 신극례(辛克禮)의 집에 유숙하면서 대기하도록 명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명이 위태로울 듯싶습니다."

부인이 방원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부인의 눈망울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방원은 부인의 손을 뿌리치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말에 오른 방원은 경복궁을 향하여 질풍처럼 내달렸다.

"조심하고 조심하세요."

사라져 가는 방원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부인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눈망울에 고여 있던 눈물이 안고 있던 한 살배기 아기의 얼굴에 떨어졌다. 뜨거운 눈물이 아기의 얼굴에 떨어지자 아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엄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이 아기가 훗날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세종대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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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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