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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사랑은 얄궂다. 사랑하는 감정이 똑같으면 참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다. 한 사람은 다른 방향으로 눈이 가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엇나간 사랑의 화살은 사람을 비참하게도 하고 슬프게도 만든다. 그저 그 사람이 좋으면 그만이겠지만 사람이 어디 그러더냐? 그 사람이 좋아지면 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고백하고 싶고, 손도 잡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수평적인 관계에서 이어져야 할 사랑이란 게 그렇지 않다. 일반 사회에서 수직적인 구조가 있다지만 사랑만큼 수직적인 구조를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도 드물기 때문이다. 가령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고 하자. 하지만 그 안에도 누가 누굴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 마음에 따라서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상황이 이런데 하물며 짝사랑 관계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러한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케세라 세라>다. 드라마 속 사랑은 사각 사랑이다. 삼각 사랑도 모자라 네 남녀가 서로 얽힌 가운데 사랑의 화살이 엇나가면서 빚어지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엇나간 사랑에 대한 감정이 심화되면서 수직적인 관계가 더욱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사랑은 왜 수직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가?

우선 카사노바. 신분의 상승을 꿈꾸며 돈 많은 여성들을 상대하던 강태주(에릭)는 계약 연애를 시작한다. 차혜린(유진민)은 한 식구처럼 지내 온 오빠 신준혁(이규한)을 사랑하다 신분의 차이로 인해 헤어지고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하며 강태주와 계약연애를 제의한다. 이렇게 둘은 사랑을 가장한 연애를 시작한다. 그 사이 강태주를 사랑하던 한은수(정유미)는 같은 직장의 상무 신준혁과 로맨스를 펼친다.

물론 한은수도 강태주의 배신으로 기댈 곳을 찾던 중(물론 드라마 속에서는 드러내놓고 기댈 언덕을 찾지는 않는다) 자상하게 다가오는 신준혁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들의 엇갈린 사랑이 지속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드디어 강태주와 한은수는 자신의 사랑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의 사랑을 선택한 순간 꼬인 일들을 풀어가는 일처리가 굉장히 잔인하다.

계약 연애를 하던 차혜린이 강태주를 진짜 사랑하면서 더욱 갈등이 깊어진 것이고, 신준혁이 한은수에게 청혼하기로 결심하면서 자신들의 무덤을 판 것도 사실이다. 또한 차혜린의 경우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애초 복수를 위해 무모하게 계약연애를 선택한 자신을 탓해야하지만 사랑을 고백한 두 사람, 즉 자신들을 사랑한다는 사람에게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너무나 이기적이다. 그래서 누가 더 상대를 사랑하느냐에 따라 누가 누굴 지배하고 누가 누구에게 지배당하는지를 철저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남은 두 사람은 자신들을 사랑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의 이기적인 행동에 혼자 아파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도도하고 능력 좋은 차혜린은 아빠에게 조차 시종일관 차가운 모습으로 도도함을 유지했으나 강태주를 사랑하는 죄로 무릎까지 꿇고 돈으로 그를 달래고자 고군분투하지만 아픔을 감당하는 것은 역시 차혜린 홀로 해야 할 일이다. 거기에 조금 이성적인 신준혁은 "불행해졌으면 좋겠다"고 뼈아픈 말을 남기지만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사직서를 쓴 한은수를 끝까지 배려해 그녀를 설득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기적인 그들의 이기적인 사랑 방식

그런데 이들의 고군분투와 배려를 매몰차게 거부하는 강태주와 한은수의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미자 언니는 이렇게 외쳤다.

"맘에 없으면.... 단 둘이 술 마셔주지도 마.. 영화 보잔 말도 하지마.. 전화해서.. '뭐했어요..? 미안해요.. 담에 봐요..' 그딴 말도 하지마.. 맘에 없으면.... 돌아서 머리 통이 깨져도 그냥 받아주지 마.. 단 둘이 술 마시고 만나주고 그랬으면.... 그렇게 했으면... 사랑하지 않아도 그냥 사랑해줘야 돼.... 그게 예의야.. 알아?"

그렇다. 강태주와 한은수는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제의 혹은 배려를 받아주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결국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이용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버리 것이다. 설사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한들 그들은 차혜린과 신준혁에 미안해 해야 하고 배려해야 한다.

하지만 강태주는 어차피 둘의 관계가 계약연애였다는 사실을 잔인하게 상기시키고 사랑한다는 그녀의 진심어린 고백을 매정하게 딱 자른다. 물론 그것이 훗날에는 버려진 상대에게 좋은 일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인간적인 배려를 해줘야 한다는 것을 망각한 듯싶다.

반면 뒤처리 면에서 한은수는 한 술 더 뜬다. 신준혁의 배려가 가슴 아프고 고문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이 몰상식함은 또 무엇이라 말해야 하는가? 적어도 자신이 그에게 많은 부분을 기댔던 것이 사실이라면 이 부분은 강태주와 차혜린 관계보다 조금 더 진지했기에 그녀는 신준혁의 행동이 고문으로 다가온다 해도 참아야 하는 것이 도리다. 하지만 그녀는 고문이라며 사직서를 내던진다. 그래 이것도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은데 무엇을 탓할까 하고 넘어가보자.

그런데 자신의 동생이 아파 돈이 필요해 다시 신준혁을 찾아가 부탁하는 것은 참 어이가 없다. 분명 자신이 사랑을 선택했고 자신이 편하자고 한 사람에게 잔인하게 대해놓고 다시 찾아가 그에게 부탁하는 행위는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도 사랑을 선택한 자신의 사랑이 굉장히 가볍다고 말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렇게 몰상식하고 이기적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택했을까?

적어도 이전 작품들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사랑을 택해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면 "미안하다"라는 말을 남긴 채 아무리 어려운 일에 처해도 부탁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사랑이 그만큼 진실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행위며,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은수는 이도저도 아니다. 오히려 이기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추구하고 한편으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 버린 남자를 다시 한 번 이용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결론은 이것이다. <케세라 세라>는 진부한 사랑이야기를 신선하게 포장하고자 과도하게 밀어붙인 결과 "사랑은 누가 누굴 더 사랑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진다"는 진부한 교훈만을 남긴 채 신선한 캐릭터 창조에는 실패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주장이 강하고 사랑관이 투철해 매력이 넘쳤던 차혜린을 사랑에 무너지게 만들어 매력을 반감시켰고, 사랑만큼은 순수했던 한은수를 이기적인 여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케세라 세라>는 결국 다른 진부한 트랜디 드라마와는 다를 게 없음을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그저 그런 작품이에요. 기대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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