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대서특필했다.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 모두 한나라당이 좀 더 중도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근거는 설문조사다. <조선일보>가 '정책과 리더십 포럼'과 공동으로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그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다. 두 사람 모두 "한나라당의 이념적 좌표를 좀 더 중도성향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는 문항에 '약한 긍정'의 뜻을 표한 것으로 돼 있다.
두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배회하는 표심을 모으기 위해선 좌로 반 클릭 이동하는 게 선거에 유리하다.
두 사람만의 생각이 아니다. 한나라당도 최근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과연 좌향좌?
홍준표 의원을 포함한 한나라당 의원 다섯 명이 지난 13일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그리곤 말을 쏟아냈다. 개성공단을 성공시키면 통일을 반쯤 이룬 것이라고 했고, 이번 개성공단 방문이 한나라당 대북정책의 변화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 뿐이 아니다. 지난해 1월 개정된 한나라당 당헌은 이미 대북정책을 유화정책으로 바꿨다면서 당헌도 제대로 안 보는 몇몇 사람들이 대북 강경책을 주도해온 것은 엉뚱한 얘기라고도 했다.
대북정책만이 아니다. 복지정책에 있어서도 복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미 민주노동당과 연대해 65세 이상의 80%에게 평균소득액의 10%를 지급하는 기초연금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고, 입시와 취업 등에서 빈곤계층에 혜택을 주는 계층할당제를 도입하기 위해 공청회도 열었다.
얼핏봐선 완연하다. 당의 이념적 좌표를 좌로 한 클릭 이동하기 위해 분주히 정책을 손질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겉모습일 뿐이다. 다시 대선주자에게로 돌아가자.
이명박·박근혜씨의 '좌회전' 의지는 그리 강하지 않다. <조선일보>의 방법을 빌리면 '약한 긍정'이다. 그래서일까? '말따로 정책따로' '당따로 후보따로'인 점이 다수 눈에 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우 "지난 9년간의 대북포용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항목에 '강한 부정'의 뜻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전반적인 대북포용정책 기조는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다"는 항목에 대해서는 '약한 긍정' 의사를 나타냈다.
또 "현재 진행중인 6자회담의 합의 틀이 정체되거나 악화될 경우 대북제재를 통한 문제해결이 필요하다"는 항목에 대해서도 '약한 긍정'의 뜻을 표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이명박 전 시장이 대북정책에서 좌로 반 클릭 이동하려 한다는 낌새를 전혀 발견할 수가 없다.
대북관·복지·분양가 규제 등 당보다도 '보수적'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경우는 더 심하다. "지난 9년간의 대북포용정책"과 '대북포용정책 기조 계승 발전"에 대해 '약한 부정'의 뜻을 나타냈다. 특히 "대북제재" 필요성에 대해선 '약한 긍정' 입장을 보였다.
좌로 반 클릭 이동하는 건 고사하고 우로 한 클릭 이동하려 한다는 평가가 절로 나올 법한 태도다. 홍준표 의원의 말을 빌리면 "(개정)당헌도 제대로 안 보는 몇몇 사람들" 축에 끼일만 하다.
에둘러 갈 것 없다. "두 후보 중 한 명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대북포용정책에 일정한 궤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조선일보>의 전망과, "한나라당의 이념적 좌표를 좀 더 중도성향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는 두 사람의 태도는 호응하지 않는다. 떨어져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복지분야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태도는 확고하다. "성장이 분배보다 우선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한다. 하지만 이들이 속한 한나라당은 기초연금제와 계층할당제를 추진한다. 궁합이 전혀 맞지 않는다.
다르게 볼 여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두 사람 모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를 더 늘려야 한다"는 데 약하게 긍정했다. 이 점을 중시하면 이들의 '성장 우선' 입장이 복지정책을 완전 배제하는 건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성장기조를 유지하되 복지정책을 보완적으로 실시하자는 입장이며 기초연금제나 계층할당제는 '보완적 복지정책'의 대표사례 쯤으로 풀이할 수 있다.
책상머리에서의 풀이는 이렇게 나오지만 막상 시장에 나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기초연금제는 그들 스스로 '포퓰리즘 정부'로 규정한 참여정부조차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제도다. 성장세가 상당기간 가파르게 유지돼 세금이 대폭 걷히지 않는 한 실현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제도를 한나라당은 지금 당장 실시하자고 한다. "분배가 성장보다 우선한다"는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역시 두 사람의 정책방향과는 다르다.
마음은 왼쪽으로 가고 싶지만 몸은 그대로
엇박자 사례가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아파트 분양가 규제"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약한 부정' 의사를 표했고,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채택해 발의를 철회시킨 4년 연임제 개헌에 대해 이명박 전 시장은 자신의 임기를 줄이면서 개헌을 할 용의가 별로 없다고 답했다.
정리하자. 깃발을 들긴 들었는데 바람에 너무 펄럭여 찢기기 일보직전이다. 자신의 이념적 좌표를 좌로 반 클릭 이동하고 싶지만 개인 성향 때문에 발을 떼지 못한다. 한나라당은 좀 더 중도성향으로 가려 하는데 이들의 개인 성향이 제동을 건다. 이게 한나라당 소속 유력 대선주자의 이념적 실체이고, 한나라당의 실상이다.
이렇게 보면 한나라당의 정진섭 의원 말은 하릴없다. 그가 그랬다. "당내 보수가 30, 중도가 40, 진보가 30인 것은 변함이 없다"면서 "과거 경색된 남북관계에서 보수 30의 목소리가 컸던 반면 이제 한반도 상황이 변화하면서 중도와 다소 진보적인 분들의 목소리가 커졌다"고 했다.
아니다. 갈수록 목소리를 키우는 이는 딱 한 부류다. 당내 유력 대선주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내놓는 목소리의 대개는 좋게 말해 보수다. 단지 눈만 중도에 맞출 뿐 발은 여전히 오른쪽에서 미동도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