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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귀향>의 배우 조명남
연극 <귀향>의 배우 조명남 ⓒ 극단 청년
칼을 들고 들어온 강도가, 돈이라고는 동전 몇 푼 밖에 없이 빈집에서 노인 혼자 사는 꼴을 보더니 마구 화를 내며 소리친다.

"노인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야?"

나이 일흔 넷에 강도의 칼도 무섭지 않고, 빼앗길 것도 없는 노인은 강도가 차라리 반갑다. 말할 사람이 생겨서….

낡은 임대 아파트와 노인은 똑같이 추레하고 똑같이 텅 비어있어, 보는 내내 가슴이 아리다. 아내는 25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 후에 두 딸마저 하나는 미국으로 하나는 저 세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가버렸다. 그런데 글쎄 미국에 있는 큰딸이 17년 만에 한국에 온다는 연락을 해온 게 아닌가.

흥분과 기대로 뒤범벅이 된 노인은 딸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주겠다며 분주하고, 그러는 사이사이 옛날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남편과 아내가, 아버지와 딸이 어떤 관계 속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는지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며 노인은 때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때로 회한에 사로잡혀 눈물을 쏟는다.

최근 상연중인 연극 <귀향>의 줄거리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노인 1인 이상으로 구성된 노인 가구 비율은 51.2%이고, 이 가운데 노인 혼자 살고 있는 노인독신가구는 24.6%, 노인부부가구는 26.6%로 나타났다.

쉽게 말하면 노인 열 명 중에서 다섯 명은 노부부 아니면 노인 혼자 산다는 뜻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길에서 만나는 노인 열 명 중 2~3명은 집에 아무도 없이 자기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노인복지현장에서는 홀로 사는 어르신, 즉 독거(獨居)노인을 위해서 도시락 배달, 말벗 도우미, 가정봉사원 파견 등의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연극 속의 노인도 집으로 배달되는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바깥에서가 아니라, 도시락을 받아 끼니를 때워야하는 노인의 방안에서 보니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 없이 하루 종일 홀로 보내야 하는 병들고 약한 노인의 처지가 말할 수 없이 쓸쓸하고 슬퍼서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오래 전 아내와의 사이에 힘든 일이 있었지만 딸들을 생각해서 참아냈다. 그래도 그 깊은 사연을 알지 못하는 딸들은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로만 여기고 그저 아버지 곁을 떠나려고만 했던 것. 늙고 병든 데다 외로움에 찌들대로 찌든 아버지는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용서를 빈다.

그러나 때늦은 후회는 가 닿을 곳이 없고, 용서를 빌며 무너져 내리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우리는 홀로 빈집에서 사그라져가는 늙은 몸과 마음이 안타까워 쉽게 몸을 돌리지 못하고 오래도록 관객석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이다음에 자식이고 뭐고 아무한테도 신세지지 않고 혼자 살 거야!" 제발 말 그대로 되길. 그러나 돈 없고, 몸 아프고, 외로움에 지칠 대로 지친 후에도 씩씩하게 흔들림 없이 혼자 버틸 수 있을까.

노년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 중 첫째를 꼽으라면 나는 '관계'를 꼽겠다. 물론 돈과 건강이 기본인 것을 잘 알고도 남는다. 그러나 관계를 풀지 않으면 그 어떤 노년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17년 동안 어르신들과 만나면서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독거(獨居)노인이 홀로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이야기하는 이 연극 <귀향>은 그래서 우리들이 결국은 돌아가야 할 곳을 분명하게 일러주고 있다. 누구나 틀림없이 늙는다고. 그 늙음은 다른 곳 아닌 지금 바로 우리 옆에 있다고.

("작가 오재호 70 기념" 조명남의 모노드라마 <귀향> / 작가 : 오재호 / 공동연출 : 김민호, 허회진 / 출연 : 조명남 / 4. 10 ~ 29, 서울 대학로 스타시티 아트홀)

덧붙이는 글 | * 노인 개인 혹은 노인 단체 관람을 원할 경우 극단에서 입장료 혜택을 드린다고 약속했음을 밝힙니다. 관람하실 분들은 전화(02-743-6474)로 먼저 상담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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