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군부독재 타도'와 '호헌철폐'를 외치며 항쟁의 불길을 지펴올린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4월의 끝자락에서 1987년 6월 10일을 잊지 않고, 20년이 지난 지금 6월 항쟁의 정신을 계승하려고 하는 움직임들이 전국적으로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마침, 부산 동아대학교 민주동문회 회원들과 재학생들이 6월 항쟁 2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며 20일 저녁 7시, 동아대학교 인문대 101 강의실에서 '동아대학교 6월항쟁 기념비 건립 추진대회'를 연다고 해 현장을 찾아보았다.
대회는 70년대 학번, 87년 6월항쟁의 주축이었던 80년대 학번, 90년대 학번에 이어 07학번 새내기들까지 6월항쟁 정신에 함께 하고자 하는 동아대학교 출신 동문회원, 재학생 약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중하게 열기있게 진행되었다.
본행사에서 동아대학교 6월항쟁 준비위원회 고문 김민남 교수는 축사를 통해 "20년 전 호헌철폐,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던 그날의 함성이 다시금 메아리쳐 오는 것 같다. 오늘 이 자리에서니 감회가 새롭다. 동아대학교 6월항쟁 기념사업이 꼭 성공적 마무리를 지어, 후대들에게도 계속 6월항쟁의 소중한 정신들이 계승될 수 있도록 애써달라"고 당부했다.
이어진 동아대학교 교수협의회 조관홍 의장의 격려사에 이어 기념비 건립 최영규 공동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그동안 동아대 6월항쟁 기념비를 건립하기 위한 준비과정과 경과보고를 진행했다.
그는 "이제 기념비 건립까지 50여일 남았다. 그런데 현재 학교 당국에서 기념비를 세울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지 않고 묵묵부답과 무성의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어려움을 뚫고서라도 반드시 민주화의 성지 우리 동아대 모교에 기념비를 세워내야 한다"며 참가자들에게 함께 단결해줄 것을 호소했다.
동아대 6월항쟁 기념사업 전체 진행상황을 박태안 홍보위원장 대행이 보고를 하였고, 동아대 추모동문을 기리는 영상 상영과 글 낭독이 이어졌다.
87년 6월항쟁 현장에서 생을 달리했던 동아대 이태춘 열사의 부모님이 직접 참석하여 눈물을 글썽이며 기념비 건립과 6월항쟁을 통해 자신의 아들을 잊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참석자들은 추모동문들과 이태춘 열사의 어머님이 단상에 올랐을 때 곳곳에서 눈물을 지으며 흐느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어 동아대 6월항쟁 기념비 디자인 시안을 공개하고 기념비에 대한 해설, 부산지역 6월항쟁 20주년 사업에 대한 해설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87년 6월항쟁 당시 총학생회장으로 항쟁의 지도부였던 이동규씨와 10년 뒤인 97년 입학했던 김종민씨, 올해 대학을 입학한 07학번 새내기 김지혜 학생이 함께 무대에 올라 6월항쟁의 정신이 끝이난 것이 아니라 87년, 97년을 거쳐 올해 2007년에도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임을 강조했다.
이들은 동아대학교 20주년 기념비 건립과 기념사업을 성대하게 치러낼 것임을 결의하며 본행사를 끝마쳤다. 참석자들은 마지막으로 '6월항쟁 정신계승 기념비를 건립하자' 등의 구호를 외친 후 행사장을 빠져 나갔다.
동아대학교 6월항쟁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박태안 홍보위원장 대행은 이번 동아대 6월항쟁 20주년 기념비 건립사업이 동문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진행이 되고 있다며, 지난 18일까지 310여 명의 동문들이 4700만원의 후원금을 약정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610인 기념비 건립위원회'를 발족하고 단과대학 및 과별로 모금활동을 계속적으로 전개, 1억 여원의 후원금을 모은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향후 활동은 4월 안으로 기념비 디자인 최종 후보작을 선정, 6월 9일 모교에서 기념비 제막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며, 5월 25일부터 28일까지 서면 동보서적 전시실에서 기념비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동문 작가 그림 초대전 개최, 동아대 민주운동사 편찬사업을 통해 9월 공개심초지엄을 거쳐 10월 경 동아대 민주운동사를 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장 학교 당국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장소 제공 불가라는 입장 속에서 동아대 6월항쟁 사업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미지수라는 여운도 남겼다.
이렇게 부산의 동아대학교 뿐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의 대학들, 각종 시민사회 단체 진영에서 이번 6월항쟁에 많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며 힘모으기에 주력하고 있다.
1987년 그 뜨거웠던 함성이 2007년 어떻게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메아리쳐올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